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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의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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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325g | 140*200*20mm
ISBN13 9791194141044
ISBN10 119414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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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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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장사를 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말 하루를 제외하고는 항상 그 자리를 지킨다. 아파트를 나와 상가 쪽으로 가면 덩치 큰 빌딩들이 우람하게 서 있고, 그 아래 인도에는 노점들이 즐비하다. 그는 빌딩 벽을 배경으로 벽화처럼 존재한다. 그는 살아있는 벽화다.
---「빨간 모자」중에서

맑고 서늘하고 촉촉한 밤, 한밤중의 세레나데는 그칠 줄을 모른다. 잠잠한가 싶으면 다시 터져 나오고, 한껏 고조됐다 싶으면 어느새 뚝 그친다. 그러기를 밤이 새도록 계속할 모양이다. 삶은 이토록 애타는 사랑이며, 온몸으로 지켜내야 하는 목숨 같은 거라고 간절히 외쳐보는 것인가. 저 울음을 듣고 또 듣는다.
---「개구리 울음 듣는 밤」중에서

맨발은 그러한 모든 것을 벗어 던진 상태다. 아무것도 더하지도 걸치지도 않은 맨발이 됨으로써 진짜 나를 만나는 것이다. 맨발과 맨땅 사이의 그 직접성을 만끽하며 저 옛날 원시의 숲에서 뛰놀던 때처럼 대지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이다. 자연과의 직접적인 교접을 통해 아직 그 품 안에 있음을 기꺼이 확인하는 것이다.
---「맨발의 자유」중에서

봄은 최선을 다하여 말을 건네주고 있습니다. 다시 낯섦과 설렘과 충격을 주어서 마음마저 새롭게 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봄은 그러려고 다시 왔나 봅니다.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삼백예순다섯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나 봅니다. 어디 멀리 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이날을 기다려 왔을 것입니다.
---「봄이 전하는 말」중에서

숲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고 자동차는 막 고개를 넘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문득 온 천지가 다 붉었다. 혹시 불이 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 만큼 놀라운 광경이었다. 하늘과 해와 구름, 산과 들판과 마을 들이 함께 빚어낸 황홀한 콜라보였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걸 직감한 나는 후닥닥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나는 말더듬이였다. 내 입에선 겨우 우와아아, 아아아아 소리만 연이어질 뿐이었다.
---「노을」중에서

탓하고 나무라고 헐뜯고 비난하는 말들의 부정성과 폭력성 앞에 누구도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함부로 말총을 쏘아댄 적이 얼마인지, 그로 하여 철철 피 흘린 적은 또 얼마인지 돌아볼 일이다. ‘말 무덤’은 지나가는 발길을 붙들어 그 경계로 삼으라 한다.
---「말 무덤」중에서

할머니에게는 깨지고 부딪치면서도 끝까지 살아낸 사람의 체험적 깊이가 녹아 있다. 주름지고 볼품없는 모습일지라도 그 속에는 생명을 낳아 품고 길러온 거인의 혼이 깃들어 있다.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품에 안은 포용의 힘. 어쩌면 신화 속의 ‘마고할미’나 ‘설문대 할망’, ‘삼신할머니’의 강인한 생명력이 우리의 할머니로 이어 온 것이 아닐까.
---「채울 수 없는 결핍, 할머니」중에서

해 저문 강가, 그 여운은 짧으면서도 길었다. 삽시간의 황홀, 축제처럼 달뜨는 시간이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태양이 있기 때문이란다. 남몰래 행한 선행처럼 주변까지 따스하게 물들이는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 제 역할 다하고도 다시금 내어놓는 지극한 행선과 돌이켜 자신을 성찰하는 것도 석양의 미덕이리라.
---「해 저문 강가에서」중에서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문제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으며,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사뭇 진지한 과정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의 주인」중에서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대충 입지 뭐, 하고 입는 옷이 청바지이기도 하고, 멋 좀 내볼까? 아니 좀 젊어져 볼까? 작정하고 입는 옷이 청바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흔하게 입는 것이 청바지인데, 어떤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다가도 어떤 순간엔 아주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 청바지입니다.
---「청바지를 입는 이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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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남은 자신의 지성을 자처하지 않고 거대 담론에 휩쓸리지 않으며 창조적 예술혼을 떠벌리지 않는다. 창 구멍을 통해 저잣거리를 구경하던 조선 후기의 선비 이옥처럼 인정세태를 훔쳐보며 호기심과 연민지정을 달랠 뿐이다.
- 정승윤 (수필가)
김향남의 글 속, 그녀의 분신들은 선 자리가 분명하고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사랑스럽다. 벌레울음, 나비, 까마귀, 고양이, 엽낭게 등 그녀에게서 다시 태어난 존재들이 독자의 내면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간다.
- 김현숙 (시인, 수필가)
김향남의 글에는 여유와 능청, 유머가 담겨 있다. 그녀는 유머 속에 탐미를, 가벼움 속에 진중함을 숨기고 있다. 가끔 그녀의 당돌함과 배짱, 필력에 빠져들어 깜짝 놀라 웃을 때, 우리 모두는 행복하다.
- 안민희 (수필가)
수필집 《그 섬의 예술가들》이 빚어놓은 둥근 모래 알갱이들, 그것을 통하여 삶과 예술이 혼연일체임을 깨닫는 시각은 경탄과 공감을 넘어서 감미롭기까지 하다. 깊은 연대감은 그가 곁에 없어도 내 편이라는 것을 믿게 한다.
- 정아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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