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뙤약볕이 지나간 자리에 주먹만 한 호박이 열리고 방아와 깻잎이 화수분처럼 끝도 없이 잎을 내민다. 한쪽 구석에서는 지붕을 향해 줄기 뻗은 오이가 한두 개 매달린 자그마한 텃밭. 2층 주택 옥상에 자리잡은 우리집 텃밭이다. 한손 가득 딴 고추랑 방아잎을 떨어뜨릴세라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는 아이 얼굴은 전쟁에서 이긴 장수보다 더 의기양양하다. 그 눈부시던 기억은 늘 나를 미소짓게 한다. 바쁜 일상이었지만 밭에 물 주고 채소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잘 자라던 오이가 썩어 들어가는데 이유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도시에서만 자라 식물 이름은 물론이고 곤충 이름, 새 이름도 모르는 완전 도시 여자인 내가 도시 농부를 꿈꾸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친정 근처 주택 2층으로 이사했다. 어느 해 여름 무진장 더웠다. 어머니는 지나가는 말로 옥상에 텃밭을 만들면 단열 효과도 있고, 푸성귀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가성비 좋은 방법이 있다고? 봄을 기다려 옥상에 텃밭을 만들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옥상 한쪽을 밭으로 만드는 방법에서부터 채소 키우고 거름주기까지,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농사로 눈을 돌리게 했다. 어머니 덕분에 처음 만든 조그만 텃밭에서 꽤 여러 채소를 키울 수 있었다.
이번 생에는 어려운 일인가, 틈나면 주택지를 둘러보고, 치솟는 땅값과 쥐꼬리만 한 밑천 사이에서 체념하기를 반복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꿈이 옅어져 가던 때, 덜컥 아팠다.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나빠진 건 몸을, 몸의 출발이 되는 자연을 잃어버렸기 때문 아닐까. 자연인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강제로 때려눕힌 건 아니었을까.
병이 들어서야 그동안 돌보지 않은 내 몸과 영혼이 실은 다른 삶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 리듬대로 살기에는 너무 빠르고 바쁜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시내를 벗어나 조용한 주택에 가서 텃밭을 만들고, 채소를 키워 먹으면서 지내고 싶다던 소망이 다시금 꿈틀대기 시작했다.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 이곳 조용한 동네, 텃밭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 왔다. 어릴 적 종이에 그려본 적 있는 소박한 집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퇴근하여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기분이 좋다. 인구밀도가 낮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한적함과 서늘함이 나를 반긴다. 마을 공기가 일터에서 돌아오는 몸을 이완시킨다. 이 헐렁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옥상 텃밭 농사 몇 년과 옥수수 농사 일 년 경험이 전부인 나를 주변에서는 불안한 눈으로 쳐다본다. 어머니는 더 그렇다. 물정 모르고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딸이 고생할 거라 걱정이다. 당연하다. 어설프겠지. 처음부터 유능하게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뭐, 그러면 어떤가. 드디어 밭을 구했다. 그게 중요하다. 때는 겨울. 봄도 오기 전인데 우리는 벌써 무슨 채소를 가꿀지 이야기 나눈다.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고추, 호박을 꼭 키울 거란다. 나도 질 새라 내가 즐겨 먹는 상추, 오이, 배추는 꼭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맞다, 여름철 미각을 잃지 않게 해주는 가지도 키워야 한다. 겨우내 무엇을 키울지, 어디다 심을지 그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밭이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도시에 살면서 이런 소망을 가진 사람이 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서 서울 도시 농부가 2011년 45,000명이었는데 10년도 안 된 2019년에는 640,000명으로 늘어나 그사이 14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그들은 건물 옥상이나 베란다에서, 한 뼘되는 자투리땅에서 농사를 짓는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와 호미질하고 물 뿌리는 도시 농부는 안 어울릴 조합이다. 하지만 2019년 통계로 서울시민 15명 중 한 명이 도시 농부다.
도시 농부가 늘어나는 건 다른 곳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 둘 데 없이 옆으로도 위로도 꽉 막힌 도시에 숨통을 틔우는 농부들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셀 수 없는 도시에서 농부는 기업과 협력하여 건물 실내 온도를 낮추는 실험을 한다. 정원을 만들어 꿀벌을 불러들이는 프로젝트를 한다. 건물 옥상에다 작은 논을 조성하여 먹거리를 생산한다.
팔순이 넘은 외삼촌도 도시 농부다. 퇴직하기 직전 터만 남은 외가에 조그만 농막을 짓더니 퇴직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러 다닌다. 주중에는 바쁜 도시인의 삶을 살다가 주말이 되면 밀짚모자 쓰고 장갑 끼고 장화 신은 채 밭을 일구는 농사꾼으로 탈바꿈한다. 외숙모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 여자이고, 예순이 넘도록 손에 흙 한번 묻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외삼촌을 따라다니면서 배추, 오이, 상추, 고추, 무 농사를 짓다 보니 이젠 척척박사다. 일주일에 두세 번도 좋고, 바쁠 때는 며칠씩 머무르기도 하면서 채소를 가꾼다. 올해 김장하라고 무와 배추를 가져오셨다. 이웃에서 얻은 소똥 거름 덕분에 무와 배추는 한 손으로 들 수도 없을 만큼 큼지막하고 맛은 더 좋다.
외삼촌처럼 은퇴 후에 소일거리로 시작하는 이도 있지만,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만큼이나 농사를 짓게 된 동기도 다양하다. 내가 키우니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나 같은 소박한 이가 있는가 하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더위, 갑작스러운 홍수, 증가하는 이산화탄소 문제를 해결할 생명산업이라는 사명감에서 시작하는 이도 있다. 식물이 일으키는 순환의 소중함, 더불어 생명의 신비로움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가슴 따뜻한 사연도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도시 농부들은 회색 도시에 초록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아직 농사는 시작도 못 했지만,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이겠지만 이왕이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세 가지 무無를 실천하는 농사법이다. 세 가지 무란 땅을 갈지 않아 땅속 미생물을 살리고 탄소를 가두어 두는 무경운, 화학비료 없이 자체 순환으로 해마다 다시 땅이 비옥해지도록 하는 무투입, 마지막으로 천적과 같은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무농약이다. 작은 땅에서 식구 먹을 정도만 얻는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지키는 게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고작해야 민달팽이하고 배추흰나비 애벌레 같은 풀벌레랑 나누어 먹는 정도일 테니 말이다. 틈만 나면 동네 밭을 보러 다닌다. 비닐을 쓰지 않는 밭이 없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현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 있겠다. 지어봐야 알 일이다.
생계만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는 전제를 달면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야말로 요즘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고 노화 전문가들은 말한다. 건강과 재미, 보람, 거기다 사회적 인정까지 누리기 때문이다. 외숙모가 아이구, 허리야 하면서도 호미를 놓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외삼촌이 이제 못 하겠다, 올해가 마지막이다, 이야기하신 지도 벌써 몇 년째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즐거운 노동을 중단할 수 없으리라 장담한다. 은퇴 후 활기찬 삶을 영위하기 위해 책 읽고,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일만큼 좋은 건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새로운 도전을 떠올리면 저절로 입가가 실룩거린다. 왜 빨리 봄이 오지 않느냐고 성화를 부린다.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해 선택한 두 번째 직업은 매일 밤 즐거운 꿈을 꾸게 하고 아침을 기다리게 한다. 나를 살게 한다.
---「두 번째 직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