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1956년 교토 출생. 교토대 대학원 문화연구과 박사 과정을 만기퇴학(?期退?)했다. 서양 고대 철학을 전공했고, 특히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면서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했다. 일본 아들러 심리학회가 인정한 카운슬러이자 고문이기도 하다.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개인 경험을 살려 왕성하게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펼쳤다. 아들러는 인간의 모든 고민은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고, 아들러 심리학은 관계에 초점을 맞춘 실천적 심리학으로 구체적 방안을 찾는다. 기시미 이치로는 육아와 간병 경험을 살려 아들러 심리학과 관련한 저술 활동과 카운슬링으로 한국과 일본에 아들러 열풍을 불러왔다. 2014년 일본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미움받을 용기』를 비롯해 『아들러_인생을 살아가는 심리학』『불행의 심리 행복의 철학_사람은 왜 고뇌하는가』『『아들러 심리학 입문』 아들러 심리학 실천 입문』『아들러에게 배운다』외 다수 있다.
역자 : 김현정
일본 유학을 거쳐 한양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 에디터로 일하며 각종 에세이, 실용서의 편집 및 기획, 한류 아이돌 상품의 일본어 번역 및 번역 감수를 담당했다. 현재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KARA’s All about Beauty』와 『KARA ??集 Je t’aime, KARA』(번역 감수), 『홍콩 대부호의 가르침 41』 『엄마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번역) 등이 있다.
치매는 뇌의 문제이지만 그것만이 이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치매를 뇌의 변형으로만 이해하는 건 체감온도를 무시하고 온도계 수치만을 믿는 일과 같습니다. 춥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 추운 감각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사실입니다. ‘사실은’ 춥지 않다며 온도계에 나타난 온도를 눈앞에 들이댄들 그게 의미 있을까요? “하지만 ‘진짜로’ 추운걸.” 어떤 사실과 어떤 진짜 중 우선할 것을 따지자면 실감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놀랍도록 정신이 맑아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다양한 일들을 이해합니다. 마치 치매에 걸린 게 믿을 수 없을 정도였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 이해하실 리가 없어, 사실은 병에 걸리셨는데’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순간에는 ‘정말로’ 아버지가 치매가 ‘아니’라고 보았으면 합니다. ---「제2장 치매의 이해, 마음의 우위」중에서
이상 속 부모를 리셋하여 현실 속 부모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부모와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없습니다. 부모는 과거를 잃었습니다. 부모가 잃어버린 과거에는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닙니다. 힘들고 괴로웠던 일을 겪었는데, 부모가 과거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도 현실에는 과거를 잊어버린 부모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간호할 때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상 속 부모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 속 부모를 보는 한 현실 속 부모는 감점되기만 할 뿐입니다. 부모가 젊었을 때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현실 속 부모를 볼 때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현실 속 부모를 마주 봐야 합니다. ---「제3장 부모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이상 속 부모를 보지 않기」중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젊었을 때부터 무언가를 달성하고 나서야 자기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늙음이나 병 때문에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부모가 그렇다면 다양한 장면에서 부모의 행위보다 존재 그 자체의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항상 의식하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간호인이 자기 자신을 존재 단계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를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부모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기 그대로의 모습으로 괜찮다는 말의 의미는 앞서 주의를 드린 것처럼 도움만 받는 자신이 괜찮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병을 앓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나아가 그런 자신도 누군가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부모가 지금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부모를 간호할 때 무엇을 이루는지가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자신이 놓인 상황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만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공헌감을 느끼게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