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주목할 것은 늙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늙으면 같은 것을 반복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자각적인 경계의 필요성을 언급한 후, 노인은 주변 사람들에 대해 ‘즐거움’(타인과 함께 하는 것: 仁樂 / 천지만물과 함께 하는 것: 天樂)을 깨달을 수 있도록 중재할 것을 언급한다. 여기에 에키켄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늙음’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또한 앞 절에서 확인한 장수 축하에서 ‘늙음’의 모습과 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에키켄이 생각한 ‘늙음’은 장수(長壽)를 체득한 자임과 동시에 생의 즐거움을 타인과 함께 누리고자 하는 안내자이기도 했다. 에키켄이 생각하는 장수를 축하하는 공간이란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천지·부모에게 부여받은 생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는 그런 공간이었을 것이다.
--- p.43
한국사회의 급속한 노인 인구 증가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낳았다. 이는 지금도 계속되는 문제이다. 정부에서는 이를 해결하고자 연금, 일자리 등의 분야를 재정비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노인의 현실은 OECD 자살률 1위, 빈곤율 1위라는 국제 데이터가 대변해주고 있다. 노인 인구 1,000만 명이 다가오는 ‘노인 사회’에서 노인을 둘러싼 환경적 구조뿐만 아니라 개인적 요인을 간과하는 것은 앞서 살펴본 노인의 어두운 현실을 가속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p.70
노년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먼저 고령에 따른 무능력, 질병, 쓸모없음, 죽음 등으로 혐오를 유발하는 노인 차별의 현상인 연령주의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의존적이고 취약한 노인들은 무용하고 비인간적인 존재라는 경직되고 고정된 세계관에서부터,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인간이며,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위상과 가치를 지닌 고유한 존재라는 세계관으로의 관점 전환이 이루어질 때 노인 스스로가 내면화한 고정관념에서 빠져 나와 사회의 위계적 질서를 깨뜨리고 차별과 배제에 저항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질 수 있다.
--- p.125
우리가 겪는 죽음과 고통의 메시지는 존재의 초월성의 계기를 주고, 현세에서 몰아적 행복과 사후적 생명을 영위하라고 초대하며, 죽음의 순간에는 존재공동체라는 더 큰 자기로 탄생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죽음과 고통 너머의 존재의 선함이 존재하고, 고통 속에서 영혼이 성장하며, 주권 지배적 죽음 너머의 영원성은 우리의 윤리적 행위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무화의 고통을 견디어 내면서 희망과 사랑으로 모든 존재와의 만남에 감사하고 유일무이한 생애를 통해 존재공동체에 우리 자신도 무언가를 선사하도록 일깨움을 얻는다.
--- p.193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주목하면, 예를 들어 “신앙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 지원을 받기 쉽다”고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나 신종교와 같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교단에 국한된다. 다만 밀도 높은 인간관계나 엄격한 교리 해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서일본의 전통 불교 사원에서는 매달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 맞춰 승려가 신도들의 집을 방문해 가정용 불단 앞에서 경을 읽는 ‘월례 참배(月?り)’라는 관습이 있다. 집안이 어수선하면 승려가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독경 후에는 집주인이 스님에게 다과를 대접하기 때문에 그 대화 속에서 스님이 고민을 들을 수 있다. 말하자면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 p.213
한국 사회복지학계에서 비중 있게 논의되고 있는 죽음 관련 주제는 자살, 고독사, 호스피스 등이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죽음(자살), 주위에 아무도 없이 쓸쓸히 맞이하는 죽음(고독사),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생을 마감하는 죽음(호스피스)은 모두가 피하고 싶은 모습이자, 죽음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극심한 삶의 질 악화가 수반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웰빙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복지 패러다임에서 이러한 죽음의 모습은 죽음의 질이라는 본질적 탐구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자의 웰빙이라는 관점에서 문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의 패러다임도 이제 죽음 자체의 문제, 죽음의 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p.233
슬픔 케어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의 마지막 단계에 필요한 것은 의료가 아니라 ‘돌봄, 간호, 그리고 종교적인 관계’ 이 세 가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란 불안을 없애고 마음을 평온으로 이끄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죽음을 앞둔 최후의 순간에 집착이나 답답함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케어 하는 쪽은 상대방이 내뱉는 말을 기다렸다가 그저 받아들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만 풀려나가는 것이 확실히 있는 것입니다.
--- p.262
보통 ‘종말론’(eschatology)이라고 부르는 그리스도교 신학은 적어도 한 개인의 실존 측면에서 보면, ‘구원’이란 최종 목적을 위해 죽음이 임박한 삶의 마지막 때의 엄중함과 하느님을 향한 온전하고 심오하며 근본적인 회심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르면 임종은 결정적이고 확정적인 결말의 순간, 최종적이고 총체적인 마지막 선택이자 본인의 인생사에서 인격적 완성의 순간, 만남·해방·변모와 온전한 자기실현과 진정성의 순간, 그리스도와 결정적 친교를 이루고 그분의 신비에 최대한 동화되는 순간, 그리고 ‘유한의 끝, 무로의 소멸, 무의미’가 아닌 ‘여기에서 저기로 넘어감’의 의미와 희망(교리적 개념으로는 심판과 구원)에 대한 질문의 시간이다.
---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