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농가와 고국의 전원 풍경이여, 잘 있거라! 나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소년처럼 네게 작별을 고한다. 소년은 이제 어머니의 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설령 본인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를 절대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농부의 집」중에서
나는 혼자지만 홀로 있음에 고통받지 않는다. 아무런 소원도 없다. 이제 나는 태양에 빨갛게 익혀질 준비가 되어 있다. 더 성숙해지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고, 다시 태어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다.
---「산고개」중에서
나는 돌 하나에도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고, 폭 포수의 물 한 방울에도 고마워했다. 그것들이 내게는 신의 곳간에서 뚝 떨어진 것들로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낮게 구부러진 젖은 덤불에 대한 내 사랑은 감상적이었고, 현실은 전혀 달랐다. 전쟁이 터졌고, 장군이나 중사가 부는 나팔 소리에 나는 달려가야만 했고, 세상 곳곳에서 뛰쳐나온 다른 사람들도 질주하며 엄청나게 위대한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불쌍하고 순한 동물들처럼 우리는 달렸고, 시대는 점점 더 무시무시해졌다.
---「다리」중에서
그렇게 나는 만년간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호수를 내려다보고 싶다. 내가 재채기하면 천둥이 치고, 입김을 내뿜으면 눈이 녹고, 폭포수가 춤을 추며 흘러내릴 것이다. 내가 죽으면 온 세상이 함께 죽으리라. 그럼 나는 드넓은 바다 위를 날아가 새로운 태양을 가져올 것이다.
---「농가」중에서
우리가 나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 그러나 우리가 나무의 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고 나면 우리 생각의 짧음, 어린애 같은 섣부름과 성급함에 비할 데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나무가 하는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고 싶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나무」중에서
오늘 저녁 난 생선구이를 주문하고, 붉은 포도 주를 진탕 마실 거다. 그런 식으로 세상에 약간의 생기가 돌게 하면, 나는 다시 인생이 살 만하다고 느끼게 될 거다. 그럼 우리는 술집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추적추적 게으르게 내리는 빗소리를 더 이상 듣거나 보지 않을 거고, 나는 냄새 좋은 브리사고 시거Brisago Cigar를 피우며 술잔을 불 앞에 높이 들어 술이 핏빛으로 출렁대게 할 거다. 분명 그렇게 할 거다. 저녁 시간은 그럭저럭 지나갈 테고, 나는 다시 잠이 들고, 내일은 모든 게 달라 보이겠지.
---「비 오는 날씨」중에서
나는 그것을 오늘의 여정에 함께 가지고 가 기쁨에 찬 발걸음으로 산길을 걷고, 한참 아래에 있는 호수를 바라보고, 밤나무 숲에 바퀴가 멈춰 있는 물레방앗간 개울을 지나 고요한 푸른 하루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한낮의 휴식」중에서
오랫동안 방랑자는 봄바람에 살랑이는 종꽃처럼, 풀 속에서 노래하는 메뚜기처럼 홀로 노래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아니 일 년 동안 노래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경건하게 나비, 어머니, 튤립, 호수, 몸속의 피와 나무 속의 피를 노래했다.
---「호수, 나무, 산」중에서
좋지 않은 기분이 사라지고 나면 삶은 다시 멋지고, 하늘은 다시 아름답고, 여행은 다시 의미 있는 일이 된다. 그렇게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날에 나는 치유의 느낌을 받는다. 실제적인 고통이 없는 노곤함, 씁쓸한 뒷맛이 없는 체념, 모멸감 없는 감사함. 삶의 의욕이 서서히 다시 올라온다. 그럼 다시 노래를 부르고, 다시 꽃을 꺾고, 지팡이를 들고 장난도 친다. 다시 살아가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다시 극복할 거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자주.
---「구름 낀 하늘」중에서
살면서 소망했던 숱한 소원들이 다 이뤄졌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시인이 되었다. 집을 짓고 싶었는데 집을 지었다. 아내와 자식을 갖고 싶었는데 가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빨간 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