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헤세의 작품 가운데서 우리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 주는 글을 가려 뽑아 담았다. 단어보다 문맥에 충실하게 번역했고, 우리의 언어와 정서에 부합하게 윤문을 거쳤다. 가장 위대한 모험은 목숨을 건 모험이 아니라 나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다. 온 세상을 얻고도 나 자신을 찾지 못 한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오늘, 헤세와 함께 아름다운 ‘인생 산책’에 나서 보는 것은 어떨까.
--- p.6 「편역자의 말_인생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다」중에서
헤세는 고독했다. 혼자 있을 때도 군중 속에 있을 때도 그랬다. 고독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래서 헤세는 고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독 속에서 산책을 즐겼고, 산책하면서 사색을 즐겼다. 그리고 사색과 더불어 창작에 몰두했다.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다.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 하는 시간이다. 나를 성찰하고 본연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다.
--- p.37 「1장_홀로 내딛는 발걸음이 삶을 향하는 첫걸음이다」중에서
안개 속을 거닐어 보라.
얼마나 오묘한지.
숲과 바위는 홀로 서 있고,
나무는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나 혼자일 뿐.
내 삶이 아직 밝았을 때는
세상이 온통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을 모르는 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어둠은 은밀하게 다가와
서로에게서 서로를 떼어 놓는다.
안개 속을 거닐어 보라. 얼마나 오묘한지.
삶은 고독,
서로는 서로를 알지 못한다.
누구나 혼자일 뿐.
--- p.41 「1장_홀로 내딛는 발걸음이 삶을 향하는 첫걸음이다」중에서
누군가는 “견뎌 낼 만한 고통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라고 말한다. 우 리가 고통을 견뎌 낼 수만 있다면 그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지금 그대에게도 견뎌 낼 만한 고통이 있는가. 그 고통 을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는가. 그래서 그 축복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헤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과 인생을 사랑하는 것,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것, 감사하는 마음으로 햇빛을 마주하는 것, 슬픔 가운데서도 미소를 잊지 않는 것, 진정한 시학에 담긴 이러한 가르침은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
--- p.108 「2장_어떤 고통도 앞길을 막을 수는 없다」중에서
쪽지에는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내 시선은 한 단어에 머물렀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생각에 깊이 잠겼다. 그 쪽지는 데미안이 보낸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반에서 새에 관해 아는 아이는 나와 데미안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에게 그 그림을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 p.110 「2장_어떤 고통도 앞길을 막을 수는 없다」중에서
한때 나는 재능을 인정받고 주위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시당하거나 외면당하기 일쑤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내 삶은 더욱더 각박해지고, 황폐해지고, 위험해졌다. 정말이지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길은 나를 점점 더 공기가 희박한 낯선 곳으로 끌어들였다. 니체의 가을 노래에서 피어나는 연기처럼.
--- p.125 「2장_어떤 고통도 앞길을 막을 수는 없다」중에서
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호젓하게 오솔길을 걷는 것, 시냇물 소리와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향기로운 꽃내음을 맡는 것, 땀 흘리며 정원을 가꾸는 것, 모두 자연이 주는 기쁨이다. 이처럼 작은 기쁨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헤세는 그런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 p.143 「3장_기쁨은 언제나 불현듯 찾아온다」중에서
포근한 5월의 비, 쏴 하는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여름 비, 산뜻한 가을의 아침 이슬, 부드러운 봄날의 햇살,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의 뙤약볕, 하얗게 또는 새빨갛게 빛나 는 꽃망울, 잘 익은 과일나무에 흐르는 적갈색의 윤기, 계절과 함께 찾아오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즐거운 것들. 그것은 누구에게나 빛나는 나날이었다.
--- p.150 「3장_기쁨은 언제나 불현듯 찾아온다」중에서
나무마다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다. 인생의 꽃을 피우 는 시기도 사람마다 다르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언제나 지금이 바로 ‘그때’이기 때문이다. 꽃이 화려해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단아한 모습으로 잔잔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꽃도 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도 아름답기는 매한가지다. 모진 비바람을 견뎌 내고 인생의 꽃을 피워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 p.190 「4장_잘못 든 길이 때로는 인생의 지도를 그린다」중에서
땅 위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여기저기 나 있다.
하지만 목표하는 것은 모두 같다.
그대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수는 있지만,
마지막 발걸음은 그대 혼자 내디뎌야 한다.
그렇기에 그대가 힘든 일을 홀로 견뎌 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나 능력보다 낫다.
--- p.258 「4장_잘못 든 길이 때로는 인생의 지도를 그린다」중에서
인생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나를 온전하게 바라보고, 나에게 좀 더 충실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고, 내 인생 또한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나 자신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신뢰하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존재론적 소명이다.
--- p.265 「5장_긴 여정의 끝에는 내가 기다리고 있다」중에서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삶은 그 길을 암시해 주는 하나의 시도다. 지금까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본연의 자아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더러는 인간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 개구리나 도마뱀, 개미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있다.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사람도 있다. 모두는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에 내던져진 존재다. 그 리고 모두는 동일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 동일한 모태와 동일한 심연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자기 자신만이 알아낼 수 있다.
--- p.267 「5장_긴 여정의 끝에는 내가 기다리고 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