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 몸 생존하기에도 벅찬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빠르게 정리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서로를 너무 빨리 포기해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우리가 서로를 손절하지않고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는지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 「서문」 중에서
그래서 책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감정적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은 자기의 기분이나 감정을 한꺼번에 다 쏟아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남과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내용에 무척 공감이 됐어요. 사실 저는 평소에 그렇게 하지는 않고 급하게 여러 가지를 다 쏟아내는 스타일인데 그렇게 하면 제가 되게 솔직하고 건강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 순간을 캐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 관계 안에서 나는 지금 이 행동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하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해버렸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이제 그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브레이크를 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바운더리에 대한 오해들 중 하나가 바운더리가 늘 한결같아야 한다는 거였죠. 근데 우리도 살면서 느끼듯이 우리 마음속에는 따뜻한 안방도 필요하고 때로는 서늘한 거실도 필요하거든요. 대문에서부터 들이지 않을 사람들, 거실까지는 들일 사람들, 안방에 들일 사람들이 다 달라야 된다는 이야기죠. 누군가 “나는 사람들이 거실에 있는 게 좋아. 안방은 나만의 것이야”라고 하면서 그게 편하다고 하면, 그게 제일 좋은 거라고생각해요.
저희 부모님이 가족 모임을 되게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진짜 어릴 때 그런 가족 모임에 많이 안 갔어요. 근데 나중에 커서 너무 외로워요. 그러니까 가족적인 커뮤니티가 저한테 부재한 거예요. 심지어 사촌 한 명이 저랑 같은 대학을 다녔는데 학교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만약에 자식을 키우게 된다면 각각의 장단점을 얘기해 줄 거 같아요. “네가 여러 가족 모임에 가면 가족이라는 커뮤니티가 네 삶 안에 생길 수도 있어. 근데 안 가면 너는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될 거지만 언젠가 그 부재가 느껴질 순 있어.” 우린 항상 소속감과 독립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둘 다를 알려주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의 마음을 먼저 알고 나부터 나를 챙겨야 나도 남을 챙길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거잖아요. 저는 이게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바운더리를 만드는 것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그렇게 자기만의 경계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1장 바운더리 : 나와 너의 건강한 경계 짓기」 중에서
저도 공감이 필요할 때는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적으로 위로가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외면하지 않고 공감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감이라는 게 개인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저는 그 둘이 하나의 결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에서도 그렇고 뇌 과학자들도 그렇고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과 타인에 대해서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우리가 공감을 못하는 거는 어쩌면 그 상황에 대한 감정의 팔레트가 없기 때문에, 즉 상상력의 범위가 좁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요.
또 자본주의 사회에선 연대하면 안 돼요. 노동자들이 공감을 하기 시작하면 연대를 하잖아요. 우리 모두가 다 연대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노동력 착취를 기본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겠죠. 착취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들끼리 무조건 서로 싸우고 경쟁하고 누구 쇠사슬이 더 금색이고 반짝이는지를 경쟁해야 되는 사회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받아온 교육과 이런 모든 시스템이 공감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비가 자기 연민 아니냐?”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은 두 개념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거든요. 자기 자비는 고통을 통한 연대예요.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겠구나’ 하지만 자기 연민은 ‘나만 힘들다’에서 멈추고 말죠. 그래서 그 구분되는 개념을 잘 짚어주신 것 같아요.
--- 「2장 공감 : 경계를 넘어 만나는 타인의 마음」 중에서
전통적 협력과 달리 스트레치 협력은 결과에 대한 참여자들의 기대가 각기 다르며, 상대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협력을 해야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스트레치 협력은 모든 부분에서 합의할 수는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구성원들의 각기 다른 문제의식과 해결 방안을 적용해가며 조금씩 실험해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이때 구성원들이 자신들 역시 문제의 일부라는 점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는 회사생활이나 학생회 활동 같은 거 하면서 협력할 일들이 있었는데요. 그때 제일 협력하기 어려웠던 사람은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걸 주저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회사든 단체든 결국 팀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한 사람씩은 돌아가면서 조금은 손해를 더 보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내가 지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음에는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조금 더 손해를 볼 일이 생길 수 있는 거죠. 그걸 인정하면서 같이 해야 하는데, 절대로 손해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초보 리더들한테 늘 말씀드리는 게 조직원들이 당신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끔 규정짓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당부해요. “나는 이런 걸 잘하고 이런 건 안 된다. 그러니 이런 건 나한테 기대하지 말아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갈등을 좀 덜 일으키거든요.
결국 열심의 정도가 비슷해야 되는 거예요. 저는 가끔 팀플할 때, “여러분, 우리는 열심히 하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빨리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이것부터 물어보고 시작하거든요. 얼마나 열심히 하고 싶냐고 물어보고 팀원들 열정의 평균을 맞추려고 그래요. 열심히 할 거면 다 같이 열심히 하고, 다 대충 할 거면 모두 동의해서 다 대충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싸우면 안 된다는 강박이 너무 강하죠. 싸우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합의가 안 되면 아예 발을 들이지 않죠. 책에 나오는 그 환경 전문가도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하잖아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요. 근데 결국 그러면 토론 문화가 있어야 하겠네요. 옛날에 하던 웅변대회 이런 거 말고 토론이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우연히 봤는데, 어떤 분이 나와서 그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자기 감정을 다스릴 때 이렇게 말해보면 좋대요. 만약에 내가 지금 화가 났으면, ‘나 진짜 화나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이름을 붙여보라는 거예요. 제3자를 부르듯이 “최새봄이 지금 화가 났다” 이러면 나와 감정 사이에 간격이 생기면서 나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해봤는데 진짜 효과가 있더라고요. 뭔가 웃기긴 한데, “내가 배고프다” 이러면 당장 뭘 먹어야 될 것 같은데, “최새봄이 배고프다” 이러면, ‘아, 그렇구나. 지금 허기가 진 시간이구나’. (웃음) 이게 재밌어서 하루 종일 해봤거든요. 근데 꽤 단순하지만 저한테 무척 효과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감정이 일어날 때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여서 마치 소설 속 제3자를 보듯이 해보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선은 거리감을 두고 그 자체를 인정하는 거부터 시작하는 거죠. 협력도 그렇고요.
--- 「3장 협력 :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의 순간」 중에서
저는 저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나 자연스러운 텐션이 아닌 상태로 상대방을 대할 때 약간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긴 해요. 관계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때도 그렇고요. 그래서 예전에 이걸 알고 제 텐션대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니까 어느 정도 외로움이 극복되는 것 같더라고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외로움이 덜어지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늘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느낄 때 얻는 그 위로, 연결 그게 되게 큰 것 같아요. (중략) 내가 지금 외롭다고 느낀다면 외로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만약에 앞에 있는 사람이 지금은 외롭지 않아도 분명히 언젠가 외로움을 느꼈을 거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좀 가벼워지고, 그러니까 얘기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뉴질랜드에서는 건강보건 관련해서 ‘외로움 부서’라는 게 생겼다고 해요. 그만큼 외로움을 심각한 질병 중에 하나로 보고 있는 거예요.
저는 예전에 일상에서 받았던 작은 친절들을 기억해 뒀다가, 제가 친절을 베풀 일이 있을 때 꼭 실천을 해요. 최근에 영어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다가 들은 내용인데, 어떤 분이 언어를 배우는 데는 인풋과 아웃풋의 비율을 3 대 7로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내가 배운 만큼 말을 해야 내 것으로 말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전 이게 똑같이 우리 삶에 적용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친절을 받은 것 이상으로 친절을 베푸는 거죠. 그래서 예전엔 단톡방에서 답장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대답을 안 하다가, 한 번 리더 일을 맡았더니 답장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저도 단톡방에서 이야기나누면서 “그거 좋네요” 하면서 말해요.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있다면 헤어질 때 감사의 마음을 적은 쪽지를 건네드려요. 그렇게 하면 좀 연결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받았던 걸 잊지 않고 나도 누군가에게 베푸는 거죠.
저는 이 모임에서 서로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인지 이 모임에서 연결감을 얻어간다고 느껴요.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뭔가 챙겨주고 싶은 느낌? 지속적인 연결이 가능할 것 같아요. 우리가 비슷한 영역이어도 연차가 다르거나 살아온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과 차이를 인지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모아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면 좋겠어요.
--- 「4장 연결 : 우리의 관계는 연결되어야 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