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란, 늘 자연이 인간이라는 종에게 부여한 한계에 도전하는 과정이었지요. 추위가 닥치면 털갈이를 하거나 겨울잠을 자거나 따뜻한 곳으로 이주하는 대신, 찬 바람을 막아주는 옷을 지어 입고 불을 피워 추위를 이겨냈습니다. 먹을거리를 찾아 떠도는 생활을 청산하고, 땅을 일구고 울타리를 쳐서 농사지으며 가축을 키웠죠. 병이 나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다양한 약과 치료법을 찾아내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가 하면, 더 쾌적한 삶을 살기 위해 집을 짓고 건물을 올리고 도로를 놓았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걸 ‘인간적인 삶’을 위한 행동이라고 말하지요. 어쩌면 인간다움이란, 자연이 부여한 조건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이 상처 입고 기능을 잃었을 때 그걸 대신하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찾아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행동일 수 있겠지요.
--- p.7-8 「들어가며」 중에서
아이들은 자랍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의 의수는 성장 단계에 따라 계속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며, 만만치 않은 스마트 의수의 가격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한창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며 자라나는 시기에 몸의 일부를 잃었다는 사실은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크지요. 히어로 암은 부품을 3D 프린터로 제작해 단가를 낮추어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영화 「아이언맨」의 기계 슈트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속 엘사의 얼음 장갑을 본뜬 멋진 디자인의 의수를 제작해 아이들을 덮친 몸의 상처가 마음의 흉터로 덜 남도록 노력한 모습이 엿보였습니다. 아이가 스스로에 대해 손이 없는 아이가 아닌 아이언맨의 손, 혹은 엘사의 비밀의 손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죠. 인간이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멋진 손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손으로 또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 p.71 「4장 우리 몸의 가장 놀라운 도구― 손」 중에서
허의 다리는 실제 가하는 힘과 움직임에 따라 반응합니다. 그는 이 다리로 걷고, 뛰고, 계단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는 등 원래의 다리가 하던 거의 모든 일을 해내는 데 성공합니다. 심지어 앞서 에이드리언에게 달아주었던 다리는 춤도 출 수 있습니다. 팔다리가 멀쩡한 사람이 춰도 어색하고 뻣뻣할 수 있는 게 바로 춤입니다. 그런데 유연성이라곤 전혀 없을 것만 같은 기계 다리를 달고도 가볍고 경쾌하게 춤을 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허와 에이드리언이 보여주었습니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 과정을 통해 가장 최적으로 다듬어진 자연의 교과서를 훌륭하게 벤치마킹하는 데 성공한 셈이죠. 가장 오래된 것을 보고, 가장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 p.84-85「5장 새로운 발걸음― 다리」 중에서
앞서 말했듯, 후각이란 화학 분자를 감지하는 감각입니다. 따라서 분자들을 인식할 수 있는 화학물질 감지 센서와 이들의 소형화는 인공 코의 중요한 바탕입니다. 그러니 이 센서들이 되도록 다양한 화학물질을 인식하고, 소형화되어 착용에 무리가 없으면 되는 거죠. 코라고는 하지만, 반드시 코에 이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외부 센서를 안경 형태로 만들어서 감지하게 할 수도 있지요. 게다가 인공 코는 센서의 종류에 따라 사람이 맡지 못하는 냄새도 감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약 냄새나 사람이 감지할 수 없는 독극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센서를 장착한다면, 이로부터 위해를 입는 것을 피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시각과 청각과는 달리, 후각 보조 장치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 p.113-114 「7장 가장 원초적인 감각― 후각」 중에서
지난 2008년부터 미 항공우주국NASA은 국제우주정거장 내에 몸을 씻은 물을 포함한 모든 하수와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소변, 땀, 심지어 입김 속에 든 수분까지 모아서 재활용하는 정수 시스템을 설치한 바 있습니다. 우주 시대에도 우리 몸은 여전히 상당량의 물을 필요로 하지만, 우주로 물을 운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물을 외부에서 가져올 수 없다면, 있는 것을 최대한 아끼고 재활용해야겠지요. 그래서 등장한 것이 소변 및 오폐수를 정수하는 시스템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우주정거장인 톈궁天宮에서도 소변을 증류해 순수한 물로 다시 바꾸어 식수로 재활용하는 소변 재활용 장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변의 90~95퍼센트는 물입니다. 예를 들어 6리터의 소변을 처리하면 최소 5리터의 식수를 충분히 얻을 수 있지요. 소변으로 마실 물을 만들다니 꺼림칙하다고요? 우리의 신장이 매일 하는 일이 그것인걸요. 아주 먼 옛날, 물속에서 살던 동물이 뭍으로 올라오기 전에 노폐물을 걸러내고 물을 재흡수하는 신장을 만들어야 했다면, 본격적인 우주인으로 발돋움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우주 공간에서 얻기 어려운 물을 재흡수하고 재활용하는 시스템부터 갖춰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진화의 역사는 반복되는 법인가 봅니다.
--- p.113-114 「9장 피를 걸러내다― 신장」 중에서
앞선 실험은 임신 중기, 사람으로 치면 임신 20~24주 내외의 태아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발생 초기 태아의 환경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있었습니다. 2021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는 영양액이 듬뿍 든 채로 회전하는 유리병에 생쥐의 수정란을 넣어 11일간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생쥐의 임신 기간은 21일이므로 사람으로 치면 임신 22주에 해당하는 시기인데, 이쯤 되면 팔다리가 생기고 순환계와 신경계가 자리 잡아 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저 영양액 속에 넣고 충분히 흔들어주는 것만으로 수정란을 중기 태아 단계까지 생존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기술과 앞선 미국의 바이오백 기술을 결합하면, 임신 전체를 대신하는 인공 자궁의 개발도 더 이상 불가능한 꿈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 p.113-114 「10장 새로운 집에서 태어나다― 자궁」 중에서
인공 피부는 원래 화상 환자 등 피부 손상 환자들의 치료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인공 피부의 개발이 가져온 또 하나의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동물실험에 희생되는 동물들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입니다. 화장품이나 자외선 차단제 등 피부에 바르는 제품은 동물실험을 거쳐 개발되곤 했습니다. 동물실험은 그 자체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데다 실험에 동원된 동물들은 대개 안락사되기 마련이어서 동물 윤리 문제가 이전부터 꾸준히 대두되었습니다. 하지만 동물실험 없이 인체에 바로 테스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 문제는 늘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였지요. 인체에서 유래한 세포로 구성된 인공 피부의 개발은 이런 논란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표면에 털이 많고 조직 구성이 인간과 차이 나는 동물의 피부와는 달리, 인체에서 유래한 세포로 만든 인공 피부는 인간의 특성에 더 가까워 임상 실험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효과적이지요.
--- p.179-180 「11장 새로운 옷을 입다― 피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