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뒤 얼마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것이 왜 그랬는지 이제야 조금 느낌으로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만 혼자 그를 가끔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를 그냥 혼자 맘속에만 두고 그리워할 수 없어서, 이렇게 소박하게 어설픈 글들을 모아 엮기로 하였다. 그가 어떻게 살았기에 이 많은 친구가 그렇게 그리워할까?
- 김조년 (한남대학교 명예교수/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사람들이 대책 없는 분이라고 하면서도, 그런데도 밉지 않은 분, 가서 뭐라도 함께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분이라고 했던 말들이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다. 가신 지 7년이 지난 지금, 지인들이 이렇게 추모의 회고록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만 봐도 그러한 삶의 여정이 얼마나 큰 울림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귀한 인연들이 함께 엮은 이번 회고록을 통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 삶의 궤적이 잘 꿰어져서 우리 삶을 비추는 큰 등불로 빛나기를 바란다.
- 도법 (승려,전 생명평화결사 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
물리적 나이와 상관없이 죽는 그 순간까지 청년의 삶을 살다 간 사람, 권술용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이제야 선생님의 추모집이 나온다는 것은 상실의 아픔을 삭이는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왜 이 혼탁한 세상에 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움만 남겨 두고 훌쩍 가 버렸을까?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아름다웠다’는 것뿐.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영원한 청년’과 ‘아름다운 사람’을 합쳐 ‘아름다운 청년 권술용’이라 부르고자 한다. 부디 저세상에서도 이생의 인연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 황대권 (생태운동가,작가, 평화운동가)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생명평화운동을 한다며 동네 마을회관에서 그와 2년 동안 함께 머물렀던 적이 있다. ‘권총’과 함께 많은 식구의 세끼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며 부부처럼 살았다. 마을 곳곳에서 자리를 정해 100배 절을 함께 했다. 그의 온갖 신출귀몰한 구상을 제지하는 척하며 그의 편을 드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그와 시시콜콜 부딪치며 우정을 쌓았다. 나이 들어서도 이렇게 멋있고 힘차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몸소 보여 주었다. 정초 추운 제주도 바닷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면서 편한 늙은이로 자처하는 우리를 조롱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 김경일 (대한성공회 신부/전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
해마다 강정마을 청년들이 은어들의 산란을 돕기 위해 은어 올림 행사를 해 왔었다. 하지만 공동체가 무너지는 바람에 마을을 위한 행사들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고, 산란을 앞둔 은어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온 동네를 활보하시다가 강정천에서 은어들이 물살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무작정 나를 데리고 작은 통 하나만 손에 든 채 강정천에 가셨다. 옷이 다 젖을 정도로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은어를 올려 주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길, 나는 은밀히 단장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노인의 걷는 모습이 저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 김동원 (사회복지사/강정평화활동가)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광경은 불리한 여건과 싸우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레이 찰스 로빈슨).
늘 도전하는 사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 늙은전사라 불렀지만, 아이의 순진함과 청년의 도전 정신과 어른의 지혜를 갖춘 사람. 강정마을의 평화 활동 안에서 중심에 서 있지는 않았지만, 늘 새로움을 발견하며 빈 곳을 채우던 사람, 권술용 단장님.
- 박용성 (대한성공회 신부/강정평화활동가)
‘아, 이런 분과 학교에서 일한다면 뭔가 재밌고 상상력이 넘쳐 날 것 같아!’
그렇게 최종 합격이 되어 샨티학교로 향한 그해 겨울은 너무도 참담했지요…. 이미 개교 준비가 다 됐으니 몸만 오라시던 쌤의 달콤한 유혹(?)은 황량한 시골 폐교의 기초 공사도 안 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었지요. 나중에 차차 알게 된 사실이지만, 쌤의 화법에 말려들어 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엄청 많다는 것. 그러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마법이라는 것. 이것이 권술용 식 휴머니즘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답니다.
- 서수미 (전 샨티학교 교사/작가)
그렇게 권총은 우리들의 인생에 스며들었다. 마주치기만 하면 누구든 끌어안고 볼에 턱수염을 비벼 대며 애정을 표현하셨고 항상 허리 숙여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누군가의 정겨운 관심이 익숙하지 않던 우리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흩어졌던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얼굴들도 마주했다. 20년 만에 엄마, 아빠가 돼서 아이들도 데리고 왔다. 장례식장인데 반가움에 웃고 떠들었다. 진정한 ‘평화의마을’ 같았다. 권총이 가시면서 우리 식구들을 모두 이렇게 모이게 했다고 누구랄 것 없이 입을 모았다.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비록 평화의마을 강당이 아닌, 권총이 없는 곳이었지만, 우리가 웃고 울며 떠들었던 그 시간 동안 권총이 우리 곁에 머물고 계셨을 것이다. 한 명 한 명에게 수염 장난을 치시면서.
- 차진희 (평화의마을 퇴소생/사회복지사)
내가 보고 판단한 권 형은 함석헌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진짜는 진짜인데 좀 더 정확한 표현은 그는 ‘진짜 바보’가 맞는 표현이다. 나나 권 형은 태생이 시장경제 체제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며 살아가기에는 모자라도 많이 모자란 불량품으로 태어났다. 이런 두 바보가 만나 한쪽은 타인이 어려우면 자신을 불살라서라도 도와줘야 하는 바보이고, 그 바보가 장사나 사업을 하여 망할 것을 열도 백도 알면서도 땀과 눈물이 젖은 돈을 넘겨주고 행복해하는 다른 바보가 있었다. 그들이 서로 만나서 한바탕 펼친 ‘바보놀이’ 여정을 마무리하며, 두 바보의 인연을 묶어 준 함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짝꿍이 되어 준 권 형에게 한없는 애정을 느낀다.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이 생을 마치고 내생에서 권 형을 만나 바보놀이를 다시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송용등 (사업가/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