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공자를 흠모하여 “어떤 사제司祭도, 교회조직도 없는” 중국의 선비들인 “공자의 제자들”을 “우주 안에서 유일한 이신론자들의 정규단체인 선비들”로 칭송했다. 그는 특히 측은지심, 수치심, 공손함 등 공감적 감정들을 덕의 ‘단초’로 보는 공맹의 공감적 도덕철학에 동조해 공감능력을 도덕의 바탕으로 정립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흄의 도덕론을 제3권으로 넘기고 그의 인식론에만 초점을 맞춘다. 흄은 서양의 비판적 경험론의 완성자다. 공감적 도덕론의 완결적 정점은 흄으로부터 아담 스미스(1723-1790)까지 연장되지만, ‘계몽된’ 경험론적 인식론의 종결자는 흄이다. 영국의 경험론적 전통에서 흄은 탐구를 자연에 집중한 베이컨의 전통으로부터 관심의 방향을 인간에 돌린 홉스·컴벌랜드·로크·섀프츠베리·허치슨의 철학전통을 완성한 것이다. 흄은 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식을 “인간과학(science of MAN)”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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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에 대한 공자철학과 중국 정치경제의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측은·수오·공경지심 등의 본성적 공감 감정에 근거한 인·의·예덕의 윤리적 삼덕과 칠정의 중화로 요약되는 공맹의 탈종교적·경험주의적·성선설적 도덕철학인데, 이것은 신학적 계시도덕론, 이성도덕론, 네오에피쿠리언들의 계약·동의에 의한 도덕론, 기획도덕론 등을 거부하고 인간의 자연본성적 도덕감정과 ‘공감’능력을 도덕의 기초로 보는 섀프츠베리·허치슨·흄·스미스의 세속적 도덕감정론에 영향을 끼쳤다. 스미스는 공맹의 경험주의적·성선설적 도덕이론을 굴절시키고 삭감해 ‘소극적 덕목’인 ‘정의’를 앞세우고 ‘신적 덕목’인 ‘인애’를 뒤로하는 자신의 자유주의 도덕철학을 수립했다. 둘째는 공맹의 ‘무위이치’ 사상과 자유시장론적 양민론養民論, 사마천의 자유경제론과 유구한 중국적 실천에서 확립된 정치경제적 자유론과 국민평등교육론인데, 이것은 케네의 중농주의 자유경제론과 평등·의무교육론, 흄과 스미스의 자유상업·자유시장론에 영향을 끼쳤다. 스미스는 공맹의 양민론에서 복지론을 배제하고 자유시장론만 수용해 플라톤의 야경국가로 복귀하려는 듯이 복지제도 없는 시장경제론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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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벌랜드의 인애도덕론과 섀프츠베리와 허치슨의 본성적 시비감각·도덕감각에 기초한 흄과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적 도덕과학이 18-19세기에 확산된 이래 서양의 본성론적 도덕이론은 도덕론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 도덕과학의 토대인 도덕본능의 존재에 대한 입증과 그 형성과정에 대한 경험과학적 설명으로, 즉 철학과 도덕론 바깥의 다각적 연구에 의거하는 ‘메타도덕이론(meta-theory of moral)’으로 나아갔다. 이 메타도덕론의 효시는 찰스 다윈(Charles Dawin, 1731-1802)이었다. 그는 기독교적 인간창조론을 부정하고 도덕적 인간의 기원과 발전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신기원적 시도를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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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론의 과학적 지평은 20세기 말에 가서야 새로이 개창되었다. 섀프츠베리·허치슨·흄·다윈·스펜서 등의 철학적·과학적 도덕감각론을 현대과학의 형태로 재발견해 부활시킨 학자는 철학자나 생물학자가 아니라,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치학자 제임스 윌슨(James Quinn Wilson, 1931-2012)이었다. 그는 1992년 미국 정치학회 학회장 취임연설문으로 「도덕감각」을 발표했고, 1993년에는 이 논문을 저작의 형태로 확대하는 「도덕감각」을 공간했다. 윌슨은 정치학자로서 예리한 관찰력을 발휘해 현대의 이기적ㆍ합리론적 사회계약론, 공리주의ㆍ게임이론, 내면화(사회화)이론ㆍ정의제일주의에 경도된 롤스의 사이코패스적 정의이론과 도덕발달론ㆍ행태심리학 및 진화생물학 등의 ‘보편화된 광적狂的 편견’을 간취하고 전후에 최초로 이 경향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가했다.
이로써 윌슨은 이후 세계학계의 연구방향을 바꾸고 본유적 도덕성과 도덕감각에 대한 연구를 새로이 개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윌슨의 비판과 도덕감각론의 재발견 이후 래리 안하트(1998), 리처드 조이스(2006), 데니스 크렙스(2011), 크리스토 뵘(2012) 등이 줄이어 새로운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윌슨·안하트·크렙스·조이스·뵘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진화론적 도덕이론자들은 모두 다윈의 메타도덕론(meta-theory of moral)을 계승하는 이론가들이다. 본성적 도덕감정(사단지심)에 기초한 공맹의 도덕과학은 다윈을 잇는 이 현대 진화론적 메타도덕론자들이 전개하는 도덕의 경험과학에 의해 다시 한번 최신의 첨단과학적 토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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