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이성적’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나쁜 것에 대한 책임을 이성에 지우
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이성의 타자’를 상기시키는 것이 풍조였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 그
스스로도 이성적이기를 원했던 급진적 이성 비판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가 배운 것은 이
성을 따르고 자연 파괴와 자기 파괴를 멈출 때만 동물 종種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서 이 행성에서 기
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무엇일까?
--- p.6
플라톤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그에 관한 일화를 들려준다. “한번은 탈레스가 별을 관찰하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다 우물에 빠졌다. 그때 재치 있고 똑똑했던 트라키아의 한 하녀가 그를 조롱하며
말했다. ‘그는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그의 근처, 발 앞에 있는 것은
그에게 감추어져 있다네.’” 플라톤은 덧붙인다. “이런 조롱은 철학에 완전히 빠져 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Theait 174a 이하) 탈레스는 당시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성공한 밀레투스의 시민이었으며, 후에 고대 7현인에 속한다. 반대로 트라키아의 하녀는
이방인이자 노예로, 사회 계층상 최하층민에 속했는데, 이 점을 고려하면 그녀의 말이 어느 정도의
조롱이었는지 분명해진다.
--- p.23
그리스인에게 사변 이성의 출현은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이행을 의미하기도 했다. 사실 이 간명한
공식의 정확한 의미에 관해 답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고대 그리스의 구어에서 ‘뮈토스’와 ‘로고
스’는 원래 같은 것, 즉 ‘말해진 것, 단어, 말’을 의미했다. 그리스인들이 적어도 헤시오도스(기원전 700년경)
이래 신화학, 즉 논리적으로, 유의미하게 구조화된 형태의 수많은 지방 신화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뮈토스와 로고스가 처음에는 단순히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31
반대로 비판이 외부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구상 내부의 어려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더욱 어렵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내재적 비판이다. 이 같은 어려움들이 그리스어로 ‘막다른 골목’을
의미하는 아포리아aporia로 판명되면 사변 이성의 구상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소위 합리성의 최고
형태는 합리성 자체가 생성하는, 특히 사변 자체의 수단과 목적, 경로와 목표, 실행과 의미 또는 요구와
결과 사이의 모순에 의해 생성되는 비합리성으로 인해 위협받는다. 이러한 아포리아들이 사변 이성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그리고 결과적으로 비판 이성의 개념을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이번 장의 주요
논제이다.
--- p.53
플라톤은 그의 이데아론을 통해 후대에 ‘형이상학’이라 이름 붙여진 것의 기초를 확립했다. 이 표현은
기원전 1세기에 로도스의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수집해 편집할 때 만들어졌다. 당시
스토아학파의 분류 체계는 ‘논리학’-‘자연학’-‘윤리학’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안드로니코스는 이를 기초로
삼았다. 이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중 여기에 넣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스스로는 그것을 “제1철학”, 즉 최초의 실체, 존재 그 자체에 관한 학문이자 모든 존재
자의 원리와 규정에 관한 학문으로 분류하고, 그 학문을 자연학 뒤에meta ta physika, 즉 물리적인 것에 관
한 저술 뒤에 배치했다. 이렇게 해서 ‘형이상학Metaphysik’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이 용어는 자연의 한계
를 넘어서는 사물과 문제에 관한 것이라는 후대의 내용적 의미를 빠르게 얻게 되었다.
--- p.71
사변 이성의 아포리아는 궁극적으로 근세 철학과 학문에서 지도적 이성 개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낳았다. 그것은 객관적 이성의 형이상학적 합리주의의 위기를 전제로 하며, 사변 이성의 실천적,
‘기술적’, 종교적, 인지적 아포리아로부터 피할 수 없는 결과를 도출한다. 근세적 이성의 형이상학사적,
신학사적 배경은, 때때로 주장되는 것처럼 단순히 그 이성이 형이상학에 단순히 반대하여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영역 내에서 형이상학적 논변과 함께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출현은 이 책의
논제, 즉 이성의 역사는 언제나 그 내재적 비판의 역사였으며, 본질적으로 비판에 의해 추동되어
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 p.121
이성Vernunft 4
합리주의 형이상학에서 회복된 사변은 “순수”이성이 그 자체 안에서 발견한다고 말하는 본유관념 이론
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것은 칸트가 비판하는 사변 이성의 형상이지만, 목표하는 방향은 데카르트와 같
다. 형이상학의 폐지가 아니라 형이상학을 과학으로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칸트의 비판 이성
구상은 데카르트적인 주관적 이성 자체의 합리성에 관한 내적 위기와 관련된 답변으로 가장 잘 이해된
다. 그 고유한 영역에서 데카르트의 출발점이 회복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p.132
칸트에 의해 완전히 다듬어진 비판 이성의 구상은 곧바로 비판받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대개 오해
에 기인한 몇 안 되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합리주의적 형이상학이나 흄식의 경험주의로 돌아가라는 요
구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는 그에 대한 칸트의 반론이 너무나 큰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
대에 이르기까지 『순수이성 비판』이라는 제목이 칸트를 비판하는 작가들에 의해서마저 얼마나 자주 모
방되었는지를 볼 때 그 권위를 짐작할 수 있다.
--- p.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