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유용하게도 다양한 분야로 나누어진다. 분야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각자 어떻게 나누든 상관없다. 어쨌든 주제에 따라 형이상학, 인식론, 가치 이론, 그리고 논리학 정도로 나누면 무난할 듯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철학의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주제의 추상성’이다. 이 말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철학적인 물음들은 보통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물음에 비해 한두 단계 정도 더 추상적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철학적 물음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흔히 철학은 호기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즉, 철학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지식을 획득하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무언가를 이해하고 싶은 단순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해 철학서를 읽는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철학에서 어떤 특별한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학 그 자체를 위해 철학을 한다.
---「머리말」중에서
최초의 철학자들이 물려받은 세계관이 반드시 비성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세상의 구조, 즉 반구 형태의 천상, 저승, 그리고 평평한 땅과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대양 등은 전부 그들이 육안으로 목격한 것들과 관련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겉모습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들이 개입하는 이야기에서 그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 말고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작동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그리스인들의 사고에서 신들의 행위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질서를 찾으려고 함으로써 혼돈스러운 일상의 사건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엿보인다. 더 나아가 헤시오도스 덕분에 인간 세상은 물론, 인간사에 참견하는 신들 또한 조직적이고 질서를 갖춘 것만 다를 뿐, 이해 가능한 현실을 꼭 빼닮게 되었다.
---「1 철학의 시작」중에서
고대부터 시노페의 디오게네스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유달리 많이 전해진다. 아마도 그는 좀처럼 잊기 어려운 사람이었나 보다. 그가 여러 책을 썼다는 것은 익히 알려졌지만, 지금은 일화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저작이 아닌 일화만 남아 있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삶에 그의 철학이 더 잘 드러나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치는 않지만 디오게네스는 말장난을 즐기고, 말싸움이 벌어지면 언제든 끼어들어 이길 준비가 돼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주먹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전통을 교양 있게 지시하는 것이라며 무조건 거부했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생활의 규칙들도 인공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걸림돌로 자유와 참된 행복을 방해할 뿐이라며 따르지 않았다. 그는 덕이란 천성에 따라 살면서 찾아지는 것이지 돈이나 명성 또는 재물의 축적이나 사회규범을 잘 따르는 것 등에서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2 그리스인과 로마인」중에서
그리스도교 최초의 위대한 철학자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는 특이하게도 성욕에 관심이 많았다. 철학자들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긴 하지만, 전례가 전혀 없는 일은 아니었다. 예컨대 사르트르는 호색한으로 악명 높았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12세기의 스콜라철학자 피에르 아벨라르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애인과 얽혔다가 강제로 거세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례가 특별히 더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청년 시절 저지른‘ 육체적 타락’의 결과로 생긴 혐오감이 특정한 그리스 사상 및 그리스도교의 주제와 결합되면서 그가 결국 천 년 이상 동안 그리스도교 사상을 지배하게 되는 금욕적 세계관을 품게 됐기 때문이다.
---「3 종교」중에서
어떤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최소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우리가 감각으로 세상을 체험하는 것에 좌우된다. 자신이 있는 곳의 날씨를 알고, 자신이 들어와 있는 방 안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며, 옆 방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주변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고, 좀 더 모험심이 있다면 맛볼 수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알 수 있을 때도 있다. 이렇게 약간 기이한 유형의 앎에 대한 마땅한 예로는 논리적인 법칙들을 들 수 있으며, 가장 유명한 예를 들자면‘ 무모순의 원리’일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식 무모순의 원리를 하나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반대되는 주장들은 동시에 참일 수 없다.” 잠시 이 말이 정말 사실인지 생각해보자.
---「4 앎」중에서
해, 우리가 거의 통제하지 못하는 역동적인 무의식의 영역 내에 자리하고 있는 충동에 이끌려 발생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을 무의식이 지배한다는 광범위한 주장은 20세기 초 프로이트가 저술 작업을 하고 있던 때에도 특별히 새로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혁신적인 이유는 이러한 관념에 특정한 성격 이론을 덧붙여서 치료사가 올바른 치료법(즉, 정신분석 요법)을 쓰면‘ 무의식을 의식’으로 만들어 그 결과 환자들이 일종의 정신적 평형 상태에 이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6 현재의 관심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