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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영 평전

: 빛과 어둠을 살다 간 근대 과학자

한국의 과학자 시리즈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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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48*210*30mm
ISBN13 9791198502810
ISBN10 119850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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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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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과 개화사상을 공부하고 있었던 지석영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선 땅에 역병 천연두가 곳곳에서 출몰했고, 그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개항 후, 부산에 일본인들이 물밀듯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지석영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왜관 인근부터 여러 감염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은 흉측했고 그것은 빠른 속도로 감염 지역을 늘려가고 있었다. 페스트ㆍ콜레라ㆍ두창 등의 전염병이 가리지 않고 조선인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왜관에 상륙한 일본 거류민들은 자체적으로 방역을 했기 때문에 조선인들이 감염병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었다. 민심은 전염병의 공포로 인해 흉흉해졌고 무능한 조선 정부와 무도한 일본에 대한 반감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지석영은 한약재와 한의학 기술만으로는 천연두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승 강위를 통해 북경에서 수입한 외국 서적을 찾아 읽으면서 공부했지만 막상 천연두가 확산되자, 번역 이론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는 천연두로 인해 어린 조카를 잃은 슬픔이 마음 한구석에 우물처럼 고여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간 마을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부모들은 천연두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무당을 불러 큰돈을 지출할 뿐이었다. 살아나면 다행이고, 죽더라도 조상의 탓이라고 말하는 무당을 원망할 수 없었다. 요행을 바랄 뿐, 아무 대처도 없이 천연두에 걸렸다 하면 대부분 죽어 나갔다. 아이를 잃은 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만 했고, 마을마다 슬픔과 한탄을 못 이기는 곡소리와 넋두리는 끊기지 않았다.
--- pp.26-27

갑신정변의 결과로 청나라의 영향력과 간섭은 극대화되어, 고종은 청의 압력을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의 강한 힘을 빌려 올 계획을 세웠다. 이 때문에 개화파 지석영도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초급 관리로서의 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운영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에 귀국하였다. 귀국한 뒤에는 도화원 출신 김용원의 도움과 민영목의 힘을 빌려 관립 촬영국을 함께 열어 고종의 사진을 처음 촬영했다. 한성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개화파를 무조건 싫어했다. 갑신정변이 수습될 당시, 사람들이 지운영의 개인 사진관에 들어와 기물과 건물을 파괴시켰다. 사진관은 근대 문물이었기 때문에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운영은 급진 개화파에 의해 후원자 민영목이 살해되자 큰 곤경에 빠졌다. 그는 김옥균이 정변을 일으켜 자신의 사업까지 망쳤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1885년 11월 3일, 지운영은 참판 민병석을 만나 김옥균 암살에 대해 논의했다. 이틀 뒤인 11월 5일 고종을 만난 지운영은 김옥균을 암살하겠다고 자청한다. 정변의 실패로 김옥균ㆍ박영효ㆍ서광범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기 때문에 고종과 왕비 민씨는 이들을 추적해서 죽이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으나 이미 한 차례 실패한 이후였다. 1886년 1월 10일, 고종은 지운영을 불러 국서와 여비 5만 원을 건넸다. 국서에는 지운영을 ‘도해포적사’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바다를 건너 역적을 잡는 특사로 임명한 것이다. 지운영은 1886년 2월 23일 인천에서 출발해서 나가사키, 고베를 거쳐 도묘에 도착한 후, 김옥균 일행과 접촉했으나 미리 알아챈 일행들의 방비로 인해 암살은 실패했다. 지운영은 무예에 출중한 협객으로 이름이 알려졌는데 그의 암살 계획은 너무나 허술했을까. 오히려 김옥균 측근들에게 속아, 고종의 국서와 여비까지 모두 빼앗기게 되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김옥균은 지운영을 경계했다. 지운영과 민영목, 민영목과 왕비 민씨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지운영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인간적인 판단이 미흡했기 때문에 오히려 김옥균 일행의 신고로 도묘의 교바시 경찰서에 투옥되었다가 겨우 조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고종은 이 암살 사건이 알려진다면 정치적으로 난처하게 될 상황이었으므로 지운영을 모르쇠로 대했다. 의금부가 지운영의 뒷조사를 할 뜻을 비췄으나 고종은 밀명을 내리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제 맘대로 다니면서 나라에 수치를 끼쳤으니 지운영을 엄하게 다스리라.” 했고, 급하게 유배형을 내렸다.
--- pp.56-58

이완용은 25세에 증광별시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1886년 9월 23일에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 기관인 육영 공원의 학생으로 특별히 선발되었다. 그는 민영익과 유길준이 의견을 내어 설립한 육영 공원에서 29세에 선발된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육영 공원에서는 헐버트ㆍ길모어ㆍ벙커 세 명의 미국인 교사가 초빙되어 최초의 영어 교육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교육이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친미적 성향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완용은 정치의 출발점부터 근대 교육의 수혜를 누렸고 친미 세력의 힘을 등에 업고 있었다. 따라서 출발점부터 지석영과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석영은 과거급제 전에 이미 종두장에서 백성들을 치료했고, 친일 개화파의 세력 안에 있었다. 일본에 직접 가서 종두법을 배워온 열정으로 그는 백성들의 천연두 접종에 온 열정을 기울이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완용은 육영 공원에서 미국인 선생들로부터 수학했기 때문에 영어에 능통했고, 자연스럽게 미국과의 교역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또한 국제정세에 민감했던 까닭에 갑신정변의 수습 과정에서부터 타국과의 정보가 부족한 고종의 심중을 정확히 읽어냈다. 그러나 워낙 조심성이 많은 까닭에 예민한 고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개화파의 완전한 축출을 위해 척사파 대신들과 힘을 모았다.

지석영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1887년 3월 30일에 직언을 하듯 상소를 올린 것이다. 4월 12일 이완용은 지석영을 문초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며 상소문을 올렸다. 지석영과 김옥균의 친분을 이유로 갑신정변에 연루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지석영은 국문을 받은 후, 당일에 유배지로 떠나게 된다. 이는 이완용 등이 올린 상소문을 고종이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지석영과 이완용은 정치 성향부터 지나치게 차이가 났다. 성격이 올곧고, 융통성이 없는 데다 오직 관직의 직무에 충실했던 지석영을 왕실의 동향에 빠르게 대응한 이완용이 그냥 두지는 않았다. 세계 정치의 흐름과 실리적 권력에 민감했던 이완용은 미국과의 교류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던 고종의 편에서 친일 개화파를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완용은 지석영이 정계에서 처음 맞닥뜨린 악연인 셈이었다. 그들의 뒤틀린 인연은 한일 합방에 이를 때까지, 이완용이 죽을 때까지도 수없이 충돌하면서 지석영의 입지를 뒤흔들어 놓곤 했다.
--- pp.87-89

지석영은 11개의 조항으로 개혁을 할 것에 대해 조목조목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서 상소를 올렸으나, 고종은 대답을 주지 않았다. 고종의 심기는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지석영은 다시 대답을 바라는 짧은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나 고종은 답이 없었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오전’을 주조해 사용하게 했던 이는 왕비 민씨였기 때문에 상소문 첫머리에 화폐의 유명무실함에 대해 직언했던 지석영이 몹시 불쾌했을 것이다.

고종의 묵묵부답에 힘입어 지석영을 못마땅하게 여긴 위정척사파들은 지석영을 유배 보낼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들은 지석영을 갑신정변 때의 급진 개화파로 몰아세웠다. 고종의 신임을 얻은 이완용이 주동이 되었고 4월 9일에 서행보가 지석영을 유배형에 처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렸다.

갑신년의 정변에서 역적의 명령을 써서 반포한 자는 신기선이고, 박영효가 흉계를 꾸미고, 은밀히 정변을 후원한 자는 지석영입니다. 박영교가 암행어사로 나갔을 때에 학정(虐政)을 가르쳐 주어 백성에게 해악을 끼치게 한 자도 지석영입니다. 그런데 신기선은 귀양만 보내고 지석영은 아직도 조정의 직책에 있으니 이들이 어찌 무슨 일인들 못 저지르겠습니까. 속히 국문으로 죄를 물어서 나라의 형법을 바르게 하셔야 합니다.

4월 15일에는 병조정랑 채상하가 지석영의 상소문에 죄를 물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지석영은 우두의 기술을 전파한다고 교육장을 만들어 군중을 선동하여 붕당을 조성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뜻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국문으로 물어야 하고 나라의 형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4월 25일 고종은 “이것이 과연 여론인 것이냐.”라고 대신들에게 물었다. 이때, 삼사가 합동으로 상소했다. 고종이 말하기를 “지석영을 탄핵하라는 이런 상소문이 몇 차례 올라왔는데 가히 공분을 일으킬 수 있었구나.” 했다. 이 대답으로 이완용을 비롯한 대신들이 연명장을 돌려 다시 상소문을 올렸다.
--- pp.104-105

독립협회는 회원들 대상으로 『대조선독립협회회보』를 발간했다. 이때, 국문에 깊은 관심을 두었던 지석영은 독립협회 회보가 발간되자, 우리말을 온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순 한글로 「국문론(國文論)」을 개재했다. 지석영은 독립 협회 회원으로 목원근ㆍ송적준ㆍ홍종우 등 3인을 총대의원으로 선정하면서 서양 의학 교육을 위한 의학교 설립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들의 건의를 들은 학부대신은 “경비가 부족하여 각종 학교 예산을 여의치 못하고 의술 학교도 지금은 겨를이 없으니 이렇게 아시고 후일을 기다리심을 요구하노라.”라는 회답을 하는 데 그쳤다. 고종의 환궁으로 의학교를 건립할 꿈을 이루려고 했던 지석영은 또 한 번의 좌절을 겪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이완용의 방해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완용은 무슨 까닭인지 지석영의 정계 진출을 가로막았던 보이지 않은 적이었다.
--- pp.1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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