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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원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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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6쪽 | 365g | 140*200*20mm
ISBN13 9791194141075
ISBN10 119414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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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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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인생도 철새가 아니던가. 철새처럼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에서 둥지를 틀고 살다 보면 그곳에 정을 붙여 텃새로 사는 게 인생이다. 누구든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 아닌 자가 어디 있겠는가.
--- p.19

한가한 오후에는 태양을 맞이하며 고개를 쳐들고 삶을 노래하던 때도 있었다. 동쪽 하늘에 여명이 시작되면 또 다른 하루를 맞느라 가슴이 설레기도 했고, 텅 빈 하늘가로 태양이 올라올 때면 그의 발자취를 따라 고개를 돌리며 해를 바란다는 이름값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서쪽 하늘가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평안한 안식을 가져보았다.
--- p.30

길목은 성장의 토대이자 쉼터요, 시작이자 매듭이었다. 길목을 떠나야 상급학교로 가고, 길목을 지나야 새 직장을 찾아가고, 길목을 넘어서야 새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길목은 어머니에게는 서운한 이별의 장소였지만 나에게는 기필코 넘어야 할 경계였다. 어머니 품속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는 관문關門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창공을 날기 위해 둥지를 떠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었다.
--- p.61

부부란 ‘무촌’이 아니라 ‘무덤덤’하고 ‘무관심’한 사이라 하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은연중에 세상인심이 변하여 일심동체가 갖는 의미가 그렇게 바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아내가 행복하면 가정이 평화롭고 그러다 보면 내 삶이 행복해지는 건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 p.85

여행은 현실에서 떠나는 것이지만 낯선 곳에 머무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보다 머물고 있는 그곳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바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알 때 삶이 여유로워진다. 어디든 내가 있는 곳에 마음 닻을 내렸다가 아무런 미련 없이 이름 석 자만 남기고 훌쩍 떠나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 p.96

길을 떠나기 전 해변에 다시 섰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나를 배웅하러 나왔다. 내 머리 위에서 맞바람을 이겨내느라 숨을 고르며 공중 묘기를 부린다. 떠날 때는 언제나 서운함이 남는 것인가.
--- p.116

이 봄이 내 곁에 와 있을 때 뭐라도 보람 있는 일을 시작하여 최소한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봄은 기적처럼 혹한의 겨울 장막을 깨고 나오는 신의 선물이다. 그렇게 찾아온 봄을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련다. 그래야 내가 봄을 노래할 자격이라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 p.134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주관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세상인심에 좌우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본래의 순수한 심성과 올바른 삶의 기준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 p.151

한 편의 글을 완성하려면 여린 병아리가 단단한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듯 외롭고 험난한 시간을 참고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다. 오직 이루고자 하는 열정으로 숱한 고비를 이겨내야 한다. 그래도 또 다른 글짓기에 도전할 수 있는 건, 산고를 겪은 여인이 또다시 새 생명을 소망하는 것처럼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태생의 기쁨이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비록 마음에 흡족한 글을 빚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는 매 순간만큼은 빛나는 연금鍊金의 시간이다.
--- p.177

몸통에 빌붙어 눈치만 살피다가 목숨이나 구걸하는 불쌍한 신세가 아니라 이처럼 우리 생활에 요긴하게 쓰이기도 하니, 어찌 꽁지를 그 모양만 보고 쉽게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하찮은 물건이라고 내치다가는 자신이 오히려 꽁무니 대접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p.203

날은 저물어 주위가 어둑한데, 서울 야경이 형형색색의 보석상자를 모아놓은 것 같다. 오랜만에 소소한 행복감으로 하루를 지냈다. 소확행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 조금씩 실천해 나가면 올겨울은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려나 싶다.
--- p.218

이어령은 세상 이치에 순응하며 흐르는 강물처럼 살다 가셨다. 얕은 곳을 흐를 때는 세상 가까이에서 사람들의 애환을 몸소 느꼈고, 심연에서는 인간 삶을 관조하고 깊은 내면의 소리를 음미하며 지냈다. 그가 남긴 언어와 사상은 내 가슴 곳곳을 적시며 흘러내린다.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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