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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1

아로파 세계문학-1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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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170*235*20mm
ISBN13 9791187252184
ISBN10 118725218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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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베라가 눈에 보이지 않자 이제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아주 소중하고 친근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라와 함께 청춘의 일부가 사라졌고, 아무런 결실도 없이 흘려보낸 순간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리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이상할 정도로 냉정한 원인을 찾고 싶었다. 원인은 분명 외적인 요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었다. 일단 이성 때문은 아니었다.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모습도 아니고, 이기적인 바보들에게서 보이는 모습 때문도 아니었다. 그의 냉정함은 무기력한 영혼, 아름다움을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능력, 교육을 받아 생긴 조숙함, 먹고살기 위한 정신없는 투쟁, 혼자서 여관방을 전전하는 삶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베로치까」 중에서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마시야’라고 부르는 마샤가 진정한 미인임을 맹세할 준비가 됐다. 하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이따금 구름들이 지평선 부근에서 제멋대로 뭉쳐지면, 태양이 그 뒤에서 구름들을 비추며 자주색, 주황색, 황금색, 연보라색, 어두운 장미색 등으로 다채롭게 하늘을 물들일 때가 있다. 어떤 구름은 수도승, 다른 구름은 물고기, 또 다른 구름은 터번을 쓴 터키인과 닮아 보인다. 노을은 하늘의 3분의 1을 물들이고 교회 십자가와 주인집의 유리창에서 불탄다. 강과 웅덩이에도 비치고, 나무 위에서도 흔들린다. 잠잘 곳을 찾는 야생 청둥오리 떼가 노을을 배경 삼아 어딘가로 멀리 날아간다……. 소 떼를 몰고 가는 목동, 사륜마차를 타고 둑을 건너는 측량 기사, 산책하는 사람들 모두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노을이 끔찍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미인들」 중에서

“이보게, 왜 우리는 비밀스럽고 환상적이고 무서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승이 아닌 저승이나 유령의 세계에서 화제를 가져오는지 말해 주겠나?”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걸 두려워하니까.”
“그런데 자네는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저승보다 이승의 삶을 더 잘 알고 있나?”
드미뜨리 뻬뜨로비치가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은 탓에 볼에서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창백하고 마른 얼굴은 저녁노을을 받아 더욱더 창백해 보였고 검은 수염은 그을음보다 더욱더 검게 보였다. 드미뜨리의 눈동자는 슬퍼 보였다. 진실한 빛을 띤 얼굴은 무언가 끔찍한 사실을 말하려는 것처럼 조금은 겁에 질린 듯이 보였다.
--- 「공포」 중에서

체호프가 작품 속에 담으려 했던 모습은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단절, 소외, 상호 소통의 부재, 고독과 우수, 염세주의, 인간과 삶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 등 당시의 어두운 단면들이다. 따라서 작품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어둡고 암울하며, 등장인물들은 소소한 일상 속에 매몰되거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들의 모습은 잿빛 일상을 살아가며 현실과 타협하거나 혹은 평범한 현실을 거부하려 몸부림치는 현대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 「본문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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