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고수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버스 운전사, 약사, 심심풀이로 조언을 건네는 할머니, 수영 강사, 식당 종업원 모두가 훌륭한 조언자이다. 또 산책길에서 만나 인사를 주고받으며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이와 엄마 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 갑자기 끼어들어 한마디 의견을 건넬 수 있는 사람도 육아에 도움이 된다.
할머니들이 심심풀이 삼아 건네는 조언도 시대에 따라 표현법이 달라진다. 주변의 조언자들도 옛날에는 ‘사내아이들은 맞으면서 크는 법이야’라고 했지만, 이제는 ‘사내아이들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안 되는 법이에요!’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리고 두 살배기 아기가 우유병을 물고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애기 엄마! 아이가 우유병을 물고 자면 치아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 알아요?’라고 말한다. 그뿐인가! 갓난아기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엎드려 자고 있는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아기를 엎드린 채로 재우면 돌연사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거, 모르세요?’라고 한다.
알고 있는 것이 많으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중요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거나 소홀히 했을 때,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이런 조바심이 우리 마음을 괴롭힌다. 더 많이 알수록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를 용서하기 쉽지 않은 법이다.
---「1장. 육아의 고수보다 나만의 방법이 더 중요하다」중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예스’라는 대답이 꼭 필요할 때가, 아이의 뜻을 무조건 받아주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노’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아이를 오냐오냐 키우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노’라는 말은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에 대한 엄마들의 요구이자 거절이다. ‘노’라는 대답을 들을 때 아이들은 속상해한다. 하지만 자라면서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이다. ‘노’라는 말은 주변의 무리한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일정한 선을 긋겠다는, 아이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버리겠다는 엄마들의 의지이다. 중요한 발견, 자아의 재발견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노’라는 대답은 내적 결핍에 시달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준다. 포기, 인내, 나만의 관심사 되찾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등 내면의 문제는 충돌과 시험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해결되고 굳게 다져진다. ‘노’라는 말 한 마디로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탄탄해진다. 둘 사이의 갈등이 잘 해결되면 이전보다 더 끈끈한 관계로 거듭날 수 있다.
---「3장. 똑똑한 엄마가 실천하는 NO의 법칙」중에서
- 노: 나는 좋은 엄마다. 똑똑한 엄마는 선을 그을 줄 안다.
- 바이바이: 나는 좋은 엄마다. 똑똑한 엄마는 아이와 거리를 둘 줄 안다.
- 나: 나는 좋은 엄마다. 똑똑한 엄마는 자신을 돌볼 줄 안다.
이 세 가지 구호로 나를 되찾고 모성애의 강한 면을 완성시킬 수 있다. 구호를 외치면서 엄마로서 내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고, 내 의사를 표현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자. 그리고 슈퍼맘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피곤했던 삶과 이별하자. 일상생활에서도 자아를 찾고, 여유로운 삶과 자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
---「7장. 어떤 경우에도 바이바이 원칙은 지켜라」중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꼬맹이들’한테 너무 바짝 달라붙어 있다. 아이의 행동과 엄마의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는 ‘가까이 다가가기’와 ‘거리 두기’ 원칙이 적용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은데 가까이 다가오라고 요구하면 거부감이 생긴다. 결국 더 멀어지는 셈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다. 당분간 가까이 다가가기를 포기하고 아이 곁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때가 되면 아이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자기가 알아서 엄마 곁으로 오려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기와 거리 두기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꼬마 한스’를 세상에 내보내려면, 아이의 행동을 적당히 못 본 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계속 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면 우리는 쉴 새 없이 아이의 행동을 감시하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듯 하나하나 들여다보려 하게 된다.
아이와 공간적인 거리도 필요하다. 아이를 위해서 아이가 해달라는 것을 해주며 하루 정도를 풀어주자. 엄마를 위해서 육아 없는 주간을 만들고 휴식 시간을 갖자. 엄마만의 ‘공간’, 책상, 서랍장 등이 이런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엄마만 출입하는 성역인 어린이 금지 구역을 만들어놓자.
---「11장. 아이가 성장할 때 거리 두기 연습은 필수」중에서
우리는 아이가 엄마의 독재에서 일탈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있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시기를 지나면 남몰래 옆집 체리를 따던 아이가 다시 귀여운 개구쟁이로 돌아온다. 이런 식으로 어린 시절에 놓쳤던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다시 만회할 수 있다. ‘규칙을 아는 자만이 규칙을 깰 수 있다’와 같은 모토 따위는 신경쓰지 말자. 처음에는 어느 정도 무정부 상태여도 좋다. 우리는 과격하지만 서서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모든 엄마에게 아이와 놀아주는 재주가 있는 건 아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일은 한가득 쌓여 있다. 놀이는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와 그렇게 가까운 위치에 있지 않은 다른 사람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아빠 또는 베이비시터가 놀아주는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그 대신 나도 항상 책을 읽어주고 함께 노래하고 뒹굴고 같이 운동해야 한다.
엄마가 아이와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아이는 혼자서 몰두할 대상을 찾아야 하므로 저절로 창의력이 생길 수도 있다. 엄마가 아이와 놀아주기를 소홀히 하면 화장지는 한가득 쌓이고, 풀어헤친 반창고를 일일이 포장해야 하고, 아이를 씻기느라 수돗물도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 있다. 아이는 놀이 친구가 없어도 혼자 알아서 잘 놀게 된다.
---「15장. 슬쩍 보이는 빈틈은 관계의 윤활유를 만든다」중에서
엄마만의 작은 동굴은 우리 아이들만 보호하는 장소가 아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후퇴의 장소이자 불쾌하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요구, 거친 세상과의 싸움에 대한 방패이다. 우리 아이들을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세워둔다면 우리는 아이만 붙들게 된다. 아이들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닌, 우리로 가득 채워진다.
우리가 자신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면, 우리가 아이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 될 수도, 독특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우리는 길을 찾으러 가야 한다. 때때로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교육을 하는 데 최악의 조건은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살라’고 말하려면 이런 만족감이 중요하다.
---「17장. 자녀관계에도 매너리즘은 금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