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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를 입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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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42*210*10mm
    ISBN13 97911714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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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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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어 달 전부터 모르는 아이가 나를 찾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이는 진갈색 도미노를 입은 채 전동 킥보드를 타고 나타나 제가 궁금한 몇 마디를 물어본 뒤 앞뒤 설명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키가 꽤 컸고 덩치가 있었으나 몇 학년쯤 되는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도미노 모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막대 사탕을 문 채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고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을 거는 바람에 긴가민가했었다는 게 말을 전한 수찬이의 설명이었다.
    --- 「사고」 중에서

    안도감이 들기보다 불안이 증폭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미진이는 우리 학교 1학년의 마지막 학급인 6반이었다. 수찬이 말대로 1반부터 6반까지의 아이들에게 차례대로 접근했고, 6반인 미진이가 전한 소식은 도미노 소년이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그야말로 최종 버전이었다.
    “하아!” 내 입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대체 우리 학교 학생들을 1반부터 6반까지 배열해 놓고 접근하는 방법을 순서대로 정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품을 팔아야 하는 걸까. 우리 학교 교문에서 그 누구도 아닌 6반의 양미진을 알아보려면 하교 시간은 물론 얼굴 생김새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팔뚝에서 소름 올라오는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으스스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뉴스나 기사에 나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스토킹 사건이 떠올랐다. 남의 이야기였던 그것들이 이제는 나의 문제로 다가왔고 발등의 불이 되었다.
    --- 「쪽지」 중에서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하룻밤 새에 창수만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명절 같은 날도 5만 원을 주는 친척이 단 한 명도 없는 나에게 길 가던 아저씨가 5만 원을 주었다. 그것도 잘못이 있는 우리에게 말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고 검색하면서도 창수에게 문자 한 통 보내지 않았다. 말을 참아야 할 것 같았다. 함부로 발설하면 마법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필요한 것은 촉법소년이 어떻게 그와 같은 사회적 대접을 받게 된 것인지 이해하는 것이었으나 쉽지는 않았다. 그저 그날 알게 된 것은 촉법소년이면 무조건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래도 되느냐는 의심은 그 아저씨와의 사건을 복기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되었다.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도둑질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차를 향해 넘어지는 척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은 매 맞는 기분이랑 비슷할 것 같았다. 돈을 받을 수만 있다면 열 대든 스무 대든 맞을 수 있었다. 우리 반 남자애들이라면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렇게 밤을 새워 결심하고 나니 부쩍 어른이 된 것 같았다.
    --- 「어느 봄날의 난장」 중에서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곤충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이미 피가 마르고 있었다. 나는 피가 말라 죽어도 괜찮으나 누나는 무사했으면 했다.
    ‘어떻게 해야 추락을 막을 수 있을까.’
    김찬영과 김찬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현듯 아빠가 아니라 나야말로 김찬대를 만나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지 않으면 우리 가족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 「우리 형이에요」 중에서

    ‘꿍꿍이가 없을 수도 있잖아.’
    내 안에서 누군가 신음을 냈다. 아빠에게 왜 상대방의 말을 의심부터 하느냐는 충고가 그대로 반사되어 나에게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반사를 경험한 것은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서로를 마주 보면서 징그럽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김찬대와 김찬영이 노린 것이 그와 같은 부끄러움이라면 그들은 100% 성공한 셈이다.
    --- 「이번 생을 망하게 둘 수는 없어」 중에서

    엄마가 먼저 무너져 내렸다.
    “미안해요. 우리가 정말 잘못했던 것 같아요. 그때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그러고는 김찬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나도 일어나 죄송하다고 말한 뒤 무릎을 꿇었고 아빠도 따라 했다. 무릎을 꿇었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겠다는 듯 엄마는 우리 학교 1학년 학생 6명에게 찬영이가 접근한 것이 계획적이었는지 아닌지 물었다. 김찬대는 모르는 일이라며 어리둥절했고, 찬영이는 거기에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며 양손을 내저었다. 믿어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저는 겨우 초등학생이에요. 그런 머리를 어떻게 쓰겠어요?”
    그렇게 말하니 믿지 않을 수는 없었으나 찜찜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세상에 그런 우연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찬대와 김찬영이 돌아가고 난 뒤 그들이 앉아 있던 소파에는 두툼한 서류봉투 하나가 남아 있었는데 혹시 돈이면 어쩌나 혼비백산하고 열어보니 유아용 카드였다. 제목은 ‘엄마 너구리 도미노 게임’이었다. 그 슬픈 제목의 카드를 손에 들고 나니 도미노를 입은 소년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김찬대와의 용건은 온 가족이 무릎을 꿇는 것으로 끝났으나 아무도 어린 김찬영이 받았을 상처는 헤아리지 못했다. 김찬영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자기 몫의 사과를 따로 받아낼 작정은 아닐까.
    --- 「엄마 너구리 도미노 게임」 중에서

    엄마 너구리 도미노 게임은 엄마 너구리가 9마리 새끼 중 사라진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로, 그 한 마리를 찾지 못하면 남은 8마리에게 먹이를 주지 않겠다고 선포하며 시작한다. 새끼 너구리 9는 가족을 위기에 빠뜨리곤 하는 6이 미웠지만, 녀석을 찾아 나서는 일에 협력했고, 그 결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이 코스 1의 따뜻한 이야기라면 코스 2는 새끼 너구리 9가 6을 찾아 나서는 일에 협력하지 않아 가족 전체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밖에도 취향에 따라 여러 코스가 가능하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선한 마음을 먹고 굳건하게 나아가면 그 선한 마음이 형제와 이웃들에게 파도처럼 연쇄적으로 퍼져나간다는 점에서 도미노 게임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찬영이가 엄마 너구리 도미노 게임을 내가 봐줬으면 한 이유를 모른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빚으로 인해 김찬대에게 위기가 닥치자 찬영이는 자신도 위태로워졌다고 여겼을 것이다. 얼마나, 어떻게 위태로워졌는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형과 단둘이 사는 초등학생이 그 형이 돈 벌러 나간 밤을 혼자 보내야 한다는 사실보다 잔인한 게 있을까.
    --- 「선한 마음의 파도가 되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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