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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프라하

: 작가와 함께하는 도시 산책

도시 산책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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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278g | 110*202*20mm
ISBN13 9791198275097
ISBN10 11982750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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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 가면 카프카를 몰라도 카프카를 만나게 된다. 거의 모든 기념품 가게가 카프카의 얼굴이나 글씨를 써넣은 기념품을 취급하고 있으니까. 이 도시 어디를 가도 카프카의 흔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과거의 나 역시 그 거리들을 그저 지나쳐 왔다. 생각을 거듭해 보니 아마도 그게, 카프카라서는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면 의식이 흐려지는 것처럼 머리가 자주 멍해지곤 하니까. 나는 그가 놓은 미로 속으로 나를 놓아 버리는 그 순간이 찾아오는 때를 경계했던 것 같다.
--- p.10

카프카는 프라하 도심을 가리키며 자신의 삶이 그 작은 원 안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내가 본 카프카의 원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깊었다. 나는 카프카가 그려낸 그 원을 들여다보며, 그 작은 세계가 점점 깊은 색으로 변해 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곤 하면서 이 글을 써 나갔다.
--- p.29

이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언지 찾는 일은 끝나 버리는 걸까. 카프카는 그 법원을 드나들며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림자 밖으로 나가며 내가 느낀 기분은 안쓰러움이었다. 소설, 그게 대체 뭐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결코 그런 이야기를 카프카(그 당시의 나)에게 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 p.50

건물의 정면에는 1960년대 중반 프라하의 봄에 제막된 반신상이 부착되어 있다. 카프카의 탄생과, 프라하의 봄과, 한여름의 침묵이라니. 이곳에 수만 년 겹겹이 쌓인 시간 속을 헤아리다가 문득 까마득해졌다. 카프카 역시 이곳을 스쳐 지나간 인물일 뿐이라는 사실도, 어떤 실체를 갖고 내게로 다가오는 그런 이상한 느낌이었다.
--- p.110

카프카는 1917년 6월에 이곳에서 피가 섞인 가래를 뱉었다. 그가 앞으로 겪을 수많은 병의 시작점이었다. 그 이후로는 수영을 할 수 없었으니, 카프카로서는 오랜 취미를 잃었을 거였다. 나는 더욱 안타까웠다. 아프기 전에라도 스스로 끙끙 안고 있는 슬픔을 물 위를 부유하며 좀 털어 내지. 그렇게 힘으로만 사람을 제압할 줄 아는 아버지를 뛰어넘어 근사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기야 했지만, 지나간 과거는 그렇지 않았고, 카프카는 자신의 방식을 선택했으리라.
--- p.193

그는 꿈꿨을까, 인디언이 되는 꿈, 달리는 말에 서슴없이 올라타 공기를 가로지르며, 자신을 달리게 하는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뒤에도 여전히 달리는 그런 꿈. 카프카의 프라하는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라진 땅 위에서 걷는 홀가분함, 텅 빈 거리에서 느끼는 해방감. 우리는 카프카처럼 산책하며, 스스로 해방시키는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자유를 맛본다. 한낮의 프라하에서.
--- p.216

카프카가 살았던 3층 건물은 늘 어두웠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매일 새로운 카프카를 그려 냈다. 어떤 날에는 연민을, 어떤 날에는 동정을, 어떤 날에는 질투를 느꼈다. 그가 내 안에서 깊어질 때마다, 연민도 아니고 질투도 아니고 그 어느 것도 아닌 어떤 감정이 내 안으로 들어와 차츰 깊어져 갔다.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이렇게 깊이 내 안에 들어온 그의 모습을 내가 바라보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 p.237

어둠 속 프라하는 그렇게 아기자기한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겹겹이 쌓인 시간에서 흘러나온 시간의 유령들이 횡행하는 곳이 되었다. 모든 것이 어둠에 파묻혀 있는 듯한 광경. 나는 우연히 목격한 그 찰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고는 입으로 문장을 흘려보냈다. [마을은 깊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것은 카프카의 마지막 장편소설 『성』의 첫 구절이었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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