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금욕적인 승가 수도원을 찾아가는 건 그래서였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나 자신을 책임져야 했다. 거기에선 혼자서 끌어내지 못하는 힘을 어떻게든 끌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처음 수도원에 갔을 때 나는 자기 수양과 통찰, 자립의 힘을 얻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도원을 떠난 뒤로 그 힘은 차츰 사그라들었다. 태국에 온 건 그걸 되찾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 자신을 극한으로 떠밀어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
--- pp.17~18 「1장. 태국 외딴 숲속 사원으로 가는 길」중에서
나는 다른 체류자들에게 들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킨더 부에노의 포장지를 뜯은 뒤 초콜릿 바를 입에 넣었다. 킨더 부에노는 편의점에서 충동구매를 한 뒤로 배낭 속에서 계속 나를 불렀다. 이제야 그 부름에 응한 것이다. 나는 입을 다물고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천국이 따로 없군.
킨더 부에노를 더 많이 사지 않은 것도 후회됐다. 규칙을 어길 거면 크게 어겼어야 했다. 이제 남은 거라고는 범죄의 흔적과 그 흔적을 처리할 장소가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기숙사에는 쓰레기통이 없었고 승복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초콜릿 포장지를 매트의 모서리 아래에 밀어 넣었다. 그날 밤, 나는 몸을 뒤척일 때마다 포장지의 바스락 소리가 주변에 들릴까 봐 걱정해야 했다.
--- pp.122~123 「5장. 금식, 명상 그리고 탁발 순례」중에서
꾸띠는 훌륭했다. 얇은 기둥으로 떠받친 통나무 오두막으로, 법당 바로 너머에 있었고 뒤쪽은 큰길과 연결돼 있었다. 전면의 계단 몇 칸을 올라가면 샌들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현관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설 수는 있지만 점프할 수는 없는 높이의 천장과 고리에 걸린 모기장이 보였다. 내 수면 매트를 까니 전체 면적의 절반이 채워졌다. 두 개의 창문은 나무 덧문이 달려 있었고 고르지 못한 마룻장 틈으로 산들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 내가 묵는 꾸띠 현관에서는 울창한 덤불이 벽을 이룬 마당이 내다보였다. 계단 아래로는 테두리를 따라 작은 돌멩이가 줄줄이 놓인 직사각형 모양의 흙길이 이어졌다. 걷기 명상을 하기 좋은 나만의 길이었다.
--- p.126 「5장. 금식, 명상 그리고 탁발 순례」중에서
“슬픔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슬픔 덕분에 선한 마음이 커지는 것도 같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슬픔은 중독적인 것 같습니다.” (…)
“누구나 상실을 경험합니다. 만물은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도 감정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비탄은 곧 그리움이고 이별을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슬픔은 성숙한 감정입니다. 경험이나 특정 장소, 소유물, 동물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만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의 강도가 제일 클 것입니다. 비탄은 다양한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킵니다. 너그러운 마음과 선한 마음이 커지죠. 그랜트도 친구가 죽고 나서 그랬듯이 말입니다.”
--- pp.201~206 「6장. 마침내 고독 속으로」중에서
2월 한 달 내내 나는 그 달력을 주시했다. 2015년 2월 28일이 제임스의 자동차 사고가 난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 모든 게 달라진 그날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오늘, 분명 또 다른 무언가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껏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비행기 표를 샀고, 열두 시간을 이동하는 버스를 탔고, 나나찻에서 힘겹게 경험을 쌓았고, 뿌 쫌 곰을 찾았으며, 야생의 자연에서 진짜 동굴을 발견했다. 드디어 확실한 깨달음을 얻을 때가 됐다.
“제임스에게.” 나는 이렇게 적고는 우주에게 답할 기회를 주려고 하늘을 흘낏 올려다보았다. 돌풍이 불거나 마른번개가 치기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느새 황금빛 저녁노을이 사라지고 없었다.
--- pp.285~286 「9장. 깨달음은 마른번개처럼 찾아오지 않는다」중에서
내 일상에 자리 잡은 커다란 만족감은 놀랍게도 무언가를 새롭게 찾아서가 아니라 기존에 있던 무언가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 이를 깨닫자 수도원의 계율이 다르게 다가왔다. ‘이건 하지 마라’, ‘저건 하지 마라’, ‘아무것도 해하지 마라’, ‘이 시간 후에는 먹지 마라’는 계율은 처음에는 승려들을 구속하는 가혹한 명령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계율은 따르면 오히려 해방되는 지침에 가까웠다. 계율이 정한 경계 안에만 있으면 자유롭게 움직여도 괜찮았다. 사성제도 비슷했다. 행복을 찾는 데 집중하기보다 고통을 멈추는 걸 강조했다.
경계를 풀고 앉아 있으니 느닷없는 슬픔이 동굴 입구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내안을 휩쓸었다. 이번에는 슬픔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기보다는 슬픔이 휘몰아치게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이곳이 좋다는 생각. 한 달 뒤에 떠나도 좋다는 생각.
--- pp.319~320 「11장. 비우려 할수록 충분해진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