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을 차린 사장님들은 과연 행복할까? 치킨집 사장치고 살이 찐 사람이 없다는 게 힌트가 될 법하다. “기름 냄새 때문에 도무지 식욕이란 것이 생기지 않았다. 기름 냄새에 질려 치킨집 주인들은 오히려 살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니겠구나 싶었다.”(90쪽) 돈이라도 많이 벌면 그래도 보상이 되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본사에서 공급하는 치킨 한 마리 원가가 5,300원이고, 한 마리를 튀기는 데 들어가는 식용유가 1,000원, 배달비가 2,000원에 탄산음료와 배달용 박스, 무 등을 합치면 1만 1,000원 정도 된다. 여기에 매장 운영비와 인건비를 합치면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아가면서 닭을 튀기는 보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창업 후 3년 내 폐업하는 치킨집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게 현실을 말해준다. 이걸 알면서도 치킨집에 뛰어드는 사람이 속출하는 건 다른 길이 없어서인데, 이런 사태를 계속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은 이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 2014년 9월 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장년층 고용안정 및 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했다. 여러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만, 이 대책이 작금의 현실을 바꾸어주리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기야, 닭들이 내놓는 정책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 「닭의 나라」(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중에서
요즘 아이들은 책을 멀리하는데, 더 무서운 사실은 자신이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서를 장려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책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라고 말한 학생이나 “우리 아빠는 만날 책 같은 것에만 몰두해 있어요. 인터넷 같은 것이 책을 대체해버렸다는 걸 아직 깨닫지 못한 거죠”(54쪽)라고 말한 학생을 보라. 우리나라도 다를 바 없다. 요즘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한겨레』 2014년 11월 17일자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으니까. “옛날이나 책이 중요하다 그러지. 이제 인터넷만 켜면 훨씬 더 양질이고 실용적 정보가 널렸는데 책 찾을 필요가 없지.” “책 읽으면 돈이 나옵니까? 쌀이 나옵니까?” 저자는 여러 근거를 들면서 책 안 읽는 세대의 무식을 개탄한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사실은 따로 있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해가 2008년이라는 것. 스마트폰의 효시라 할 아이폰3G가 출시된 해다. 다들 알다시피 스마트폰은 책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조차 앗아가버린 무서운 기계다. 이 책에 나온 스마트폰 이전의 세대만 해도 충분히 무서운데, 스마트폰 출시 이후의 세대는 과연 어떨까? 이것만 이야기하자.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무시무시한 악플을 달았던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정식으로 출범한 때가 바로 2010년이다.
-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된 걸까?」(마크 바우어라인, 『가장 멍청한 세대』) 중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현관에 있던 대형 거울 앞에 선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너무도 실망스러웠기에, 어린 마음에 내가 아니기를 바랐으니까. 눈은 양쪽으로 처졌고, 그나마도 너무 작았다. 심지어는 길을 가다가 모르는 애한테 이런 말도 들었다. “야! 너는 왜 이렇게 바보같이 생겼냐?”……내가 길을 걸을 때 고개를 숙이고 걷게 된 것, 수줍어하는 태도를 콘셉트로 가지게 된 것도 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인데,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 건 공부마저 못하면 인생의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괜찮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예를 들어 소개팅 자리에 나온 여자애는 나를 보자마자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선자에게 말했다. “언니,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이런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외모에 대해서 어떤 말을 들어도 신경 안 쓰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도 나는 남자고, 키가 작은 편은 아닌 데다 직업도 뭐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니 외모의 열세를 만회할 수단이 있다. 만약 내가 이 얼굴로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그저 암담하다. 박민규가 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나처럼 생긴 여자 이야기다.
- 「이 얼굴로 여자였다면」(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장하석 교수와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다.……미국으로 건너간 장하석의 행보는 오직 나를 이기기 위함이었다. 내게 전교 1등을 빼앗긴 분풀이로 미국의 명문고인 마운트허먼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내가 서울대학교 의대에 가자 노벨상의 산실인 캘리포니아 공대(칼텍)에 진학하는 것으로 퉁을 쳤다. 칼텍에서 물리학박사를 받은 그는 내가 기생충학으로 박사를 받자 박사학위의 숫자로 나를 앞서고자 스탠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28세에 런던대학 교수가 된 그는 내가 만 32세에 단국대학교 교수가 되자 위기감을 느꼈고, 결국 캠브리지대학 석좌교수가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가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써서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로 만들자 자신이 쓴 『온도계의 철학』 번역판을 국내에서 출간한다. 참고로 내 책은 2015년 3월 기준 알라딘에서 평점 9.5인 반면 하석이의 책은 평점 7.5다. 그가 한국에 자주 오지 않는 것도 내가 [베란다쇼]를 비롯해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명인사가 된 까닭이 아니겠는가? 오랫동안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석이에게 직접 진실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에 그가 나온 것. 나는 담당 PD에게 장하석이 미국에 간 이유를 말했는데,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PD가 손을 들고 내가 그렇게 궁금해하던 질문을 던졌다. “서민 박사에게 전교 1등을 빼앗겨서 미국으로 간 것이라는데, 진짜인가요?” 장하석은 매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중학교 때 읽은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가 자신으로 하여금 미국에 가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 「하석아, 미안하다」(장하석, 『온도계의 철학』) 중에서
경제학자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에 그럴듯한 이론을 내놓을 줄만 알지, 자기 돈 버는 것은 잘 못한다는 편견 말이다. 유명한 경제학자 존 케인스John Keynes가 주식으로 많은 돈을 벌기는 했지만, 그 사례가 내 편견을 불식하지는 못했다. 이 생각은 우석훈이 쓴 『불황 10년』을 본 뒤 깨졌다. 자칭 C급 경제학자라는 우석훈은 이런 적이 있다고 한다. “주변의 활동가들에게 부모님께 돈을 빌리든, 장모님께 돈을 빌리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아파트를 사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12쪽)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 테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갑자기, 평소 경제학자와 좀 친해놓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테크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아니다. 돈이 있으면 그냥 써버리는 스타일이라, 결혼 전 외로운 늑대로 살 때는 물론이고 결혼 후에도 따로 돈을 모은 적은 없다. 차 욕심은 물론이고 아파트 욕심도 없었다. 늘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살았다. 서울 당산동에서 아내와 함께 전세를 살 때, 전세금이 어마어마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내 집 마련은커녕 있던 곳에서도 쫓겨날 뻔한 위기였는데, 갑자기 천안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과분할 만큼 훌륭한 아파트가 당산동 아파트의 전셋값밖에 안 되었기에, 얼떨결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다.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그 이후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난 이 책은 이런 무사안일주의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 「경제학자의 족집게 과외」(우석훈, 『불황 10년』) 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에도 우리나라 의료계가 겪는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연간 100만 명이 사망하는데 부검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3만 건 남짓. 부검은 현재 사망 시 유일한 의학적 검사입니다. 부검 비율이 5퍼센트라는 것은 95퍼센트가 사망 이후 의학 검사를 하지 않고 장례를 치른다는 이야기입니다.”(162쪽) “의료 과실 문제에 대해 사회가 갖추고 있는 조사 시스템은 매우 엉성한 모양이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엉성하기 짝이 없기에 줄줄 샌다.”(165쪽) “절묘한 수술 기술로 많은 환자의 목숨을 구한 외과 의사보다 쥐의 시체로 학술 잡지의 여러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인간이 대학병원에서는 더 높이 평가받는다.”(204쪽) 마지막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환자들은 대개 큰 병원을 선호한다. 물론 큰 병원 의사들이 실력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요즘 큰 병원에서 의사를 채용하는 기준을 보면 누가 더 쥐 실험을 많이 하고, 그걸 누가 더 논문으로 많이 썼느냐인 듯하다. 이런 풍토에서 누가 환자를 열심히 볼까? 이건 영국도 마찬가지여서, 환자를 보다 늦게 숙소로 들어온 의사에게 선배가 말했단다. “환자 보느라 네 장래를 망치지 마.” 외국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환자 진료보다 연구에 점점 많은 비중이 쏠리는 작금의 현실은 우려스럽다. 끝으로 한마디. 이 책을 쓴 가이도 다케루는 현역 의사다. 의사이기에 이렇게 현장감 있는 의료 소설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이런 말을 하면 다들 묻는다. “우리나라 의사는 뭐해?”
- 「우리나라 의사는 뭐해?」(가이도 다케루,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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