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캐럴에게 먹는 것이란?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평생을 수련한 캐럴은 지나치리만큼 자기 절제가 철저했다. 평소 점심으로 셰리주 한 잔과 딱딱한 비스킷 한 조각 이상을 먹는 법이 없었다.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가서도 이 습관을 고수한 탓에 주위의 젊은 친구들을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반면 캐럴 자신은 이 친구들의 지나치게 왕성한 식욕에 놀라움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캐럴에게 먹는 행위는 중요한 생물학적 기능인 동시에 일종의 사교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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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셔요
앨리스는 작은 문 앞에서 기다려 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다시 탁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탁자 위에 혹시 다른 열쇠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접이식 망원경 접듯 사람을 착착 접는 법을 설명해주는 책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은 병이 눈에 띄었다(앨리스는 “아까는 분명히 없었는데” 중얼거렸다). 병의 목에는 “나를 마셔요DRINK ME”라고 대문자로 예쁘게 찍힌 종이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나를 마셔요”라니. 참 듣기 좋은 말이지만, 영리한 소녀 앨리스는 시키는 대로 냉큼 따를 생각이 없었다. “아니야, 먼저 ‘독극물’ 표시가 있는지부터 살펴야지.” 아이들이 불에 데거나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히거나 그밖에 고약한 일을 당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앨리스도 읽은 적 있었다. 빨갛게 달궈진 부지깽이를 너무 오래 잡고 있으면 데기 마련이고 손가락을 칼에 깊숙이 베이면 피가 나오기 마련인데, 친구들은 이런 간단한 규칙을 다들 기억하지 않아서 그런 일들을 당하지 않았나. ‘독극물’이라 표시된 병에 든 것을 많이 마시면 결국 탈이 난다는 사실을 앨리스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 이 병에는 ‘독극물’ 표시가 없었던 까닭에 앨리스는 용기를 내서 조금 맛을 봤는데, 아주 좋은 맛이(어떤 맛이냐 하면, 체리타르트와 커스터드, 파인애플, 구운 칠면조, 타피사탕, 갓 구운 버터 토스트가 섞인 것 같은) 나서, 한입에 다 들이켰다.
“이상한 기분이야! 망원경처럼 내 몸이 작아지나 봐!”
오렌지 …… 1개
레몬 …… 1개
배 …… 1개
사과 …… 1개
그밖에 적당한 제철 과일(파인애플이나 신양앵두 등)
고운 브라운 슈가 …… 1/2파운드
옥수숫가루 …… 2테이블스푼
물 혹은 취향껏 과일 육수 …… 2파인트
마카롱(갓 구운 버터 토스트로 대용 가능)
1. 레몬을 제외한 모든 과일을 씻어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한 뒤 잘게 자른다.
2. 자른 과일을 물이나 과일 육수에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뭉근히 끓인다.
3. 레몬즙을 내서 2에 섞고, 레몬 껍질은 강판에 갈아 브라운 슈가와 함께 냄비에 넣는다.
4. 팔팔 끓인다.
5. 옥수숫가루를 차가운 물 2테이블스푼에 잘 개어 4에 섞고 계속 젓는다.
6. 5분 더 끓인 후 옥수숫가루 맛이 남아 있으면 좀 더 끓인다.
7. 차게 식혀 마카롱을 곁들여 낸다.
8. 몸이 빨리 줄어들지 않도록 천천히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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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여왕의 잼타르트
앨리스와 그리핀이 도착해보니 왕좌에는 하트 왕과 하트 여왕이 앉아 있고, 주위에는 엄청난 인파가 북적였다. 각양각색의 작은 새들, 짐승들도 모이고, 카드 한 벌이 전원 집결한 가운데 무리 맨 앞에 하트 잭이 사슬에 묶여 서 있고, 양옆을 병사 둘이 지키고 있었다. 왕 옆쪽으로는 한 손에 나팔, 한 손에 양피지 두루마리를 든 흰 토끼가 보였다. 재판정 정중앙 탁자에는 큼지막한 접시에 타르트가 담겨 있는데, 어찌나 먹음직스럽던지 앨리스는 그걸 보는 순간 배가 고파졌다. ‘얼른 재판이 끝나서, 저런 간식 좀 나눠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럴 기미가 통 보이지 않아 앨리스는 시간을 때울 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전령, 혐의 내용을 고하라!”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흰 토끼가 나팔을 세 번 불고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어느 여름날, 하트 여왕께서
온종일 타르트를 만드셨다.
그 타르트를 하트 잭이 훔쳐
멀리 딴 데로 빼돌렸던 것이다!
파이 반죽(‘당밀 우물 타르트’ 편 참고)
잼
1. 반죽을 밀어 약 0.6밀리미터 두께로 편다.
2. 페이스트리 커터로 사용할 타르트틀보다 조금 더 큰 동그라미 모양으로 반죽을 자른다.
3. 잘라낸 둥근 반죽을 틀에 하나씩 넣어 꾹꾹 누른다.
4. 반죽 위에 잼을 조금씩 얹는다.
5. 굽는 동안 잼이 마르지 않도록 잼 위에 살짝 물을 뿌린다.
6. 적당히 예열한 오븐에 넣고 섭씨 218도에서 살짝 갈색이 될 때까지 10~15분 정도 굽는다.
7. 속까지 익었는지 확인하려면 타르트를 틀에서 빼 밑면을 살펴본다.
8. 케이크 받침대에 얹어 식히고, 잠시도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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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소화불량에는 가장 달지 않은 독서가 약
정신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그래서 예컨대 의사에게 가져가 진찰을 받아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이런, 최근 들어 정신을 어떻게 다루신 겁니까? 밥은 제대로 먹이셨어요? 안색이 창백하고 맥박이 상당히 둔합니다.”
“그게 말이지요, 요즘 정상적인 식사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사탕을 잔뜩 먹였고요.”
“사탕을요? 어떤 종류였나요”
“저기, 수수께끼를 한 묶음……”
“아, 그럴 줄 알았어요. 이점만 명심하세요. 그렇게 계속 유치한 짓을 일삼으시면, 치아 손상은 물론이고 정신의 소화불량으로 드러눕게 될 겁니다. 앞으로 며칠간은 가장 달지 않은 독서 외에는 모두 금지입니다. 조심하세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소설은 안 됩니다!”
--- p.154
무궁무진하게 탄생할 앨리스의 세계
앨리스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사람들은 거듭 1862년 7월 4일의 “황금빛 오후”로 돌아간다. 찰스 럿위지 도지슨 씨가 친구인 덕워스를 대동하고 리델 학장의 세 딸과 강가로 소풍을 갔던 그날 오후, 앨리스의 이야기가 태어났다. 도지슨 씨도, 도지슨 씨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앨리스 리델 양도 그날 오후를 “황금빛”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꼼꼼한 사람들이 런던의 기상자료를 뒤져 찾아낸 사실은 이들의 기억과 충돌한다. ‘사실’ 그날 오후는 “서늘하고 습했다”고 한다. 한차례 비가 퍼부었을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사실로 미루어 도지슨 씨와 리델 양이 다른 날의 오후와 이날 오후를 혼동했을 거라고 풀이한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변덕스런 런던의 하늘이 어느 순간 그들 일행에게 반짝하니 맑은 하늘을 내보인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이야기의 통로를 따라 을씨년스런 강가를 벗어나 앨리스가 언니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볕 좋은 강가에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사실의 확인으로 ‘그날’ 오후는 매끈하게 재구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어쩌면’을 상상할 여지가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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