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해방』 출간 이후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동물의 인지 능력, 행동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알아낸 내용은 싱어가 보여준 주요 통찰을 대부분 확인해주었습니다. 즉 진보를 향한 인류의 행진에는 죽은 동물이 널려 있었던 것이죠. 이미 수만 년 전에도 우리의 석기시대 조상들은 일련의 생태학적 재앙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약 4만 5,000년 전 최초의 인류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당도했는데, 그들은 대형 동물의 90%를 순식간에 멸종시켰습니다. 이는 호모사피엔스가 지구 생태계에 미친 최초의 중대한 영향이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죠.
--- 「서문」 중에서
『동물 해방』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와 비교해보면, 현재 우리는 동물의 의식과 그들의 육체적·심리적 필요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오랑우탄에서 문어까지, 우리는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동물의 놀라운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엄밀한 과학 연구는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포유류와 조류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류와 문어뿐 아니라 바닷가재와 게 등 일부 무척추동물에까지 확장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이 새로운 지식은 우리가 관심의 범위를 시급히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현재 우리가 포유류와 조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어류 및 여러 수생동물들을 키워서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는 온실가스 배출이 전례 없는 폭염과 산불, 홍수를 일으키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쾌고감수능력이 있는 모든 존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우리 행성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육류 및 유제품 산업은 이러한 재앙에 가까운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규모는 운송 부문 전체의 영향에 비할 정도다. 이는 동물권 옹호자들이 오랫동안 촉구해온 식습관의 변화를 이루어야 할 또 다른 강력한 이유가 된다. 공장식 농업을 중단하면 다른 환경적 혜택도 얻을 수 있다. 가령 오염된 강을 정화하고, 많은 농촌 주민이 마시는 공기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심장병과 소화기 암으로 인한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 p.20
인간과 인간 아닌 동물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인간의 경우 특정 나이를 넘어도 심각한 인지 장애가 없다면 언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자신이 고통을 느낀다고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인간 아닌 동물은 일부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언어를 사용할 수 없고, 적어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다른 존재가 고통 받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들이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것인데,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으므로 동물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제인 구달Jane Goodall이 침팬지에 대한 선구적 연구인 『인간의 그늘에서In the Shadow of Man』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기분이나 정서를 표현할 때 언어보다 중요한 것은 등을 토닥이며 격려하거나 꼭 안아주거나 손뼉을 치는 등의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이다. 고통, 두려움, 분노, 사랑, 기쁨, 놀람, 성적 흥분 및 그 외 다른 많은 정서 상태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본적인 몸짓은 인간 종에서만 살펴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 아니다. ‘아파’라는 언어 표현은 말하는 사람이 아프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한 하나의 증거가 될 수는 있지만 유일한 증거는 아니다. 사람들은 간혹 거짓말을 하고 로봇도 ‘아프다’라는 말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가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 p.36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도 윤리적 맹목성에 관한 유사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학생 시절 동물 행동 실험실에서 연구 조교로 여름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어느 날 저녁 책임 교수가 핑커에게 생쥐를 대상으로 새로운 실험을 해보라고 말했다. 핑커는 바닥에 전기가 흐르고, 레버를 누르지 않으면 6초마다 충격이 가해지고 레버를 누르면 10초 동안 충격이 멈춰지는 타이머가 설치된 상자 안에 쥐를 넣어놓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쥐가 금세 상황을 이해하고, 충격을 피하기 위해 제때 레버를 누르는 방법을 익힐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따라 핑커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쥐를 상자에 넣고, 타이머를 작동시킨 후 집에 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핑커가 실험실에 도착했을 때 “쥐의 척추는 기이하게 굽어 있었고, 걷잡을 수 없이 떨고 있었으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충격을 받고 튀어 올랐다. 핑커는 쥐가 레버를 누르는 법을 습득하지 못하여 밤새 6초마다 충격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쥐를 상자에서 꺼내 실험실 수의사에게 데려갔지만 이내 숨을 거두었다. 핑커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나는 한 마리 동물을 죽을 때까지 고문했다.” 핑커는 이를 자신이 “한 일 중 최악의 일”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실험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이미 뭔가 잘못됐다는 걸 감지했다고도 말했다.
--- p.114
현재 실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앞에서 설명한 유형의 실험을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최소한의 첫 단계로 이득을 얻을 가능성이 동물에게 가해지는 해악보다 크다고 볼 수 없을 때, 실험 승인 거부권이 있는 윤리위원회의 사전 승인 없이는 어떤 실험도 할 수 없다는 요건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호주, 스웨덴 및 다른 국가에는 이런 유형의 시스템이 이미 존재하며,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이를 공정하고 합당한 것으로 인정한다. 물론 이 책의 윤리적 논의를 근거로 한다면 이 시스템은 이상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대개 이런 위원회의 동물복지 대표들은 각기 다양한 견해를 지닌 집단에 속해 있다. 하지만 명백한 이유로, 동물실험 윤리위원회에 참여해달라는 권유를 받고 이를 수락한 사람들은 동물복지 운동 내에서도 덜 급진적인 집단에 속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인간 아닌 동물과 인간의 이익이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설령 양자의 이익이 동등하다고 생각해도, 막상 그들이 동물실험 신청서를 심사할 때는 다른 위원들을 설득해 동의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소신을 밀고 나가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은 대안을 적절히 고려해보자고 하거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노력해보자고 제안하는 데 머물 수 있으며, 실험에서 없앨 수 없는 고통이나 괴로움을 능가할 만큼 실험이 상당한 이익을 산출할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이라고 요구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 현재 활동 중인 동물실험 윤리위원회는 대부분 방금 언급한 것과 같은 기준을 종차별주의적으로 적용하여 인간의 잠재적 이익보다 동물의 고통을 가볍게 평가한다. 그렇다고 해도 위원회가 이런 기준을 강조하면 현재 용인되는 수많은 고통스런 실험을 사라지게 할 수 있고, 다른 실험이 주는 고통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p.140
코로나 19 팬데믹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당시 공급망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산업계는 화장지가 아니라 쾌고감수능력이 있는 동물을 생산한다. 동물의 삶과 죽음이 생산자의 손에 달려 있을 경우 생산자는 동물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유달리 심한 폭풍우 속에서 유람선이 침몰했고 선주가 구명보트를 제공하지 않아 승객이 전원 익사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때 선주는 매우 심한 폭풍우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물 수십만 마리를 사육하는 생산자가 무언가 잘못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또한 돼지를 수용할 대체 사육장이건 돼지를 도축하는 인도적인 방법이건, 문제에 대비할 훈련된 직원, 장비, 자재 등을 갖추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 이 돼지들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동물 생산의 기초를 이루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조명해볼 수 있다. 이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공장식 농장을 운영하는 기업은 코로나 19 팬데믹 이전에도, 도축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던 팬데믹 이후에도 동물 수백만 마리를 고온 상태에서 도살했다.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 없이 동물을 생산하는 산업계는 몇몇 경우를 통해 자신들이 생산하는 쾌고감수능력이 있는 존재의 복리에 사실상 별 관심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 p.151
심각한 좌절만이 가득한 현대의 달걀 공장에서 철망 닭장에 감금된 채 사육되는 산란계의 삶을 이해하려면 잠시나마 산란계로 가득 찬 닭장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들은 편하게 서 있거나 앉아 있기가 불가능하다. 설령 한두 마리가 만족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해도 닭장 안의 다른 닭이 움직이면 그들도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는 세 사람이 한 침대에서 편안한 밤을 보내려 애쓰는 경우와 비슷하다. 다만 산란계는 하룻밤이 아니라 꼬박 1년을 헛되이 버둥거려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닭장에는 저항할 의지를 잃고 옆으로 떠밀리다 다른 닭에게 밟히는 닭이 꼭 한 마리씩 있다. 더 넓은 닭장에는 한 마리 이상인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농장 뜰에서라면 그 닭은 쪼는 순위가 낮은 닭일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순위가 낮다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닭장 안에서라면 이런 닭은 대개 경사진 바닥 근처 구석에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같이 사는 닭들이 모이나 물통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다 그들을 짓밟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 p.185
현대적인 사육 방식이건 전통적인 사육 방식이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천 년 동안 동물에게 고통을 가해왔다. 소, 양, 돼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국제 연구의 저자들이 적고 있듯이, “사람들은 농장 동물의 고통을 여전히 무시하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들을 제대로 치료해 주지도 않는다.” 이 저자들은 동물이 일상적으로 겪는 다음과 같은 고통스러운 절차를 논의한다. 웅돈, 황소, 숫양의 거세, 구더기 발생을 막기 위해 양의 주름진 피부를 잘라내는 ‘뮬싱’, 주로 소에게 실시하는 열 낙인 혹은 동결 낙인, 송아지, 양, 새끼 돼지의 귀 자르기ear notching나 귀표 달기, 돼지나 양의 꼬리 자르기, 송아지와 염소의 단각dehorning이나 제각disbudding(뿔의 싹horn bud을 잘라 더 이상 뿔이 나지 않게 하는 것), 황소와 모돈의 코에 금속 코뚜레 꿰기. 이 모든 절차는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유발할 수 있으며, 몇 시간 계속될 수 있다.
--- p.223
오늘날 어선단은 어장에 들어오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놓치지 않도록 촘촘한 그물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저인망 어업을 한다. 저인망 어업은 과거에는 아무도 침범하지 않던 대양 바닥을 따라 거대한 그물을 끌고 다니기 때문에, 깨지기 쉬운 해저 생태계에 타격을 가한다. 이 모든 남획으로 해양 생태계가 붕괴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하고 있다. 수천 년간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온 수많은 빈곤 국가의 작은 해안 마을에서는 전통적인 단백질 공급원이자 수입원이었던 수산 자원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서아프리카를 위기로 몰고 갔는데, 이곳은 규제를 받지 않는 불법 어획이 만연하면서 연안 어업이 붕괴되었다. 이 위기는 필사적으로 유럽에 가려는 아프리카인의 수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은 아프리카 현지 어장을 파괴한 저인망 어선이 잡은 물고기의 대부분이 판매되는 곳이다. 이러한 선진국의 어업으로 인해 빈자에서 부자로 또 다른 형태의 재분배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빈곤 국가의 해안에서 잡은 물고기가 양식 연어 같은 육식성 어류의 사료로 쓰여 오직 부유층만이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변환될 때, 이러한 재분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 p.248
기후변화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환경 문제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오직 기후변화만이 유일한 환경 문제는 아니다. 더 넓은 시각으로 환경 문제를 바라보면 식물성 식단을 선호해야 할 이유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개간하고 태우는 것은 나무나 다른 식물에서 탄소가 대기로 방출된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아직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동식물 종이 멸종될 가능성이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 파괴는 대체로 부유한 국가의 고기에 대한 엄청난 식욕으로 발생한다. 이 식욕 때문에 숲을 개간하는 행위는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을 위해 숲을 보존하고, 생태 관광 산업을 유치하며, 그 지역의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고, 숲을 이용해 탄소를 저장하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말 그대로 햄버거를 먹기 위해 지구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 p.263
많은 사람들이 채식 식단으로 전환한 이후, 동물성 식품을 섭취할 때보다 몸이 더 가볍고 건강해졌으며, 더욱 활기가 넘친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영양 전문가들은 건강하려면 동물 제품을 꼭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더 이상 갑론을박을 벌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의학 저널 중 하나인 『랜싯』은 EAT--- p.랜싯위원회를 발족하여 ‘100억 인구가 사는 세상을 위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식단’이라는 과학 기반 목표를 제안하고자 했다. 이 위원회에는 인간의 건강, 농업, 정치, 지속 가능한 환경에 관한 전문가 37명이 함께했다. 위원회는 인간의 건강을 도모하는 주요 식단에 대한 연구 결과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북미의 전망에 대한 연구로, 연구자들은 비건식, 채식, 페스카테리안pescatarian(해산물 채식주의자)식, 준準채식semi-vegetarian, 잡식을 하는 7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약 6년간 추적했다. 그 결과 그들은 고기를 거의 혹은 전혀 먹지 않은 사람의 사망률이 잡식주의자의 사망률보다 12% 낮았음을 확인했다. 사망률은 준準채식주의자보다 비건, 채식주의자, 페스카테리언에서 더 급격하게 감소했고, 전체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의 감소율이 더 높았다. 또 다른 연구는 식물성 음식을 더 많이 먹는 것이 제2형 당뇨병 및 관상동맥 심장 질환 발병률 감소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냈다. 위원회는 이 연구 결과가 “반드시 엄격한 비건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통곡물, 과일, 채소, 견과류, 콩류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는 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p.273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오늘날의 사람들이 견지하는 견해는 우리가 살펴본 이전의 모든 견해와 엄청나게 다르다. 하지만 실천적인 측면에서 따져볼 때, 다른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우리의 태도는 거의 변한 게 없다. 이제 동물은 더 이상 완전히 도덕의 영역 밖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인간과 분리된 채 도덕의 영역 바깥쪽 언저리 부근의 특별한 구역에 위치한다. 그들의 이익은 인간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을 때만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약 충돌이 발생한다면, 심지어 동물이 평생 겪는 고통과 인간 입맛의 기호가 충돌하는 경우라도 인간 아닌 동물의 이익은 무시당한다. 과거의 도덕적 태도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우리와 다른 동물에 대한 지식이 달라진 것만으로는 상황이 뒤집히지 않는다.
--- p.314
서구에서는 적어도 윤리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데올로기로서의 종차별주의의 지배가 종식되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 이 윤리적 사고의 전환이 궁극적으로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얼마만큼 큰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에 도전하지 않으면서도 동물의 환경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자비로운 편(매우 선택적인 근거에서)이다. 그럼에도 종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견고한 토대를 구축하려면 2,000년 넘게 축적된 동물에 대한 서구의 사고와 근본적으로 단절해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장이 오직 동물에 대한 서구의 관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물에 대한 태도에 관한 한 동양 또한 서구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듯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중국의 사상가들이 불교 전통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들이 육식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서구의 사상가들보다 덜한 듯하다.
--- p.320
1970년대의 페미니즘 운동은 새로운 아동문학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러한 문학 분야에서는 용감한 공주가 무력한 왕자를 구하고, 남자아이가 독점했던 적극적이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여자아이가 일부 맡기도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동물 이야기에 오늘날의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는 이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잔혹함은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주제로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섬뜩한 내용을 자세하게 보여주지는 않되, 동물을 우리의 흥밋거리나 저녁 식사를 위해 존재하는 작고 귀여운 대상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해야 함을 권장하는 그림책, 이야기, 영상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대부분의 농장 동물이 살아가는 실제 환경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육식을 하는 가정에서, 아이가 동물을 사랑해서 가족의 식사를 망쳐버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부모가 자녀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를 그다지 바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우리는 친구들로부터 고기의 출처를 알게 된 후 자녀들이 고기 섭취를 거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이런 본능적 반항은 강한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음식을 차려주는 부모가 고기를 안 먹으면 키도 안 크고 몸도 튼튼해지지 않을 거라고 할 때, 그 말에 반대하며 고기를 계속 거부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도움이 될 만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는 도덕성 발달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였다. 그는 한 에세이에서 네 살배기 아들이 어떻게 처음으로 도덕적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콜버그에 따르면 아들이 ‘동물을 죽이는 것은 나쁘다’는 이유로 육식을 거부했는데, 그의 생각을 바꾸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콜버그는 아들이 정당한 살인과 그렇지 않은 살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이고, 이는 아들이 도덕 발달의 가장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p.324
어떤 경우이건 ‘인간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양립 불가능한 선택지 가운데 참된 선택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해서건 인간 아닌 동물을 위해서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변명으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인간의 문제와 동물의 문제는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 물론 어떤 사람이든 사용 가능한 시간과 힘은 한정되어 있다. 또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활용할 시간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 문제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사람이 기업식 농업에서 벌어지는 학대의 결과로 생산된 제품의 불매운동에 동참한다고 해서 중단해야 할 것은 전혀 없다. 다시 말해 동물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주의자나 비건이 된다고 해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실 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의 복지, 기후와 환경 보존에 관심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건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온실가스 배출과 기타 형태의 오염을 줄일 수 있고, 물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며, 다시 숲을 조성하기 위해 광대한 토지를 확보할 수 있고, 아마존 및 다른 산림을 개간하려는 가장 핵심이 되는 동기를 제거할 수 있다. 나는 다른 목적이 우선이어서 동물 해방운동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채식주의자들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기를 먹는 사람이 ‘인간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이 축산 동물의 무자비한 착취를 내버려둔 채 인간을 위해 정확히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 p.328
우리는 동물의 세계라 하면 피비린내 나는 전투 떠올리면서, 동물이 같은 종의 다른 구성원을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거나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는 등 복잡한 사회생활을 영위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인간이 결혼하면 두 사람이 사랑 때문에 서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배우자를 잃은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기도 한다. 반면 다른 동물이 일생을 짝을 이루어 지내면 단순히 본능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린다. 또한 사냥꾼이나 덫을 놓는 사람이 동물을 연구소나 동물원에 보내기 위해 죽이거나 포획할 때, 우리는 동물이 배우자를 잃게 되어 고통 받을 파트너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편해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인간의 아기와 산모를 떼어놓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비극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동물의 새끼와 어미를 갈라놓는 것이 일상사인 반려동물, 연구용 동물, 식용동물 사육자는 인간 아닌 동물의 어미와 새끼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동물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들은 요컨대 ‘동물을 의인화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비판을 일축하기 일쑤다. 물론 인간 아닌 동물이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것처럼 느낀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종의 동물이 인간이 느끼는 사랑과 두려움, 지루함, 외로움, 슬픔 등과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는 증거는 명백하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동물을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무심한 기계로 보는 편의적 견해의 위험성보다는 감정적 의인화의 위험성이 덜 심각하다 할 것이다.
--- p.332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본래적 존엄성에 대한 호소가 도전받지 않을 때에만 그 호소가 평등주의 철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무뇌아부터 사이코패스,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대량 학살자에 이르기까지 왜 모든 인간이 침팬지, 개, 코끼리, 말, 고래가 가질 수 없는 존엄성이나 가치를 갖는지 묻는다면,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우월한 도덕적 지위를 정당화하는 적절한 사실이 무엇인지를 묻는 원래의 질문과 마찬가지로 답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질문은 사실상 하나의 질문이다. 여기서 본래적인 존엄성이나 도덕적 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본래적 존엄성 혹은 가치를 갖는다는 주장을 만족스럽게 옹호하려면 그러한 주장을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고, 어떤 인간 아닌 동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적절한 능력이나 특징에 근거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데에서 다른 특징이 아닌 존엄성과 가치를 끌어들이는 것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와 같은 거창한 구절은 논거가 바닥난 사람들이 내세우는 마지막 방편에 불과하다.
--- p.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