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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봄

: 새로운 봄에 새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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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30g | 120*188*10mm
ISBN13 9791155643426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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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가 다가오니 시끄럽게 울어대던 새들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이윽고 쉬이이익 하는 날갯짓 소리가 귓가에 들리더니 눈앞에서 군무가 펼쳐졌다. 저게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니! 주변이 고요해지고 바람과 같은 날갯짓 소리만 들려서 소름이 끼쳤다. 작은 민물도요 무리는 먼바다에 나가 있던 다른 개체들이 조금씩 합류해 거대한 띠를 형성했고, 이내 얇은 줄과 타원형 형태로 하늘을 휘저으며 이곳저곳을 오갔다. 새들이 보여주는 몸짓이 너무 아름다워서 순간 눈물이 났다.
--- p.47

그날 이후, 쭉 최애 작가님의 최애를 만나기를 고대했던 나는 멈춰 있는 사진이 아닌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저어새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그 마음에 미약하게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만큼 저어새는 강렬했고, 뜨거웠다. 한여름 뜨거운 햇빛 사이로 한차례 분 바람에 흩날리던 단발머리, 주걱 부리 끝에 맺힌 물방울, 서로를 만져주던 연대의 몸짓, 그날의 공기와 온도, 습도, 바람까지. 내 마음과 저어새 사이에도 무성하게 우거진 초록 불꽃이 튄 게 분명하다.
--- p.67

놀라운 점은 또 있다. 다치거나 지쳐 대열에서 이탈하는 개체가 생기면 그 하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같이 쉬면서 회복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오늘 벌어 내일 살 만큼 각박한 현실을 버티는 나로서는 목숨을 걸고 이동하는 순간에도 뒤따르는 친구를 위한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모른다. 그저 올해도 이들이 무사히 날아와줬다는 것에 감사할 뿐.
--- pp.93~95

자연 속에 늘 새가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정한 사이클에 맞게 생명을 틔워내고 이내 지는 경관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여름철 무성히 자라난 습지에 바람이 스쳐 일렁이는 물결이 어찌나 감동이던지. 가을 추수를 기다리는 황금 들녘과 반짝이는 벼는 또 어떻고. 겨울철 얼어붙은 호수 위 고요하게 쌓이는 눈은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새를 보기 위해 출발한 길에서 나는 새들로 인해 항상 위로를 받았다.
--- pp.138~139

저녁을 먹고 들어와 잠깐만 누웠다가 씻는다는 게 깜빡 졸았다. (…) 그 짧은 새에 꿈을 꾸었고, 흑두루미가 나왔다는 것이다. 핸드폰을 보던 남편은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흑두루미로 변하더니 “내일 만나!”라는 말을 남기고는 긴 다리로 총총총 걸어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게 뭐지? 탐조하는 꿈을 여러 번 꾸긴 했어도 직접적으로 새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스토리인데 꿈속의 흑두루미는 너무도 생생했다. 도감에서 봤던 것처럼 빨간 눈망울을 가졌고 목은 하얗고 몸부터 꼬리 깃털까지는 짙은 회색빛이었다. 아무래도 내일은 일찍 나서야겠다. 이건 계시임이 틀림없어.
--- pp.142~143

그날 이후 나는 카메라에서 셔터음을 꺼버렸다. (…) 조금이라도 새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으면 사진을 찍지 않고 조용히 눈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새들과 나와의 거리가 5m가 채 되지 않는 환경이면 쌍안경조차 필요 없어서 맨눈으로 탐조가 가능했다. 찍는 행위를 자제하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저 새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깃털의 상태는 어떤지와 같은 생김새가 더욱 생생히 다가왔다. 날이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새들의 모습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 pp.158~159

정미소 근처로 쭉 이어지는 무논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여러 새들이 몰려들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백로와 황로는 트랙터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느릿느릿 함께 움직이더니 이따금씩 튀어 오르는 민물고기와 개구리를 재빠르게 낚아채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 (…) 이 모습이 오래전부터 이어진 듯 참 익숙해 보였다. 농부는 새를 쫓지 않고, 새는 이맘때쯤 오면 먹을 것이 풍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래도록 보고 싶은 풍경인데, 논 반대편 강둑에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사가 오늘도 한창이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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