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그들은 디종과 곳곳에서 위협받는 산타클로스의 보호자가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산타클로스가 무종교인들의 상징이 된 셈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교회가 정직함과 진실을 갈구하는 비판적 태도를 취한 반면에, 합리주의자들은 미신의 수호자로 행동하는 것처럼 모든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의 전도에서 이 단순한 행동에 훨씬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풍습과 믿음이 급속히 변해가고 있다는 징후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민속학자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어떤 관습, 심지어 어떤 종교 의식조차 급작스레 확장된 사례를 관찰할 기회를 얻는 게 흔히 있는 아니다.
--- p.14~15
민족학자를 공공의 장에 몰아넣는 또 다른 분야가 있다. 새로운 대리출산 방법에 대한 의견을 여러 정부에 제시하려고 구성된 위원회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는 민족학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생물학이 발전하면서 대리출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부부 모두, 혹은 부부 중 한 명이 불임일 때, 그런 부부에게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제안된다. 인공수정, 난자 공여, 대리모 출산, 남편이나 다른 남자의 정자와 부인이나 다른 여자의 난자를 이용한 시험관 수정 등이다. 이 모든 방법을 허용해야만 할까? 어떤 방법은 허용하고 어떤 방법은 배제해야 할까? 그렇다면 어떤 기준에서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까?
유럽에서 대리출산과 관련된 법이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대미문의 법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혈통은 생물학적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보다 우세하다. 영국 법에는 사회적 부자 관계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따라서 정자 공여자는 합법적으로 자식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고,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자식을 부양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나폴레옹 법전에 따르면 어머니의 남편이 아이의 합법적인 아버지였다. 따라서 나폴레옹 법전은 생물학적 부자 관계보다 사회적 부자 관계를 우선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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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72년의 법이 이 격언을 부인하며 친자 관계 확인 소송을 허용했다. 따라서 이제는 사회적 관계와 생물학적 관계 중 어느 쪽이 우선하는지 단언할 수 없다. 법적인 아버지가 아이를 낳게 해준 사람이 아니고, 어머니가 임신이 진행되는 자궁이나 난자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 즉 대리출산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 p.65~66
식인 풍습이 과거와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학자들은, 식인 풍습이란 개념이 야만인과 문명인 간의 차이를 과장하려는 목적에서 조작해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양심적인 존재라고 자처하고 신앙에서 우리의 우월성을 확고히 하려고, 가증스런 풍습과 신앙을 야만인들의 것으로 돌려버린다.
이런 경향을 뒤집어 식인 풍습과 관련된 현상을 확대해서 생각해보자. 시간과 장소에 따라 무척 다양한 양상과 목적을 띠었지만, 인간에서 떼어낸 몸의 부분이나 물질을 다른 인간의 몸에 의도적으로 넣으려는 시도는 언제나 문제였다. 따라서 사회에서 축출되었던 식인 풍습이란 개념이 앞으로 상당히 흔한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우리를 타인과 동일시하려는 감정에서 사회적 삶의 기원을 찾았다. 결국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여전히 타인을 먹는 것이다.
--- p.128
인간이 의식하든 않든 간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여서 영양을 취한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따라서 그런 철학적인 문제를 모든 사회가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애썼다. 『구약성서』는 인간의 육식을 타락의 간접적인 결과로 해석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채소와 열매만을 먹었다(「창세기」1장 29절). 노아 이후에야 인간은 육식동물이 되었다(「창세기」9장 3절).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의 이런 단절이 바벨탑 이야기 직전에 있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들 간의 단절이기 때문에, 인간들 간의 단절은 앞서 있었던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의 단절에서 비롯된 결과이거나, 그런 단절의 한 특수한 사례쯤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육식은 어떤 의미에서 채식의 보충이 된다. 반면에 문자가 없는 일부 종족은 육식이 식인 풍습을 어렵게 약화시킨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냥꾼(혹은 어부)과 사냥감 간의 관계를 친척 관계에 근거해서 생각함으로써 그 관계를 인격화한다. 예컨대 결혼이나 더 직접적인 인연을 통해 맺어진 친척 관계, 혹은 부부 관계로 생각한다(프랑스어도 그렇지만 세계의 모든 언어가 은어적 표현에서 먹는 행위와 성교 행위를 동일시한다). 따라서 사냥과 고기잡이는 같은 종족 내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식인 풍습으로 여긴다.
--- p.164~165
광우병만이 우리에게 육류 섭취를 멀리하라고 경고하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앞으로 한 세기 내에 인구가 십중팔구 두 배로 증가할 세계에서, 가축들은 인간에게 무서운 경쟁자가 될 것이다. 현재에도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 2가 가축을 먹이는 데 사용된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가축이 생존 기간에 소비하는 칼로리 양이 살코기의 형태로 우리에게 돌려주는 칼로리 양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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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증가하는 반면에, 침식과 도시화의 영향으로 경작 가능한 토지는 줄어들고, 석유 매장량과 수자원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인간이 완전히 채식주의자가 되면 현재의 경작 면적으로도 두 배의 인구를 먹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서구 사회가 식습관을 바꾸기 시작한 것처럼, 육류 소비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광우병 파동은 육류 소비를 더더욱 억제하며 현재 진행 중인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또한 광우병 파동은 이런 변화에, 우리 인간이 자연계의 질서를 위반한 대가로 치르는 막연한 감정에서 비롯되는 신비로운 면을 더할 것이다.
--- p.17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