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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한 나의 바다

: 콜로라도의 할머니가 강릉의 엄마를 그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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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199쪽 | 128*188*20mm
ISBN13 9791198518255
ISBN10 1198518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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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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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간호사 40여년은 그야말로 〈죽음 앞의 생〉이었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은 우리네 삶. 누군들 빨리 가고 싶고, 힘들게 가고 싶고, 부채를 남겨두고 가고 싶을까? 어느 하나도 사연이 없는 죽음이 없었고, 어느 누구도 쉬운 죽음은 없었다. 부모보다 빨리 가는 젊은 이들은 부모의 가슴에 안겨,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들은 준비되지 않았던 상황에, 오랫동안 투병을 했던 환자들의 마지막 길에는 남겨진 이들의 안도감이 함께 했다. 많은 상황들을 만나며 나름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객관적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 죽음들 앞에서 담담하게 현재의 상황을 알려주고, 치료에 동참하며, 적정 거리 안에서 마지막 시간을 풀어갔다. 그런 경험들 덕택에 죽음 앞에 초연해졌다고 믿었다. 더구나 엄마와의 이별은 한국과 미국을 왔다갔다했던 시간과 코로나 시절과 요양원에서의 예기치 못한 사고들로 꽤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엄마의 마지막 시간이 가까워오자, 난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흔들렸다. ‘엄마의 소원’조차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그냥 해보는 소리는 아니었을까 의심이 생겼다. 누구에게 물어볼 곳도 없어 혼자 허둥거렸다. 나의 시선은 여느 때와 많이 달랐다. 무서웠고, 두려웠고, 아팠고, 힘들었다.
--- p.45

엄마는 장수할 것이고, 혼자 지내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이기심때문이었다. 엄마도 나이가 든다는 걸, 구순이 넘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전화할 때 ‘별일 없다’, ‘괜찮다’고 하면 그걸 그대로 믿었다. 늘 내가 원했던 대답이었고, 엄마는 건강하셨으니까. 어쩌면 나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봄날, 엄마는 집에서 넘어졌고 얼마 후 요양원으로 모셨다. 코로나 사태로 여행에 제한이 많아지자 요양원이라는 안전한 곳에 모셔 두고 온 것이 잘한 일 같다며 위안을 하기도 했다. 엄마는 요양원에 들어가신 후, 처음에는 영상 통화로 얼굴을 알아 보고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코로나 시기를 걸치며 치매진행이 급속히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거의 전화 통화조차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 p.53

“수술을 했다고 칩시다. 못 깨어나 중환자실이라도 가게 되면 그땐 또 어떡할 거예요? 수술이 되고 마취에서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이런 치매 상태에서, 수술 후 통증 같은 것도 말씀을 못 하실 것이고, 수술 전후 식사도 잘 못하실 것이고, 수술을 해서 골절 상태가 붙을 수 있다면, 그냥 이렇게 캐스트를 한 상태로 두어도 붙을 수도 있고, 지금도 아프실 텐데… 수술을 하고 나면 얼마나 더 아프겠어요. 수술 부위의 상처도 아플 텐데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어차피 못 쓰시는 다리예요.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3년이나 다리를 못쓰신 것인데, 우리 애쓰지 말아요. 이만큼 했으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원장님도 울고 나도 울고.
--- p.94

모든 일은 혼자 결정하고 헤쳐 나가야 했다. 누구와 상의하고 누구의 의견을 듣고 평생의 대소사를 결정했는지 문득 의문이 든다. 외삼촌도 이모도 미국에 있었다. 친한 친구분들이 있었다고 해도 다들 자신들의 가정이 있었던 분들이다. 말 그대로 군중 속의 고독이었던 엄마의 자리. 홀로 외롭게 모든 것에 책임을 졌던 가장. 뒤돌아보니 엄마의 홀로서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 p.126

엄마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아픔도, 슬픔도, 외로움도 잘 정리해서 한 곳에 놓아 두라고 부탁한다. 밀어 둔 아픔과 외로움들은 먼 길 떠나는 날, 한꺼번에 들어 옮기고 청소를 할까 한다. 그렇게 마음속 깊이 쌓아 둔 것을 정리하고 나면, 엄마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개운해질 수 있을까? 엄마처럼 치우고 나면 잔소리가 그리운 날에도 나는 울지 않고, 내 마음은 보송보송해졌을까?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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