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나는 경쟁률이 3대 1을 넘어가는 일에는 도전해본 적이 없다.
--- p.9
하지만 내친 김에 여기에 한 가지 씁쓸한 이야기를 더 덧붙여야겠다. 한국의 열악한 청년 취업환경은, 실업률이나 고용률 통계를 아무리 정밀하게 현실적으로 산출하더라도 다 담아낼 수 없는 슬픈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젊은이들도 한국의 젊은이들만큼 많은 시간과 즐거움과 가능성을 오직 취업을 위해 희생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어느 나라의 부모들도 한국의 부모들만큼 많은 비용과 돌봄의 세심한 노력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4
당신은 과연 금메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보라. 그리고 혹시 그럴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성급하게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우승할 수 있는 종목을 만들어내면 되니까 말이다.
--- p.57
어떤 영역이든 ‘마술을 할 줄 아는 강사’가 가지는 파괴력은 대단하다. 예컨대 열변을 토하며 오감(五感)과 경험적 이성의 인식론적 한계에 대해 강의하던 철학(혹은 논술) 강사가 설명 중간에 자신의 지갑에서 꺼내 무심한 듯 잘게 찢어 라이터불로 태워버린 5만 원짜리 지폐를 맨 앞자리에 앉은 수강생의 신발 밑에서 찾아낸다면 어떨까? 그래서 우리의 눈이 만들어준 판단을 확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많은 한계를 가진 것인지를 감각적으로 깨우쳐주고, 그런 깨달음을 데카르트를 비롯한 근대 초기의 철학자들은 어떤 개념들을 통해 이야기했는지를 설명한다면 어떨까?
--- p.64
글을 쓸 줄 아는 의사와 엔지니어, 공학자의 검증 평가서를 읽고 확인할 줄 아는 경영자. 혹은 이동기술의 역사와 철학과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는 자동차 공학자와 엔진의 공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자동차 마케터. 그 밖에도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미용의 컨셉이 무엇일지 상상할 줄 아는 화장품 개발자와 화장품 구성 성분의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는 화장품 홍보담당자. 이런 식으로 거의 모든 산업영역에서 이런 문이과 통합형 멀티플레이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 p.92
어쨌든 정리하면 이렇다. 어느 나라든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래서 인기 영역과 비인기 영역이 크게 나뉘고 있는 것은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특별히 딱한 사정이 있다. 다른 나라 젊은이들은 그래도 ‘더 높은 소득을 올릴 가능성’을 향해 내달리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적은’ 학과와 직업을 얻는 일에만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 p.109
그렇다면 우리가 글을 잘 못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우리가 건강하지 못한 이유’에 비해 훨씬 단순하다. 건강하지 못한 이유는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지만, 글을 못쓰는 이유는 거의 같다. 바로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p.144
전주비빔밥에서는 새참 나르러 끼니때마다 드나들기도 쉽지 않았을 만큼 드넓었던 호남 지방 평야에서의 바쁜 농사일과 연관된 사연을, 부산의 밀면에서는 아쉬운 대로 메밀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밀을 써서 전쟁통의 설움과 향수를 달랬던 이북 출신 실향민들의 애절한 사연을 읽어낼 수도 있다.
--- p.153
꼭 이질적이고 상반된 영역의 기능들만을 가지고 조합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사람이란 살던 대로 사는 존재이며, 그래서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지나며 자신의 테두리 안에 안주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주 조금의 영역을 넓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고 그만큼 충분한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 p.159
기왕 두 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길을 찾기로 했다면,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가로질러 오가며 그것들 사이를 연결해보도록 하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넘나든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특징이 될 수 있으며, 그래서 엄청난 경쟁력과 자산이 되어줄 수도 있다.
--- p.178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며,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거나 나의 지속적인 발전을 해치는 것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어제의 세상이 강요한 대로 달린 길을 오늘의 세상이 비웃기도 하고, 오늘의 세상이 세운 규칙을 내일의 세상이 단죄하기도 한다.
--- p.210
무료한 시간은 결코 아무 의미가 없는, 그래서 무엇으로든 닥치는 대로 메우고 채워야 할 인생의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인 동시에, 꼭 가지 않아도 될 영역까지 생각의 발길을 남기며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진취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 p.214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는 말은, 삶을 조금만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거짓말이다. 다만, 지더라도 싸워야 하는 정의가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 정의를 위해 사는 용사들은 아니지만, 저 ‘정의’라는 말의 자리에 놓을 수 있는 수많은 삶의 과제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당신이라서, 열심히만 한다면 성공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당신이기에,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있을 뿐이다.
--- p.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