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삶은 무의미함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다. 과거에 비하면 과학의 발전으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는 세상에 보편타당한 진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카뮈의 처방전 - 부조리 속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라」 중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미련이 무너지고 무의미함을 느끼는 이유는 우상에 대한 기대와 좌절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믿음의 좌절’이다. 믿음의 좌절은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게 하고, 나를 지탱하던 인생의 가치들이 모두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윌리엄 제임스의 처방전 - 삶이 살 가치가 있다고 믿어라」 중에서
고통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고통은 내가 살아 있다고 의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쇼펜하우어는 “만약 인생에서 나의 삶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전혀 없다면 삶에 대한 고민 없이 무의미하게 세월을 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병든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통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쇼펜하우어의 처방전 -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경험을 즐겨라」 중에서
궁극적으로 ‘내가 누구인가’가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나의 인격, 성향, 내가 갖고 있는 정신적 수준 등 나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들이 나의 삶을 결정한다. 인간의 행복이나 삶 전체에 근본적인 것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며, 모든 것은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결국 기쁨을 느끼는 것도, 불쾌감과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도 모두 나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 주관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이에 따라 나의 불행과 행복이 결정된다.
--- 「쇼펜하우어의 처방전 -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경험을 즐겨라」 중에서
『반야심경』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 그 고통으로 인생의 모든 것들이 실패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그렇게 경제적 고통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매 순간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드는 생각에 불과하다.
--- 「석가모니의 처방전 - 고고통도, 괴로움도 다 공(空)함을 깨달아라」 중에서
중년을 맞아 삶의 무기력함, 무의미함, 우울함 같은 감정들을 느낀다면 억눌린 무의식 속의 내가 보내는 신호일 수도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진다면 내면에 숨겨진 나의 진짜 모습들을 하나씩 찾고 소통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융은 “40대 이전까지는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페르소나가 형성되는 시기였다면, 40대 이후부터는 내면의 나를 만나야 하는 시기다”라고 말했다. 나의 진짜 모습은 무의식 속에 있는데, 이를 억압하고 무시하면 결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의식 속의 내 모습만 남게 된다.
--- 「칼 융의 처방전 - 잃어버린 나의 진짜 모습을 찾아라」 중에서
중용은 나의 감정을 조절하며, 대상이나 상황, 맥락에 맞게 감정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 심리학의 ‘정서조절’이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 정서조절이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며, 필요한 경우 감정을 억제하거나 변화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헌대 심리학은 정서조절 능력을 기르기 위한 방법들을 갖고 있다.
--- 「『중용』의 처방전 - 적당하고 적절한 중간의 균형을 찾아라」 중에서
세상은 언제나 변하지만 내가 매일 창조하는 활동들은 변화 속에서 나를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변화에 휘둘리기보다는 세상의 흐름을 타면서 변화를 이용한다. 스스로 가치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변화가 큰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창업자들을 생각해봐도 세상의 변화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수많은 가치를 만들어냈다.
--- 「니체의 처방전 - 나만의 색깔을 창조하면서 살아라」 중에서
내가 뭘 가장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어려워서 매번 도움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똑같은 상황에서 나의 감정 패턴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 정보를 객관적으로 알고 있다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공자는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자가 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진정한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스스로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이를 고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 「공자의 처방전 - 혼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나를 지켜라」 중에서
죽음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죽음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몽테뉴는 “사람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곧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죽음이 언제 예고되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살아가는 순간을 온전히 누려야만 한다.
--- 「몽테뉴의 처방전 - 죽음을 선물로 여기며 나답게 살아라」 중에서
하이데거는 세상 사람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고유하게 자체로 빛날 수 있는 나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 대상으로 몰락해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평가의 대상이 되면 누군가 나를 인정해야만 훌륭해질 수 있다. 누군가 나를 별로인 사람이라고 평가하면 그 순간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 「하이데거의 처방전 - 고유한 나, 본래의 나로 살아라」 중에서
내가 외롭다고 느끼는 것에는 두 가지 속성이 함께 있다. 첫번째는 내가 혼자인 듯한 느낌이고, 두 번째는 인생 자체가 막연하고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속성 때문에 사람들은 외로운 감정을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혼자라는 느낌이 덜해지고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배우기 때문에 삶의 불확실함이 줄어드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의 처방전 - 외롭다면 창작하고 나를 사랑하라」 중에서
칸트는 규칙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지만 그 규칙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여기서 ‘자기 스스로 만든다’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만든다는 것은 외부의 욕망이나 규칙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오직 나의 의지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칸트가 말하는 ‘인간이 진짜로 자유로운 상태’다.
--- 「칸트의 처방전 - 온전히 나의 의지로 채워진 시간을 가져라」 중에서
무의미한 삶에 대처하는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언어 게임에서 비트겐슈타인이 강조했듯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행동들에 계속 참여한다면 우리들은 각자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고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즉 삶을 살아가면서 실천과 경험을 통해서만 인생의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 자체는 절대적인 의미가 없기 때문에 삶의 무의미함에도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 방구석에 앉아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만 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의미가 느껴지는 실천을 통해서 벗어나면 된다. 내가 의미가 느껴지는 순간과 그 경험이 이어지면 삶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 「비트겐슈타인의 처방전 -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천하라」 중에서
인간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다. 평소 행복과 동일시했던 나의 중요한 가치관은 어떻게 보면 행복을 위한 수단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위해서 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목적을 갖고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궁극적인 목적에 행복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을 잘 활용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인간으로서 잘 살기, 궁극적인 목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본래 주어진 이성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처방전 - 오직 그 활동에만 몰입해 관조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