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성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어릴 때 부터 잘 조절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부모 자신부터 자신의 감정을 올바로 추스리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되도록 화내지 말고 잘 받아줘라... 부모더러 참으라고 하는것은 어찌 되었건 간에 아직 불안정한 시기의 자식보다는 부모가 정신적으로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견딜 수 있는 내재된 힘이 부모 쪽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상황을 견디고 참아낼 만한 '자원'이 없다. 이제 겨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참고 인내하는 법부터 강요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출시키는법을 몰라 정서상의 불안을 겪게 된다. 그러나 부모는 이미 정신적으로 완성된 성인이기에 그럴 일이 없다. 그러니까 견딜 수 있는 자원이 있는 쪽이 참는게 옳지 않겠는가.... 따라서 부모는 아이를 대하는 순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 있어 적절한 감정 조절법을 익힐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들에게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항상 이렇게 다짐하곤 한다.
'나를 항상 되돌이켜볼 것,내 기분 상태를 늘 확인할 것.'
이런 전제하에 내가 내 아이를 대할 때 세운 대원칙이 있다.
'내 기분이 나쁠 때는 절대 아이를 야단치지 말자'...
이런 감정 조절은 절대적인 훈련과 노력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 아이 기르는 일 자체가 워낙 인내와 희생이 따르는 일이다보니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매순간 완벽해지려고 하기 보다는 실수를 할 때마다 그걸 깨닫고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하자 아이에게 실수를 하더라도 알고서 그렇게 하는 것과, 그것이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감정 조절을 속옷처럼 생각하라. 사람이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입는 속옷처럼 아이를 대할 때 감정 조절이 되고 있는지부터 체크하라는 소리다.
아이의 잠재력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아이가 조금 더딘 발전을 보이더라도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아이가 자신감을 잃지 않고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하면서 발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가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면 아이의 긍정적인 자아상 확립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아이를 자꾸만 위축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의 발전을 가로막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감정조절을 잘하는 법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 p.
조기교육의 종주국인 미국의 한 유치원을 방문했던 생각이 난다. 미국 덴버에서 가장 좋다는 그 유치원에는 유아용 교재나 교구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그 흔한 장난감 기차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오로지 있는 것이라곤 넓은 풀밭과 진흙, 노끈, 타이어 따위였다. 선생님 말에 따르면 그 아이들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연구하여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장난감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떨어뜨리므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얼 가르칠까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그 유치원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 가면 엄마들이 아이를 왜 느리게 키워야 하는지 굳이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는 것, 그것은 진정 아이의 입장에 서서,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아야만 실천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칠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바로 아이를 느리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기본 자세이기 때문이다.
--- p.69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그대로 고수해온 라다크에서는 누구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서 아이가 책을 찢고,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게 뭐야!'라고 귀찮게 해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라다크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라다크의 아이들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무제한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다. 그것을 보고 아이들 버릇을 버려놓는다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는 아주 일찍 즉 다섯 살 정도가 되면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게 된다. 그들이 그만큼 튼튼해지기만 하면 등에 어린 아기를 업고 다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 더 빨리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중략)
과거 우리 선조들의 모습과 라다크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육아원칙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가르치기보다 마음껏 자신의 욕구를 펼칠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둔다는 것이다. 그 속에 조급함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이 있을 뿐이다. (중략)
지금 당신이 만약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라. 내가 혹시 아이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닌지,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아이를 어긋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 pp. 53-55
이제 나는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무작정 조기교육을 시키는 엄마들과 이를 부추기는 갖가지 이론, 교육기관들과의 싸움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렵지 않다. 누군가 했어야 할 일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들이 하나같이 바라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이가 행복하게 잘 자라서 성공하는 것일 게다. 나도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
--- p.9
이렇듯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멋진 일이다. 그 깨달음을 얻고 그로 인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엄마 스스로 적극적인 자세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성(母性)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제공되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 원초적인 본능을 주목하고 그것에 모든 것을 맞추다보면 시댁을 비롯하여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갖게 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낳은 일일 게다. 껍질을 깨고 나온 듯한 이런 깨달음은 부모가 되지 않고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 p.126-127
육아에 있어 연습이란 없다. 내 아이에게 무언가 잘못했구나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잘못된 상황을 최선을 다해 추스리고,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보듬어 안아 줄 수 있을 따름이다. 가장 좋은 것은 추스려야 할 그런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내가 과연 부모 될 자격과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따져보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 p.33
원 스텝 비하인드 이론은 말 그대로 한 박자 늦게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즉 아이가 하는 대로 그저 지켜보다가 무언가 호기심을 보이면 그때 엄마가 살짝 밀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맞장구를 쳐주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에 반해 원 스텝 어헤드 이론은 아이보다 한 박자 앞서는 것을 말한다. 쉬운 예로 아이가 밥을 앞에 두고 '바바바바~'할 때, 엄마가 옆에서 '밥!'하고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방법이 적절히 병행될 때 최고의 조기교육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 p.63-64
우리 큰 애 경모가 한글을 배운 것은 학교에 입학하기 2개월 전이었다. 요새 분위기 같으면 아이가 여덟 살이 될 때까지 글을 쓰지 못한다는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딱 두달만의 공부만으로 경모는 한글을 배울 수 있었다.
'너무 쉬워, 이런 걸 왜 가르쳐 엄마 알파벳보다 쉽잖아'
경모가 그렇게 글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천재라서가 아니다. 그저 발달의 순리를 따랐을 뿐이다. 만약에 그 고집 센 아이에게 한글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려 들었다면 오히려 정서적인 문제만 일으켰을지 모른다.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는 것, 그것은 진정 아이의 입장에 서서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아야만 실천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바로 아이를 느리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기본 자세이기 때문이다.
--- p.68-69
'얘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을 읽어요'라고 자랑하는 엄마가 있다. 아이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을 두고 너무나 기뻐한다. 그러나 그 엄마는 무의식 중에 자기가 아이에게 그렇게 하게끔 얼마나 많이 강요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재미있는 것도 많은데 왜 하필 아이가 그 딱딱한 글을 읽겠는가.
--- p.120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는 것,그것은 진정 아이의 입장에 서서,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아야만 실천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바로 아이를 느리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p.69
아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것은 모든 엄마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육아'라는 고정관념, 즉 아이는 이렇게 키운다는 원칙을 만들고 그 틀에 아이를 끼워 맞추려고 든다. 그리고 어른의 잣대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아이는 점점 더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단지 부모 뜻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될 뿐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물론 엄마 자신도 구속시키는 '육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현명한 부모에게 '육아'란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자.
--- pp.76-77
사람은 누구나 제 밥그릇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만큼 위험한 발상은 없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아이를 갖게 되면 부모도 괴롭고 아이도 괴로운 그런 불행한 상황이 반드시 찾아온다
--- p.23-24
대개 엄마들은 아이의 성장이 노력한 만큼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이른바 사선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이는 계속된 기다림과 자극 속에 어느순간 갑자기 확 변하는 계단 형태의 발전을 보인다. 암만 노력을 해도 일정 기간 동안은 똑같이 보이다가 어느순간에 탁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 p.
누구에게나 핸드폰을 쓰지 않을 권리,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기술들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고립감을 안겨 준다.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려면 고립감을 뛰어넘을 용기를 내야 한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그런 용기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남들 하는 대로 휩쓸려가게 된다. 조기교육도 그런 것이 아닐까. 선택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다 하기 때문에 쫓아가게 되는 것. 이 책속에는 내가 왜 아이를 느리게 키워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아이를 느리게 키우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 p.8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란 게 무엇인가. 내겐 아이들이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주관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생각도, 그것이 옳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다만 나는'의미 있는 나를 희생해서 남을 돕는 가치만큼 현명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내가 정의하는 모성은 다름아닌 '물'이다. 땅으로 스며들어 자기 형체는 없어지고 그 땅으로 하여금 곡식을 자라나게 하는것. 이런 모성의 의미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체험한 것이다.
--- p.108-109
그렇다면 과연 이런 사회의 변화 속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회가 불확실할수록,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발현할 기회가 많이 주어질수록, 그리고 개인의 선택의 폭이 다각화될수록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이다.
자기 정체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인 느낌, 자아상, 외부의 평가 등이 통합되어 내가 누구인가를 자각하는 것이다. 이는 외부의 환경이나 주위 사람과의 접촉 속에서도 자아가 분열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한다. 이것을 갖춘 사람은 혼자 있으면서도 외롭지 않고, 남과의 관계를 맺을 때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정신적인 끈을 공고하게 유지해나간다.
또한 자기 정체성이 강한 사람은 스스로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줄 안다. 그것은 곧 자기가 원하는 일을 빨리 찾아낼 수 잇는 능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것이 미래 사회에서의 성공적 지름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내 아이들이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원한다.
--- p.19-20
그러므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아이의 'Time table'을 믿고 단지 방해 요소를 제거해주는 일이다. 즉 아이의 긍정적인 자아상이 침해받지 않도록, 자신감이 없어지지 않도록,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잃지 않도록 지켜줄 따름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갖추어야할 가장 큰 덕목은 섣불리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이다.
--- p 48-49
그래서 내가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육아의 끝은 마지막이 되어야만 그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씨앗 상태에서는 그 꽃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이파리들이 자라 봉오리를 맺고 난 이후 꽃이 피어서야 그것이 어떤 이름과 향과 모양을 갖추고 있는지 알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내가 잠재력과 관련하여 자주 하는 말이 '타임 테이블(time table)'이다. '어릴땐 똑똑했는데 커서는 안 그렇다' 혹은 '어릴땐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젠 무엇이든 남들보다 빠르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이렇듯 아이가 부모의 기대나 예상대로 되는 예는 거의 없다. 뇌의 성장이나 아이를 둘러싼 여건, 타고난 아이의 기질에 따라 그 잠재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사이 언젠가 발현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아이의 'time table'을 믿고 단지 방해요소를 제거해 주는 일이다. 즉 아이의 긍정적인 자아상이 침해받지 않도록, 자신감이 없어지지 않도록,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잃지 않도록 지켜줄 따름이라는 것이다.
--- p.47-48
경제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한 아이가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모두 소위 말하는 일류대 출신으로 하나뿐인 아이에 대한 교육열이 유독 높았다. 엄마의 강요에 따라 네살 되던 해부터 영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 그렇게 엄마 손에 이끌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얼마 지나니 않아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함게 공부하는 친구에게 아무 이유없이 손찌검을 하더니 급기야는 유치원 문 앞에 드러누운 채 떼를 쓰기 시작했다. 걱정이 된 엄마는 인근의 아동 상담소에서 아이의 지능을 검사했다.
--- p.5
가끔씩 강의를 들은 여학생들이 내 존재 자체가 힘이 된다며 이 메일을 보내오곤 한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끝까지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나처럼 슈퍼우먼이 되라고 얘기해주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결코 도와주지 않는 주변 환경, 그렇지만 일과 사랑하는 아이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다만 그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준다.
'결코 불가능한 꿈은 없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보이게 마련이다. 뉴욕 대학의 종교학 교수 제임스 카스는 가족을 '무한 게임'이라고 말했다. 축구, 선거, 수많은 사업등 한쪽이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유한게임과는 달리 무한 게임은 게임을 지속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무한 게임에서는 참가자 모두가 승리를 폭넓게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자의 소리없는 희생이 따르는 승리가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맛볼 수 있는 승리,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싸워라.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 분명 후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마지막으로 나는 바란다. 나처럼 미련하게 슈퍼우먼이 되는 방식 대신 좀 더 영리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그리하여 더 이상 가족이라는 게임에서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여성들이 없어지기를.
--- p.87
3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경모는 참 여러 가지 일들로 엄마를 학교로 불러들였다. 크게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남다른 구석이 있는 경모의 행동이 행여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안 좋게 비칠까 봐 입학하는 순간부터 늘 노심초사였던 차였다.
입학하자마자 부딪친 문제는 급식 문제였다. 유달리 촉각이 예민한 경모는 어릴 때부터 밥을 먹다가 입안에 이상한 - 무슨 근거로 이상하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 게 씹히면 바로 뱉아내곤 했다. 아무리 먹이려고 애를 써도 저 싫은 건 죽어도 입에 대지 않아 탈수현상까지 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던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이 음식 저 음식 골고루 나오는 급식을 제대로 먹을 리 있겠는가. 선생님은 이것저것 가리는 경모에게 "골고루 먹어야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할 수 있지" 하며 억지로 먹이려 들고, 경모는 사력(?)을 다해 반항했다.
결국 내가 직접 선생님에게 찾아가 당분간은 아이가 하자는 대로 두십사 부탁을 했다. 계속 억지로 먹이려 들면 그나마 먹던 음식도 아예 입에 대지 않을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pp.168~169
1등 아니면 안 된다는 이런 문화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남보다 튀라고, 어떻게든 똑똑하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그런 문화에 엄마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아이의 행복이다. 금이냐 은이냐에 연연해하기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사실에 감격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진정 아이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 p.42
- 누구에게나 핸드폰을 쓰지 않을 권리,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기술들은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고립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들을 거부하려면 고립감을 뛰어넘을 용기를 내야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런 용기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남들 하는 대로 휩쓸려 가게 된다. 조기교육도 그런 것이 아닐까. 선택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다하기 때문에 쫓아가게 되는 것' 저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전에 무조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한다.(p.51)
- 서양속담에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아이를 낳지 말라' 는 얘기가 있다. 웃음은 자녀를 키우는데 없어서는 안 될 부모의 미덕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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