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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된, 몸

: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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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91쪽 | 372g | 140*210*16mm
ISBN13 9791191535143
ISBN10 119153514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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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크나큰 고통을 겪은 후에, 인생의 맥박은 느려지고 생명 유지를 위한 박동의 간격도 끝없이 늘어진다. 삶은 유예된다. 그 사이에서 한때 당신이었던 사람과 현재 당신이 되어버린 사람 간의 차이를 대면하고, 고통을 인정하고 비애를 받아들여야 한다. 상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감안했을 때 위험한 과정이 된다 해도.
--- p.21

난파된 나의 몸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 당신을 난처하게 하거나 스스로 굴욕감을 느끼겠다는 의도는 없지만, 나는 죽기 직전의 삶을 산다는 게 가끔은 불명료한 것들, 이를테면 우리의 아름다운 몸이 지닌 연약함과 모든 인간의 의존성 같은 것을 명료하게 해 준다고 믿는다.
--- p.26

자넷은 친구들에게 내가 중상을 입었지만 “인격personhood”을 잃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그 사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것처럼, 가끔은 완전히 소외당한 것처럼 느낀다. 척수 손상은 나를 초현실적인 신경학적 황무지로 내던져 버렸고, 나는 그 황무지를 밤낮으로 횡단한다. 이 글은 그 황무지의 지형을 설명해 보려는 노력이다.
--- p.36

나는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 충격의 정도가 무한히 배가된 전기가 피부 밑으로 두껍게, 지속적으로 흘렀다. 다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뒤엉킨 신경이 흘려보내는 이 흉포한 윙윙거림은 내 몸속에서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다. 얼마나 무서운가, 마침내, 내장 깊숙이, 내가 얼마나 극심하게 다쳤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은! 이제 나는 진짜 지옥에 다녀왔다는 것을 안다.
--- p.46~47

고통에 울고, 비명을 지르고, 격노하는 것은 언어가 와해되었다는 징후이다. 고통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특유의 수사적 표현인 이유는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유의 전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다른 무언가를 경유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속성이 있기에 비유된 고통은 언제나 오용되거나 남용된 것처럼 어색하게 들린다.
--- p.52

고통은 사회적 장으로 퍼져나간다. 몸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변할 뿐 아니라 결국 그 사람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통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한탄이 종국에는 내가 타자들과 맺는 유대를 좀먹을 것이기에. 내가 용감하게 침묵 속의 고통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기에 그렇다.
--- p.56

발가벗겨져 샤워용 들것에 실려 샤워실로 들어갈 때면, 내 몸을 볼 수 있도록 머리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거울을 달라고 하지 않았고 물리치료실에 거울이 있으면 부지런히 시선을 피했다. 말 그대로 내 몸을 보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내 몸에 대해 아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자넷은 내게 일어났던 일과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반복적으로 말해 주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몸은 내게 생경해서 우주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 p.69~70

재활 전문 주치의는 엄지발가락을 잡고 자기가 발가락을 위로 굽히는지 아래로 굽히는지 보지 않고 말해 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다. 문제는 거의 대부분 틀렸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몸의 일부분에 의해 잘못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했다. 내 엄지발가락이 어떻게 나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단 말인가? 내 몸의 “감각 느낌”을 믿을 수 없다면,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신체적 자아”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신체적 자아는 내부적으로는 몸의 다양한 부분과 부위를 구분하는 과정을 통해, 외부적으로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몸의 이미지이다. 나의 “자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 p.79~80

이제 나는 젠더가 없다. 대신 내게는 휠체어가 있다. 나는 휠체어의 게슈탈트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매번 외출할 때마다 나는 남자로 오인된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척수 손상 환자의 82퍼센트가 젊은 남성이며 부치스러운 중년 여성은 통계적으로 무시해도 될 만하다고 여겨진다는 것을 아니까. 나는 온통 검은색인 옷만 입는다. 휠체어도 검은색이고 조끼도 검은색인데다가 나는 할 수 있는 한 내 몸을 사라지게 하려고 애쓴다. 어쩌면 나는 영구적으로 애도 중인지도 모르겠다.
--- p.91~93

0?슬픔 없음?부터 10?상상 가능한 최악의 비통함?까지 이르는 고통의 척도로 슬픔을 측정할 수 있을까? 아니. 고통도 슬픔도 정량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겪어낼 수 없는,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그저 남는 것이다.
--- p.108

제프는 나의 유일한 형제였다. 제프와 내가 함께 담긴 사진 중 좋아하던 게 있다. 촛불이 켜진 생일 케이크를 앞에 놓고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다. 수십 년간 나는 이 사진을 보며 우리가 기막히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사진에는 캠프에서 여름을 보내고 강건한 몸을 한 젊은 우리가 있다. 이 풋풋한 생일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내가 목이 부러져 나이 오십에 사지마비가 되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의 활기차고 잘생긴 오빠가 신경계 질환에 시달리다 사십 대에 사지마비가 될 거라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제프를 만나러 갔던 어느 더운 여름날, 나는 소파에 늘어져 가죽에 뺨을 대며 열을 식히다가 맞은편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제프를 쳐다봤다. 어떻게 신체적으로 그렇게 단조롭고 둔감해진 촉각으로 사는 것을 참는 걸까? 몇 년 후, 병원 침대에 누워 이제 내가 저 질문들에 답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쉰 살의 일격 한 번에, 제프의 쌍둥이가 되는 나의 상상은 마침내, 사악하게 실현되었다. 마비가 젠더를 이겼다.
--- p.132~134

제프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간호진은 주치의를 호출했고, 주치의는 제프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병원에 가길 원합니까?” 제프는 아주 명확히 대답했다. “아니오.” “아니오”라고 대답했을 때, 제프는 자신이 목숨을 연명해 줄 비상 처치를 원하지 않으며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프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나는 여전히 힘들다. 아티반과 중간에 이식한 모르핀 펌프가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의 죽음은 마치 천천히 물에 빠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 p.160~163

능력을 상실한 몸마음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야기가 공유하는 기승전결에도 불구하고, 오든의 심상은 장애가 심오한 통찰력이나 고차원적 이해로 이끈다는 행복한 생각을 비웃고야 만다. 장애를 이야기하는 서사 구조는 어려움을 겪는 주체가 고통스러운 시련을 거쳐 살 만한 순응으로 접어들며 교훈을 얻는, 승리의 어조를 띄는 경우가 다반사다. 믿지 마라. 내 삶의 많은 부분은, 특히 내 배변 활동은,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니까.
--- p.163~164

자넷과 나는 험난한 물살을 헤치며 다시 한 번 단단한 삶을 일구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비애는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남아 있고 나는 매일 그 깊은 비애를 느낀다. 나에게 섹스는 과거와 너무나 다른 것으로 변해 버려서, 내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상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두 번 다시는 오르가슴을 느낄 수 없다고 명하는, 죽은 감각을 가지고 사는 삶에 내가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 어떻게 영혼을 파괴하는 이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나조차 내 몸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두려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욕망할 수 있을까?
--- p.170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많은 이야기는 출생할 때 발견되는 “결함”으로 추정되는 것, 유전적 이상, 진단 시험 혹은 치명적 부상의 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사는 시간순으로 전개되며, 사건들은 결과순에 따라 표현된다. 당신은 책을 읽으며 상상 속에서 그 공간을 떠올리고, 이야기 속에 몰두한 당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물의 궤적이 구조화된 공통의 지평선을 발견한다. 당신은 잃어버린 능력을 되찾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려 애쓰는 이야기 속 인물을 따라 그 상황으로 들어가고 공감한다. 장애를 다루는 서사들은 거의 언제나 세상에서 새롭게 존재하는 방식으로서 장애를 수용하고 심지어 축하한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서사에 리얼리즘의 안정화 관습을 작동시킨다 해도 나는 여전히 이해 영역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
--- p.262~265

척수 손상이 데려간 어딘가 다른 곳이 나를 반복적으로, 매일같이, 가차 없이, 지긋지긋하게 공포스럽게 한다. 사고는 나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 그 공포가 가리키는 대상은 내가 나아갈수록 더 위협적으로 변하는 악의에 찬 수수께끼 속에 가려져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내가 깨달아 가면서 나의 공포는 더욱 커졌고, 이미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다.
--- p.268~269

나는 무엇을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일까? 나의 공포는 나의 삶을 망가뜨린 사고로 끝없이 돌아가는,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가올 것에 대한 것이다. 끔찍한 무언가가. 미래가 기다린다. 삶은 계속될 것이다. 매일같이, 내가 죽는 날까지. 나는 나이듦이 두렵고 이토록 깊이 손상된 몸으로 나이 드는 시련을 견디는 것이 두렵다. 나는 끝없이 계속되는 신경성 통증과 정서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두렵고, 끝없이 계속되는 비애가 두렵다. 비애는 세상을 물들이고 가끔은 그저 견디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사는 것이 두렵다
--- p.269~270

휠체어를 밀던 자넷은 내게 화를 냈다. 나는 아래쪽 앞니 바로 뒤의 잇몸에서 튀어나온 새로운 치아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를 혀로 느끼며 걱정하던 참이었고 “뼛조각일 거야”라는 자넷의 말을 들은 나는 의사들이 고정시켜 놓은 망가진 얼굴을 생각하고,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하며 울부짖었다. “난 진짜 완전 좆됐어.” “그럼 나는 뭐가 돼” 자넷의 높아진 어조를 보니 화가 난게 분명했다.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를 지우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지우는 거야. 나는 당신이 당신 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어. 하지만 당신이 완전히 좆됐다고 말하는 건 당신에 대한 내 욕망과 나의 사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 이후로는 이 삶을 저주하며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기로 다짐했다.
--- p.275

나는 내가 슬퍼하기를 멈출까 봐 두려운 동시에 슬퍼하기를 멈출 수 없을까 봐 두렵다. 만일 슬퍼하기를 멈춘다면, 나는 완전히 변화된 몸과 변화된 삶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과 화해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잃을지 무섭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체화된 열정이 온몸을 통해 느껴지던 감각을 잃는 것이 두렵고, 즐거움의 감각을 망각하게 될 것이 두렵다. 만일 내가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끈끈한 호박색의 진액 속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나는 함께 살기에 불가능한 존재가 될까 봐 두렵고 살고 싶지 않게 될까 봐 두렵다.
--- p.276

나는 여기 있다. 처음부터 내가 이야기해 온 감각, 즉 따끔거리고, 떨리고, 타는 듯한 신경병증성 통증을 안고 책상에 앉아 있다. 이 통증은 나의 몸을 가득 채우고 세상과의 경계를 그린다. 내가 집중하고 있을 때, 나의 몸마음은 당면한 일에 몰두하고 통증의 감각은 배경이 되지만 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즉 내가 쉬려고 할 때 통증은 다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토록 복잡하게 체현된 푸가를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 p.277

사고 직후 나는 언어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몸을 말로 표현하고 싶다는 촘촘하면서도 고집스러운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신경 폭풍 속에서 살아간다. 전기가 흐르는 것과 같은 이 신경학적 폭풍은 지금까지도 때때로 압도적일 정도로 격렬하며, 섬뜩할 정도로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내 삶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며, 그 장르가 미래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개념화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든 상관없이 내 삶이 공포물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 p.278

나는 삶의 짐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에 대해 안다. 내 몸속으로 밀려드는 옥시콘틴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나의 몸마음이 기묘하게 돌진하는 비존재의 고요를 알아가면서 나는 내 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까무라지듯, 나는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고통의 척도에서 0점 이하의 더없이 행복한 고통 없는 상태로 흘러들어 갔다. 사랑스럽고 안락하고 지속 불가능한, 살 수 없는 삶.
--- p.279~280

내가 사는 것이 자넷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든다고 자넷이 내게 이야기한다. 이렇듯 간단하고 심오하다. 나의 부상을 “치명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며, 사고 이전에 너무나도 활력이 넘치고 생생했던 사랑이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서로를 향한 우리의 감정이 온전하고 견고한지를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 사실이, 설명할 수 없이 힘겨운 나의 삶을 살 만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우리가 둘 다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의 상호성을 누린다는 것을 안다.
--- p.280

지나가 버린 것들을 회상하느냐, 아니면 괴롭고 두렵지만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보며 살아가느냐 사이의 불가능한 선택에 매일같이 직면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과거를 잊을 수도 없다.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과거가 필요하고, 한때 나였던 그 몸을 기억하길 원한다. 망각은 불가능하다. 물론 망각은 피할 수 없는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살아가기 위해서 한때 나였던 사람을 잊어야 하고,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사람들이 잊는 것보다 더 유념해 망각하려 애써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계속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과거의 우리와는 다르지만, 항상 되어가는, 되기의 과정 속에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열정적으로 살기로 선택했고, 곧 예측 가능한 미래에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선택을 할 때마다 나는 과거로부터 한 발자국 멀어지며, 이전의 나와 점점 더 분리될 것이다. 이것은 지난한 과정이다.
--- p.281~282

작업치료사 패티가 지시했을 때 나는 크리넥스를 집어서 탁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놓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쓰라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매일같이 훈련을 따르며 아주 천천히 악력이 강해졌다. 휴지 집기를 시도한 후 패티는 연필과 책을 가져왔다. 패티는 책을 펼쳐 놓은 후 연필을 거꾸로 쥐고 지우개 부분으로 책의 가장자리를 누르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고는 내게 연필을 건넸다. 나는 혼신을 다해 연필을 쥐고 자넷과 간호사 위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책장을 넘겼다. “나 내 삶을 되찾았어.” 눈물을 흘리며 나는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나 내 삶을 되찾았어”라고. 우리 넷은 함께 울었다.
--- p.28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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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그 때, 나를 기필코 살게 했던 책. 이 책은 결코 장애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도,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취약하고 유한한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동시에 적극적으로 망각하고자 했던 그녀의 분투는 우리 스스로를 치열하게 다시 읽도록 도와준다. 우리에게 비극이 찾아오고 죽음의 얼굴이 가까워질 때 필요한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책 속에 있다.
-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자전거를 타는 나’와 ‘휠체어를 타는 나’는 같은 사람이되 같지 않다. 자전거와 휠체어의 분명한 차이가 삶을 재앙의 자리에 밀어 넣는다. 죽음보다 삶이 두려운 곳으로. 크리스티나 크로스비는 그래서 쓴다. 무너진 채로, 부서진 그 자리에서. 그는 아무것도 초월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극복하지 않는다. 사지마비 상태의 몸을 매개해 통증과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셈해 본다. ‘다른 몸’의 이야기가 넓히는 이해의 지평이 깊고 뾰족하다.
- 장일호 (『시사IN』 기자)
『와해된, 몸』은 공동체의 일부로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끝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비애와 상실을 안고 살아냄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회고록이다. 크리스티나 크로스비의 광활한 지적 사유는 그야말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번뜩이는 정밀함으로 타오르고 있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크로스비의 산문은 사고가 그녀의 육체적·정신적 삶에 남긴 여파를 서서히 이해하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어둠을 밝히는 비범한 책이다.
- 주디스 버틀러 (여성학자)
크로스비는 파괴된 몸에서 살아간다는 것, 새롭게 맞닥뜨린 극단적 한계 속에서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그려낸다. 몸속을 낱낱이 헤집는 날카로운 묘사로 손쉬운 자기 연민과 고난 극복의 서사에 저항하면서, 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너절하고, 취약하며 퀴어할 수 있는지 독자들이 알아주기를 요청한다.
- 『뉴요커』
장애와 함께하는 삶을 다루는 회고록은 “거의 언제나 그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는 만족스러운 결말로 나아간다”라고 크로스비는 쓴다. 하지만 크로스비는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결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통찰만으로도 이 우아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 『워싱턴포스트』
그렇다, 『와해된, 몸』은 참담한 사고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또한 우리 모두의 삶이라는 사고 그 자체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드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 『로스 앤젤레스 서평』
만성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지독한 일기이자 생존에 대한 축하이기도 한 이 책은 삶을 살아내는 동시에 삶의 정의를 바꾸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복잡한 이해를 담고 있다.
- 『엘르』
우리의 상호의존성, 취약성,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는 능력이라는 기본적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변혁적인 책.
- 매기 넬슨 (『벨라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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