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여사와 아버지는 언니가 집안일을 도와줄 때 아주 깔끔하게 잘 처리한다고 칭찬하곤 했는데 그런 긍정으로 말미암아 언니의 파괴적인 성격은 양궁이나 사격을 하기에 적당하다는 논리가 서기까지 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대표팀이 메달을 걸고 애국가를 따라 부를 때마다 손 여사는 양궁을 시키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일찍 시켰으면 저 브라운관 안에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을 애를, 그만 부모가 무지해 그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한 개인의 문제로 본 것이 아니라 국가적 손실로 판단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언니 말고도 한국 양궁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는 충분하다는 말을 보탤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믿음이었다. 신앙에 투신하는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이 신앙심을 더욱 굳건히 만드는 것일 테니 말이다.
--- pp.38~39
“씻고 나오다 욕실 앞에서 확 미끄러졌는데, 팔을 다쳤는지 팔이 저리대.”
“언제 그랬는데?”
그것도 며칠 전이란다.
“뭐어!”
“침 좀 맞으면 될 거야.”
이쯤 되면 손 여사는 반의사가 아닌가 싶다.
“엄마가 의사도 아닌데, 왜 처방을 해!”
책상 위에서 가만히 통화하는 걸 지켜보던 바라가 꽥 내지른 목소리에 놀라 달아났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예고 없이 닥친 폭풍우 앞에 선 기분이었다. 손 여사의 대책 없는 확신이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나는 공포스러웠다.
--- pp.70~71
순서가 되자 옷을 갖춰 입은 아버지가 무대에 올랐다. 노래방만 가면 〈신라의 달밤〉 한 곡만 죽어라 부르는, 마이크도 필요 없는 그 우렁찬 목소리로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의 제목은 ‘사랑하는 당신에게’였다.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사랑하는 당신, 손 여사는 자리에 없었다. 손 여사를 위한 편지를 손 여사만 제외하고 모두 들었다. 아버지는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받고 싶은지, 얼마나 사랑의 표현을 받고 싶은지를 피력했다. 위트 있는 아버지의 편지를 듣고 있자니 찔끔찔끔 눈물이 났다. 물론 감동도 있었지만 너무 잘 아는 사실이 공표되는 순간 느껴지는 민망함이 밀려들어서였다.
--- pp.78~79
첫 기저귀를 갈면서 나도 아버지도 진땀을 뻘뻘 흘렸다.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는 왼쪽 몸만이 아니라 온몸이 마비된 것 같았다. 아버지가 멋쩍게 말했다.
“내가 얼라가 다 됐구나.”
그 말을 하면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더니 곧 아이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수치심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울먹이는 소리에도 나는 묵묵히 기저귀를 갈았다. 기저귀를 다 갈고 나서 아버지의 손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마, 아빠. 내가 있잖아."
--- pp.91~92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선을 긋는 메시지가 핸드폰 창에 뜬 걸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었다. 참았어야 했는데 나는 욱해서 그럴 거면 관두라고 했다. 몇 번 말이 더 오가면서 우리는 격앙될 대로 격앙되었고, 나는 단톡방에서 나와버렸다. 자식이 다섯이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일을 나누고, 똑같이 마음을 나누는 건 아니었다. 형제들도 아버지를 걱정했겠지만 나와는 우선순위가 달랐다. 손 여사 역시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 서운함과 미움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마음을 다해 아버지를 챙기기로 했다. 아버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이게 의무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그러한 것’을 하는 것이니 공평하게 역할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죄책감은 그 세계 속에 있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감정일 뿐, 그 세계와 물리적 거리를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에서는 느끼기도, 가지기도 힘든 감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p.101~102
요양보호사를 고용하는 동안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남동생은 유치원에 아이를 맡겼던 것과 비교하면서 아버지를 맡기고 있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타일렀다. 내가 느끼는 이 구조적 부조리에 더 이상 반기를 들 수도, 문제를 제기해 고쳐보자고 말할 수도 없다는 식이었다. 울분을 토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이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부당함은 견뎌야 한다고 말하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사회가 왜 그 많은 문제를 겪으면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기력해져 자포자기의 언어를 쓰게 되면, 그렇게 살게 된다.
--- pp.117~118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요양병원을 퇴원해 다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요양병원 간호사가 3일치 약을 챙겨주었다. 상급병원인 대학병원에 입원하면 거기서 약을 줄 게 뻔하니 약을 따로 주지 말라고 했는데도 원래 퇴원할 때는 무조건 3일치가 나간단다. “원래” 그래야 한단다. 그놈의 원래 타령!
아니나 다를까, 대학병원에 오니 그 약은 쓸 수가 없으니 폐기하란다. 병원에 있는 동안 상황에 맞춰 새 약을 처방받게 될 거라고. 이런 불필요한 낭비들은, 병원을 오가는 동안 수없이 목격된다. 없던 치료가 기록되고, 하지 않은 처치가 더해지고, 쓰이지 못할 걸 빤히 알면서도, 보호자가 먼저 고지를 해두더라도 개의치 않고 무조건 해버린다.
--- pp.153~154
감정을 많이 쏟고 나면 그만큼 허탈감이 밀려온다. 우리는 그런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미안하고 서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채 가끔은 서로를 그리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동생의 무책임함을 용서할 수 없었고, 동생은 자기 나름대로 책임 분배에 대한 기준을 독하게 밀어붙이는 나를 참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막내의 얼굴을 다시 보니, 어느새 나만큼 늙어 있는 모습에 기운이 빠졌다. 아버지가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의 순종적인 막내를 나도 그리워하고 있었던 듯싶다. 가족이 대상이 되어 발현되는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그 감정이 오롯이 내게 되돌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를 좋아하는 게, 손 여사를 미워하는 게, 역시 나를 좋아하고 미워하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화가 나는 것도 휘발되지 않는다. 감정을 아무리 발산해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 대상이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그렇다.
--- pp.180~181
1월 17일, 요양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옷을 입히며 물었다.
“아빠, 너무 힘들었지.”
“응, 죽는 줄 알았다.”
“아빠, 미안해.”
“뭐가?”
뭐가 미안할까. 다 미안했다. 형제들과 불화해서 미안했고, 손 여사에게 아버지 간병을 안 한다고 윽박지른 것도 미안했다. 술 취해 귀가하던 아버지가 사온 통닭보다 동네 ‘페리카나’ 양념치킨을 더 좋아했던 게 미안했다. 그때만큼은 페리카나 아저씨가 아버지보다 더 좋아 보였는데,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도 미안했다.
--- pp.218~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