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을 썼어요?” 어느 날 한 청년이 내게 물었다. 나는 책을 쓰면 삶의 이론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얼떨결에 한 답이었는데 두고두고 생각해도 맞는 것 같다.
--- p.7
글을 쓰는 일은 삶을 해석하는 일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이 좋다. 그런데 그런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이 되는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의 모순, 다시 말해 내가 해온 생각(해석)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어쩌면 나만이 아닌 ‘사람’이라는 존재가 피할 수 없는 한계일지 모른다. 글을 묶어 책이 될 원고를 쓰며 삶의 이론이 만들어진다. 여기엔 분명 나이가 일조했다.
--- p.8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 많은 사람과 생명 전체를 사랑할 수 있음을. 역으로 모든 걸 사랑하는 일이 곧 내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임을. 그 둘이 충돌하지 않는 사랑의 길을 가야 함을. 그렇게 참 어른이 될 수 있음을.
--- p.13
엄마는 내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겠고 존재 이유를 모르는 시간, 공허함으로 멍하게 지낼 때조차 과분하게 나를 믿어줬다. 그래서 나를 지탱할 수 있었다.
--- p.24
모든 존재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하나의 우주다.
--- p.49
그녀의 ‘산’은 산처럼, ‘바다’는 바다처럼, 그리고 ‘강’은 강처럼, ‘들’은 들처럼, ‘꽃’은 꽃처럼 그답게 존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 나의 해와 달과, 그리고 별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이, 그 어떤 존재들이라도 각각 그답게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을 마음에 품는다.
--- p.63
함께 집을 떠나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뎌진 기쁨과 두려움, 고통,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벼리기 위해서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여행도 하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떠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왔다.
--- pp.66-67
무의미하게 여겨지던 삶의 한 자락조차 쓰다 보니, 읽다 보니, 노래를 만들다 보니, 부르며 가사를 생각해보니,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림을 들여다보다 보니,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일로 재탄생한다. 세상이 여전히 살만하게 느껴진다.
--- p.94
돈과 기술이 인격을 취하고 사람은 물화(物貨)되었다. 주검도 물화(物貨)되었다. 그런 세상이다. 악과 선 사이를 수없이 왕래한다.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이 따로 없다. 한 사람이 악하고 동시에 선하다.
--- pp.102-103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창릉천 변을 걸었다. 아무렇지도 않다. 특별한 일이 일상을 덮지 못하고 미래보다 오늘이 가깝다.
--- p.108
자연에서 태어나, 그 안에서 자라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세상의 중심인양 우쭐대는 어린 인간. 고난을 마주하며 비로소 어른이 되는 과정. 비로소 거대한 자연의 숭고함을 깨닫고, 그렇게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안에 겸손히 서게 되는 성숙의 과정을 나는 떠올리곤 한다. 그렇다면 좋겠다. 자연 안에서 어쩌면 가장 어리고 지혜가 짧은 인간이 마침내 철들어가는 과정이라면 좋겠다.
--- p.145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 “오직 주께서만 할 수 있다.”라며 주문과 같은 기도를 올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나눠준 언어, 각자의 길을 개척해 자신과 세상에 이롭게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다. 이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는 게 신에 대한 믿음일 테다. 하나님을 향했던 기도를 내게도 하는 믿음!
--- p.153
나와 남편은 이미 예순여섯, 예순아홉이다. 노화가 찾아오기에는 적절한 나이다. 노화! 나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지금이 좋다. 과거의 어떤 날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젊은 날의 치열함과 긴장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지금이 좋고 앞으로의 삶, 나이가 하는 일, ‘노화’가 싫지만은 않다. 노화는 어쩌면 많은 걸 잃는 것이라기보다는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긴 누구나 매 순간 다른 삶으로 들어간다.
--- p.156
신앙이란 ‘각자’, ‘현재’, ‘자기 앞에 있는’, 절대자 앞에서, 그를 인식하는 것에 제한된다. 사람과 시대에 따라 그 절대자에 대한 인식이 다양했고 지금도 그렇다.
--- p.162
슬픔을 모르는 날이 지속할 때 나는 내가 가짜라고 느낀다.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불의와 무자비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향해 “너는 가짜야. 인간으로 가짜고, 신앙인으로는 더욱 가짜야”라며 내게 유죄를 선고하고 슬픈 마음이라는 가벼운 형벌을 부과해왔다. 그리고 슬픔이라는 가벼운 형벌을 받는 동안 나라는 인간에 대해 안심하는 것이다.
--- p.163
‘자고로 역사는 승리자들, 학살과 점령자들이 기록한다.’ 그 기록에는 진실이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이 있다.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에서는 고가가 무너지고 새로 지어진 이층양옥집에 은행나무가 서 있다.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 노오란 은행잎을 내고 또 떨어내는 은행나무가.
--- p.179
누가 그렇게 썼듯, 사람은 복잡하게 나쁘고 나 역시 그렇다. 타인이 바라보는 내 이미지에 갇히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을 만나, 처음에는 달게 느끼며 관계가 생긴다. 이후 그의 쓴맛과 짠맛을 본다. 시간이 더 지나 그 모든 맛이 그의 맛임을 알게 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렇다. 웬만하면 쉽게 관계를 끊어내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 p.203
우리는 눈 감고 산다. 지구별에 탑승한 행운아들이라서. 공전과 자전이 잉태한 생명의 경이를 만끽하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별에 생명이 깃들 수 있음은 공전과 자전의 엄청난 속도 때문이 아니다. 생명의 신비는 속도가 아니라 어우러짐에서 싹튼다. 태양의 주위를 도는 속도와 스스로 회전하는 속도가 절묘하게 어우러졌을 때, 어둠의 먼지 속에서 생명의 호흡이 꿈틀거린다. 그것이 지구라는 별에 우리가 살게 된 까닭이다.
--- p.207
오늘의 사건이 어제의 사건을, 내일의 사건이 오늘의 사건을 덮어 버리는 사회에서, 화를, 희생을, 생명을, 왜곡을 어느새 잊고 하하 호호하며 살아가는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너무나 가슴을 울리는 문장, “기도의 소재는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것.”
--- p.240
수영장에 다녀와서 고구마 줄기와 토란대 껍질을 벗긴다.… ‘지구 생각’ 하며 비닐장갑 한쪽만 꼈다. 한 손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괜찮다. 차라리 한쪽도 끼지 말 걸 그랬다.
--- p.242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를 싫어할 때가 있다. 사람은 복잡하다. 그리고 그 복잡한 사람을 사랑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사랑에는 위험이 동반된다고 한 보스턴 칼리지 리처드 키니 교수의 말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p.248
하나님이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건 우리에게 그와 비슷한 자유를 주신 것이다. 우리 역시 스스로 창조할 수 있게 하셨다. 자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자 가장 운명적인 선물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창조해야 한다.’
--- p.258
“진짜 좋다.” 좋은 책, 좋은 영화와 드라마 등과 같은 문화가 사람들을, 때로는 종교가 감당하지 못하는 구원으로 이끈다.
--- p.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