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세 단계를 도약했다. 제일 처음에는 지혜와 능력과 지위를 가지고 잘난 체하는 관리들의 가련함을 논하고 칭찬과 비난을 구분할 줄 아는 송영자를 통해 그들보다 한 단계 올라섰다. 온종일 외물에 의해 흔들리는 사람들은 외물의 노예일 뿐이라고 비웃었다. 그다음에는 열자를 통해 송영자를 한 단계 뛰어넘었다. 바람을 타고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지혜로서 칭찬과 비난을 구분할 줄 아는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런데 장자의 이상은 어땠을까? 그는 바람을 타고 다니는 열자보다도 더 높은 이상을 추구했다. 바람을 탈 필요도 없이 자기 몸이 대도(大道), 천지와 완전히 결합된 경지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오로지 상상 속의 비행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어쩐지 처량함과 좌절감, 무력감과 적막감, 사방이 희뿌옇고 먹먹한 느낌, 황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중국문화의 매력이자 여유이지만, 또 중국문화의 비애와 비통함이기도 하다._소요유逍遙游: 위대한 날갯짓과 자유로운 휴식 --- pp.32~33
무궁함에서 자유자재로 소요하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세속적 가치와 세속의 관념, 개인적 욕망을 극도로 경멸하고 부정하고, 자신의 남다른 행동을 한껏 과시한 것이 장자사상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세속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하는 것이 장자가 소요에 이르기 위한 근본적인 전제조건이었다._소요유逍遙游: 위대한 날갯짓과 자유로운 휴식 --- p.34
인생의 고통스러운 이유는 인간 자신에게 있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가 어렵고, 설령 충족시킨다 해도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난다. 인간은 예민한 사상과 감정으로 인해 스스로 고뇌를 자처하기 때문에 인생이 온통 실망과 절망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또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고 시비와 진위를 가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한 마디로 인간을 만물과 차별화시키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지옥 같은 고통의 근원이다. 불교나 유교의 교리에서든, 노자의 『도덕경』이나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든, 장자의 『제물론』에서든 모두 이런 관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논조는 생명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확대되기도 하지만, 큰 깨달음을 얻고 세속을 초월해 신불(神佛)과 같은 태도로 승화되기도 한다. 공자는 인생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우선 인생을 훌륭하게 살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며 현실적인 충고를 건넸다. 반대로 장자는 이 문제에 있어서 소요하고 스스로 즐거움을 찾고 세상을 냉소적으로 대하는 중국 지식인들 특유의 특징을 드러냈다._제물론齊物論: 투시와 초월로 세상을 고르게 하다 --- pp.70~71
혼돈은 중국 전통문화 특유의 전체주의와 일원성一元性이 표현된 개념이다. 중국 의학에서는 신체의 각 부위를 따로 떼어서 이해하지 않고 몸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본다. 머리가 아프면 머리를 치료하고,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치료하는 서양의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국에 서양의 문물과 학문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학교든 사숙私塾이든 전공을 나누지 않고 학생들은 한꺼번에 가르쳤다. 중국에서는 한 가지 이치를 도출해내면 그걸 어디에 적용시키든 모두 통한다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방식이 현대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는 했지만, 철학과 문예, 청담淸談, 더 나아가 정치 분야에 있어서는 훌륭한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문학과 예술에서 그 우수성이 가장 잘 드러났다._응제왕應帝王: 주체성, 염담恬淡, 심장深藏, 변역變易, 그리고 혼돈混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