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요? 어떤 배우의 인터뷰에서 읽었는데요. 대부분의 배우들은 죽을 때까지 연기하다가 무대 위에서 눈을 감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배우들에게는 정년이 따로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극이든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배우들은 실제 나이에 따라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달라질 뿐 신체적인 여건만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연기를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왕년에 청춘 스타로 날리던 주연급 남녀 배우들이 세월이 지나면 주인공의 엄마 아빠 역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듯이 말이죠.
성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목소리만 들어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성우라는 직업의 특징 중 하나예요. 덕분에 배역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배우와는 달리 성우는 지긋한 나이에도 젊거나 어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답니다.
흔히 목소리는 잘 늙지 않는다고 하죠. 현장에서 성우들을 만나면 그 말을 정말 실감합니다. 손주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연배의 베테랑 성우가 미취학 아동 역할을 맡기도 하는 곳이 바로 성우의 세계니까요. 짱구 목소리로 잘 알려진 박영남 성우처럼 말이죠.
--- p.25
“나는 나중에 광고 전문 성우가 될 거야!” 혹시 이렇게 특정 분야 전문 성우를 꿈꾸는 친구들이 있나요?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더빙만 전문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전문 성우라든가, CF 녹음만 하는 CF 전문 성우라든가…. 글쎄요. 장르별로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성우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사실 그런 구분은 따로 없습니다. 물론 성우 개개인에 따라 주로 활동하는 분야나 특별히 자신이 있는 분야가 다를 수 있죠. 애니메이션 녹음 비중이 높은 성우, 내레이션 비중이 높은 성우처럼요. 하지만 특정 장르의 일만 고집하는 성우는 없답니다.
다만, 출연 의뢰가 왔을 때 강제성은 없으므로 본인의 판단에 따라 출연을 고사할 수는 있어요. “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니까 애니메이션에만 출연할 거야” 하며 일을 골라 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애니메이션 더빙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니 굳이 자신의 영역을 어느 한 장르로 한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 p.98
그럼 성우가 하는 일을 한번 떠올려볼까요? 외화나 애니메이션 더빙, 광고(CF), 내레이션 등등? 아마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 떠올리는 것이 고작이겠지만, 성우의 활동 영역은 생각보다 굉장히 넓어요. 지금부터 하나씩 짚어볼게요. 우선 앞서 말한 외화나 애니메이션 더빙이 있겠죠. CF 녹음, 각종 방송 프로그램 내레이션도 있겠고요.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게임 더빙의 비중도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 밖에 교재 등을 비롯한 각종 시청각 콘텐츠를 녹음하기도 하고요. 라디오 DJ, ARS 녹음, 홈쇼핑 내레이션, 내비게이션 음성 녹음, 대중교통 안내 방송 등등…. 헉헉,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성우들이 활약하고 있네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팬덤을 바탕으로 성우의 상품성을 시험해보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요. 그 대표적인 것이 드라마 CD이고, 그 밖에 이벤트, 음반 제작 등을 꼽을 수 있어요 .
또 연기에서 확장된 영역으로, 연극이나 뮤지컬 출연, 배우로서 영화나 드라마 등에 출연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성우 세계에서 쌓은 오랜 경력을 살려 지망생이나 연기 전공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하고, 녹음 연출을 직접 하는 성우도 있지요 .
--- p.111
“성우의 목소리에는 저작권이 있나요?” 뽀로로를 연기한 성우에게 뽀로로 목소리에 대한 저작권이 있을까요? 쉽사리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캐릭터의 저작권은 캐릭터의 말투나 목소리를 포함하지만, 성우들은 기본적으로 ‘대본을 바탕으로’ 녹음하는 관계로, 저작물에 대한 권리인 저작권이 아닌, 저작인접권에 해당하는 실연권을 갖게 됩니다.
말이 너무 어렵죠?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볼게요. A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이때 노래에 대한 저작권은 작곡가 및 작사가에게 있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는 그 곡을 표현한 실연자로서의 권리인 실연권이 주어집니다. 같은 관점에서 성우를 적용하면 되겠죠.
성우들은 실연자로서 한국방송실연자협회에 가입해 방송물에 대한 실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성우가 출연한 작품이 방송국에서 재방, 삼방 될 때마다 사용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 p.125
감기 외에도 성우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다는 정재헌 성우는 음식을 먹고 나면 목이 잠기고 원하는 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요. 때문에 녹음이 있으면 최소 3시간 전에 먹어두거나 굶고 녹음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녹음에 지장이 없는 탓에 예전에는 굶는 일이 많았다고 하네요. 지금은 1일 1식(저녁)으로 생활 패턴을 바꿔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요. “얘(역류성 식도염)는 내 평생 친구다” 하는 마음으로 남들보다 더 목 관리에 노력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소 목에 좋다는 도라지와 한약재인 맥문동, 오미자를 같이 우린 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마시기도 하고, 프로폴리스도 많이 쓴다고 해요. 프로폴리스는 분사형과 알약 형태가 있는데, 너무 많이 쓰면 내성이 생긴다고 하니 꼭 필요할 때만 쓰는 게 좋다고 합니다.
--- p.152
또 성우들은 직업적 자부심도 꽤나 높은 것 같은데요. 이는 단순히수백 대 일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성우로 인정받았다는 이유 외에도 우리말을 가장 정확하게 잘 표현하는 전문가로서의 자부심, 시각 장애인들을 비롯한 방송소외계층에 도움을 주는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을 감당한다는 면에서 직업적 보람을 많이 느끼는 듯합니다. 그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아닌, 자아실현과 성취감,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직업으로서의 성우는 가치 있고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