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용택이를 데리고 가지 않고 혼자 건너가 버릴까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아이들 스스로 이 징검돌을 건너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엄마를 뒤따라가려면 여기 이 돌과 이 돌 사이의 간격과 물의 깊이를 몸과 마음에 익혀야 해요. 그러고 나면 또 다음 돌로 건너가야 해요. 이 첫 돌부터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여든여덟 개의 징검다리를 마지막 돌까지 몸과 마음으로 다 익혀야, 물에 안 빠지고 끝까지 다 건너갈 수 있어요.
이 징검다리는 섬진강을 이해해야 하는 ‘섬진강 자율 생태학교’였던 것입니다.--- p.36~37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책이었고 선생님이었고 학교였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자연이 말해 주는 것들을 자기들의 언어로 다듬어 살아가는 데 써먹었고,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을 자식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들은 조상들의 배움 위에 새로운 생각을 보태어 자손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것이 공부였습니다.--- p.48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보고 자세히 알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자세히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쓰다가 보면 자기가 하는 일이 더 자세히 보이겠지요. 그러다 보면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하게 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더 잘하게 되면 새로운 변화와 흐름 속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더 일어나게 됩니다. (…) 그러니까 글쓰기는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글쓰기란 자기 삶의 기록이에요. 글 한 줄을 쓰면 세상이 달라져 있어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게 됩니다.--- p.78
한 그루의 나무를 자세히 보게 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무엇인지 알게 되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내 것이 될 때 인간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려는 행동과 실천 즉, 아는 것이 인격이 되는 것이지요. 아는 것이 인격이 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와 깊이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관계는 갈등을 불러옵니다. 갈등이란 둘 사이의 긴장을 말해요.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는 거지요. 모두들 자기가 옳다고 싸움을 하면 시끄럽고 불편하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등을 조절하고 조정해서 서로 화해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 조화로움을 찾다가 보면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곧 삶이고 예술이고 정치이고 교육입니다.
--- p.86~87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다시 보는 순간 세상이 달라집니다. 그냥 보는 게 아니고 다시 보고 자세히 봅니다. 그래야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경수한테 느티나무를 보라 했더니 할아버지도 보고 시냇물도 보고 들판도 보았어요. 하나를 자세히 보다 보니까, 이것도 눈에 보이고 요것도 눈에 보이고……. 이것이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겁니다.
점점, 차차, 하나하나 세상을 깨닫게 되고 그러면서 상처받고 넘어지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서 살아갑니다.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지요. 내가 살아가야 할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게 공부이지요. --- p.88
나무는 비가 오면 비를 받아 들고 다른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아침 해를 받아 들고 다른 모습으로 서 있어요. 그건 나무가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 매 순간 자기에게 오는 것들을 받아 들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받아들이는 힘이 있을 때만 자기의 새로운 모습을 세상에 그려 낼 수 있습니다. 받아들일 때만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우뚝 세울 수 있습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저 별은 어둠을 받아들여서 저렇게 반짝이는 것입니다.
창조의 힘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나옵니다.--- p.114
본래 공부란 학생들에게 살아왔던 세계와 살고 있는 세계를 보여 주고, ‘너는 무엇을 하면서 살래?’, ‘네가 좋아하는 건 뭐냐?’를 찾아 주는 것입니다. 학교가 해줘야 할 일이 바로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주는 것이지요.
좋아하면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하면 잘해요. 잘하는 것을 평생 하면서 사는 겁니다. 취직을 바로 할 게 아니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서른 살 안에만 찾으면 돼요. 방황하고 좌절하고 절망하세요. 직장에 취직해도 60세만 넘으면 퇴직해야 해요. 그래서 더더욱 좋아하는 걸 찾아야 합니다.--- p.117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있으면 손에 쥔 것만 내 것이지만 쥐고 있는 것을 놓으면 세상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한 가지만 손에 꼭 쥐고 있지 마세요. 눈멀어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 손에 쥔 것을 놓아 보세요.
누구나 다 길 없는 산 앞에 서 있습니다. 인생은 누군가가 내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길 없는 산에 들어서서 스스로 길을 내며 가는 것입니다. (…) 내가 낸 길은 폭우가 쏟아져도 쉽게 유실되지도, 끊어지지도 않고, 폭설이 내려 쉬이 묻히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세상이 바로 보일 것이고, 내가 갈 길이 더 뚜렷해질 것이고, 두려움과 부러움도 엷어질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어느 고개에서, 어느 굽이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다보며 삶의 긍정을 얻게 되겠지요.
--- p.155~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