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이 싸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다정해지기도 하는 게 그 시기 우리의 모습이었다. 둘이 기분 좋게 뒹굴면서 도란도란 대화를 하던 어느 날,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희원아, 엄마가 그동안 너한테 숨겨왔던 출생의 비밀이 있어.”
“뭔데?”
“사실은 너 입양한 아이야.”
희원이는 잠깐 내 얼굴을 살피다 금방 콧방귀를 뀌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랑 똑같이 생긴 애를 찾느라고 고생 많이 했어. 그래서 네가 몰랐던 거야.”
사실 희원이는 누가 봐도 남편을 닮았다.
“알았어. 그동안 키워줘서 고마워. 근데 다 클 때까지 나 안 버릴 거지?”
희원이도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았다.
“당연하지! 그러고 보면 친엄마도 아닌데 너를 진짜 많이 사랑해주고, 많이 참아주고, 참 좋은 엄마지?”
“맞아. 내 친구 엄마는 진짜 친엄마인데도 잘 못해준대.”
“넌 참 괜찮은 앤데, 네 친엄마는 너 같은 딸을 잃어버려서 속상하겠다. 혹시 나중에 부자 친엄마가 나타나도 엄마 은혜 잊으면 안 돼!”
“그럼. 내가 친엄마한테 돈 많이 받아서 갖다 줄게.”
잠깐 주고받은 농담이지만 남의 딸이라고 생각하니 희원이는 꽤 예쁘고 착한 딸이었다. 희원이 역시 나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심리적 거리가 유지되어 감정이 배제되면 서로를 얼마나 다르게 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화가 날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읊조렸다.
‘내 딸이 아니다, 내 딸이 아니다, 부잣집에서 잃어버린 귀한 외동딸이다……. 내 아들이 아니다, 내 아들이 아니다, 어느 나라 왕자님을 잠깐 맡아서 키우는 거다…….’
--- p.21
“너 어디서 이런 거 배웠어? 학교에서 선생님한테도 이런 식으로 해?”
“선생님은 엄마하고 달라. 혼은 내도 화는 내지 않는다고!”
“뭐, 뭐라고……?”
‘혼은 내도 화는 내지 않는다.’는 말이 1퍼센트 남아있는 뇌의 전두엽에 꽂혔다. 남의 말을 들어야 하는 직업을 오래 하다 보니, 듣는 행동도 본능만큼이나 발달한 탓이리라. 흥분한 변연계는 상대를 해치워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초반의 살기등등한 기세는 일단 꺾였다.
“그러니까 문 좀 살살 닫으라고! 너무 시끄럽잖아.”
구차하게 구시렁대며 일단은 후퇴했다. 그리고 희원이가 한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혼내는 것과 화내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과 여태까지 아이를 혼내면서 화를 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나운 표정을 짓고, 목소리 톤을 높이며, 강압적인 말투로 이래라 저래라 한 건 그야말로 ‘화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혼낸다는 건 뭘까, 화내는 것과 어떻게 다른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혼내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심하게 꾸지람을 하거나 벌을 주다.
화내다 : (어떤 사람이)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노엽고 답답한 감정을 드러내다.
사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고, 얼핏 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희원이의 말로 미루어볼 때 아이 입장에서 이 두 가지는 상당히 다르고, 혼내는 건 괜찮지만 화내는 것은 정말 싫다는 것 같았다. 학교 선생님은 아이를 어떻게 혼낼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무엇에 대해 감정을 표출하는가 하는 차이였다. 꾸짖거나 벌을 줄 때는 보통 잘못한 행동이 표적이 된다. 반면 화를 낼 때는 잘못된 행동과 더불어 상대에 대한 감정을 쏟아낸다.
예를 들어 학교는 규칙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혼나는 상황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다. 따라서 선생님은 규칙에 따라 아이를 벌주게 된다. 혼나는 아이는 자기가 왜 그런 벌을 받는지 알고 있으며, 선생님이 자신에게 화냈다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숙제를 안 했을 경우 선생님은 그 행동만을 꾸짖지만, 엄마는 더불어 아이에 대한 감정까지 쏟아내는 것이다.
--- p.141
“높이뛰기를 못했다고 사범님이 무조건 널 때린 건 아닌 것 같아. 혹시 네가 더 잘할 수 있는데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건 아닐까?”
희준이가 내 눈치를 봤다. 빙고!
“사범님은 네가 운동하는 걸 늘 보시니까 얼마큼 높이 뛸 수 있는지 아셨을 거야. 그런데 많이 못 미치니까 열심히 안 했구나 싶어서 혼낸 것 같은데?”
“사실…… 처음엔 90센티미터를 뛰었다가 두 번째에는 120센티미터를 뛰었어.”
“거 봐! 사범님이 너를 잘 아시네. 그렇지! 너를 제대로 보신 거야. 그런데 너 높이뛰기 잘하는구나!”
이야기가 칭찬으로 끝나면서 희준이는 고비가 될 수도 있었던 그 사건을 잘 넘겼고, 이후 농구나 야구 같은 다른 운동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몸 쓰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늘어 어떤 운동이든 해보려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발바닥 체벌 사건을 이렇게 마무리한 데는 무엇보다도 군대에 대한 생각이 영향을 미쳤다. 군대는 학교와 사회, 심지어 가정과도 닮은 점이 있다. 우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규칙이 필요하고, 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또 마음 맞는 사람뿐 아니라 맞지 않는 사람과도 잘 지내야 한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내 선생님이나 상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아이들이 집 밖에 나가서 마주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이 그런 세상에서 잘 적응하기를 바란다. 마음이 맞으면 맞는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피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견디기를 바란다. 모두가 포기할 때라도 남아있는 한 명이 되기를 바란다. 힘들다는 이유로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를 바란다. 맞고 온 아이를 감싸고, 도장을 그만두게 하는 대신 이유를 생각하게 하고 계속 하도록 격려한 이유가 그것이다.
--- p.242
어렵게 희원이를 달래고 안방에 왔더니 남편은 태평스런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여보, 희원이한테 수학 점수 안 보는 대학에 가라고 했어?
“응.”
“왜 그랬어? 쟤가 30분을 울었어(사실은 10분이었다). 자기가 우리 식구들 중에서 제일 공부를 못하고, 아빠가 그런 자기를 무시해서 속상하대.”
남편은 놀라는 눈치였다. 자기 딴에는 딸아이에게 솔루션을 준다고 한 말이었던 모양이다.
“당신이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아는데, 희원이는 사춘기 여자애야. 부탁인데 할 말이 없으면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안아줘.”
남편의 표정을 보니, 역시나 나의 문지기 역할과 함께 약간의 교육이 필요해 보였다.
“혹시 당신 수학 점수 안 보는 대학이 어디인 줄 알아? 모르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몇 군데 없어. 그러니까 딸을 위해서 해주는 솔루션이면 적어도 알아보고 얘길 해야 해. 희원이가 가출하고 싶었는데 당신이 때리지 않아서 못했다고 하더라고. 요즘 사춘기 애들은 귀신도 안 잡아간대. 성질이 더러워서.”
아이를 위해, 또 화목한 가정 분위기를 위해 아빠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많다. 적어도 아빠라면 아내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아이를 돌볼 수 있고,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아이를 울리거나 마음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잘 놀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상은 이와 아주 다르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마음을 읽는 데 서툴다. 누군가를 돌보는 걸 귀찮아하고, 놀이와 경쟁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렇게 태어난 남자들에게 좋은 아빠 노릇을 기대한다면 엄마가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좋은 아빠란 무엇인지 남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고, 아빠 자리와 역할을 만들어 양육에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야 하는 것이다.
--- p.272
나는 이 책을 나중에 아이 엄마가 될 희원이에게 주고 싶다.
다정하고 귀가 얇은 희원이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나의 우려를 귓등으로 흘리고 ‘바로 그 사람’이라고 믿는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런 것처럼 후회할 때도 있겠지. 아이는 둘 정도 낳지 않을까? 하나라도 상관은 없다. 성숙해지는 데는 아이 하나로도 충분하니까. 직장 다니는 엄마 때문에 엄마 자리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를 테니 ‘내 아이는 내가 키우겠다.’며 사회생활을 접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두 가지 다 잘 해보겠노라고 직장 맘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또 후회를 하겠지. ‘왜 내가 애를 둘씩이나 낳았을까?’, ‘직장을 관두고 애나 볼까?’ 하고.
그렇게 삶에 지치고 아이들에게 치여 정신없는 어느 날 밤, 간신히 아이들을 재우고 침대에 누워 꺼내 드는 책이 이 책이기를 바란다. 책장을 넘기다 깔깔거리기도 하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 ‘나 옛날에 우리 엄마랑 이런 일도 있었다.’며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시큰거리는 콧등을 눌러가며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지만 예전의 어떤 날에는 자신도 엄마에게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냈으면 좋겠다. 삶이 주는 시련에 위로가 되고, 엄마라는 고단한 자리의 무게를 덜어주고, 그리고 정말로 사랑받는 딸이었다는 증거가 되는 그런 책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시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