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웃게 한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비수처럼 꽂히는 말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건넨 다정한 말 덕분에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랑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대화를 익숙하게 이어나가게 됐고,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겼다.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배울 점이 있었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편안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사람과의 만남 후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다정한 순간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호텔리어로서의 시간은 이곳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여러 사람을 통해 나란 사람을 깊이 되돌아보게 해준 선물이었다.
첫 홀로서기는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멋들어진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눈물로 얼룩져 군데군데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부분도 생겼지만, 위기 상황에서도 혼자 버텨냈다는 사실이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모든 일이 변수 없이 흘러가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예측하지 못한 일은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한다. 변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이날의 경험 덕분에 그 이후로는 예상치 못한 일에도 덜 당황했고,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는 불안한 감정의 동요에서 덜 흔들릴 수 있었다.
“아유, 뭘요. 제가 할 일인 걸요.”
손사래를 치며 수줍게 웃으시는 여사님의 얼굴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시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받는 게 영 익숙지 않았던 분들. 고객의 편안함은 갑자기 어디서 뚝 떨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한 곳에서 여러 손이 분주히 움직인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의 나는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의 반대편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분들도 다 월급 받잖아요. 월급 값인걸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돈을 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보다 조금만 더 따뜻한 시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면,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그 따스함이 전해지지 않을까?
“제가 실수한 일 대신 처리해 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해요….”
“아니야, 이런 거 하라고 선배가 월급 더 받는 거야. 네가 죄송할 일 아니야.”
나도 같이 일하면 마음이 편한 선배들이 있다. 혹여나 실수해도 넓은 아량으로 감싸주는 선배들. 어떤 일이 생겨도 잘 해결해 줄 것 같은 선배들. 후배의 대책 없이 해맑은 미소를 보니, 후배에게 나도 조금은 그런 사람인 것 같아 온몸을 휘감고 있던 긴장감이 풀어졌고 종아리가 저렸다.
호텔리어라면 언제나 고객의 상황을 이해하고 맘속으로 공감해야 마땅한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도달 불가능한 틀에 나를 꿰맞추려 했다는 걸 알았다. 이해가 안 될 때는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고, 가끔은 손님의 무리한 요구를 적당히 거절하기도 했다. 호텔리어가 무엇이든 이뤄 주는 마법사는 아니니까.
‘아까 왜 그렇게까지 초조했을까? 급한 일이었어도 나랑 연락이 안 되면 그 손님도 호텔에 따로 연락했을 것이고, 심지어 일분일초를 다투는 일도 아니었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 성격이 아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하다가 너무 나를 몰아세우는 느낌이 들 때는 잠깐 눈을 감고 호흡한다. 내가 왜 그렇게 안달일까? 괜찮다고, 다 괜찮을 거라고.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는 거라고. 방전될 것 같은 마음을 잘 토닥였다.
“별거 아니야. 혹여라도 점수 좀 깎인다고 아무 일 안 생겨. 점수는 점수고 너는 너잖아. 걱정하지 마.”
맞는 말이다. 선배의 말을 듣는 순간, 이게 뭐라고 그렇게 끙끙거렸을까 싶었다. 인생 전체로 놓고 보면 모두가 나의 미스터리 쇼퍼이다. 나와 만나는 주변의 모든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건 언제나 나를 평가할 거고, 아마도 제각기 상반된 평가를 내릴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고 모두가 나의 모든 면을 면밀히 관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 기준에 맞추려 한다면, 나라는 존재가 나로서 남아 있지 못할 거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족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손님을 만나는 호텔리어가 모든 손님을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손님 한 명 한 명에게는 한 명의 호텔리어가 준 기억이 호텔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외국 손님인 경우에는 내가 제공한 서비스의 질이 한국의 이미지를 정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손님을 응대하고 좋은 투숙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데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한 외국 손님이 준 좋은 기억은 그 손님의 나라 역시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 나라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야멸차고 친절하지 않은 손님 탓만 하며 징징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 사건 이후 잘 모르는 부분은 가볍게 넘기지 않고 몇 번이고 확인해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
“당신이 나한테 욕을 했는데 내가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 욕은 누구의 것입니까?”
나는 그 욕을 욕으로 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다.
우리가 시도한 모든 일이 다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조차도 서로의 노력을 알아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칭찬을 건네는 어른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어른도 칭찬이 고프다.
이제는 같은 말도 예쁘게 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각 분야에서 신입의 시절을 거쳐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과거를 회상할 때, 감사하게 생각하는 선배는 다정하게 대해 준 사람이다.
“혜수야, 마음이 힘들 때는 쉽진 않지만, 감정이랑 상황을 분리해 봐.”
“응? 감정이랑 상황을 분리하라는 게 무슨 뜻이야?”
“혜수 너 앞에 펼쳐진 상황은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이지, 너의 감정을 그 상황에 대입시키지 말라는 거야.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싶지? 처음부터 이렇게 하는 게 쉽진 않아. 그런데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이제는 안다.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과거의 시간은 온전히 나에게 남아 현재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호텔리어로서의 여정은 멈추었지만, 호텔리어로 지낸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고 나는 썩 마음에 든다. 지금 내 모습이.
아직도 나는 세상과 부딪히며 아파하기도 하고, 머뭇거리며 주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예전에는 바람에 속절없이 휘날리는 갈대처럼 휘청거렸다면, 이제는 흔들리는 폭이 조금은 줄어들었달까. 잠시 울적하다가도 금세 중심을 잡고 ‘괜찮아, 할 수 있어, 잘해 왔잖아!’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 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