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알코올 중독자를 목격했을 때 우리는 중독자의 행위만을 보고 답답해하거나 그저 부정적으로만 판단하고 만다.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들어 저렇게 술을 많이 마실까’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저 사람이 지금 아프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행위만 보는 것은 파편화된 일부만 보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는 치료가 필요한 중심부에 접근하기 어렵다. 많은 내담자들이 이 중심부를 찾고 싶어 상담소를 찾아온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반대로 불행한 시간들이 너무 많아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담소에 앉아 모욕적이었던 일들, 수치스러운 감정들, 그동안의 비참한 인생을 모두 쏟아낸다. 자신의 아픔을 만나고 다시 토해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다. 하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다. 분열됐던 나를 만나는 기회다. --- p.7~8
자신을 가혹하고 엄격하게 다루는 태도는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자신을 달래는 기능은 어린 시절 부모가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울며 떼를 쓸 때 부모가 달래는 방식은 아이의 무의식에 내재화되어 이후 평생의 삶을 지배한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아이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된다는 말이다. 인내를 갖고 잘 달래주는 따뜻한 부모 밑에서 양육된 경험을 갖고 있다면, 자신을 따뜻하게 달래고 실수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반대로 강압적이고 비판적인 양육 환경만을 경험했다면, 자신을 따뜻하게 달래주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도 가혹하게 대하는 사람이 된다. --- p.28
은영 씨를 힘들게 했던 충동구매와 쇼핑 중독은 심리적으로 볼 때 도벽과 같은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쇼핑 중독이 어째서 돈을 내지 않고 물건을 훔치는 도벽과 같은 것일까? 도널드 위니컷은 도벽이 ‘박탈’이라는 경험에서 비롯한다고 지적 한다. 쇼핑 중독 역시 양육 환경에서 ‘박탈’을 경험한 데서 비롯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탈’이란 생애 초기(1~2세 사이)에 좋은 사랑과 돌봄이 있다가 급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따뜻하고 안전한 보살핌을 받던 아이는 큰 사건이나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령 엄마가 우울증에 걸리거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할 때, 또는 둘째가 태어나면서 엄마의 관심이 온통 둘째에게 쏠릴 때 박탈 경험이 발생한다. 박탈 경험은 이혼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정서적인 철수 등이 일어날 때도 발생한다. 어린아이는 자신에게 집 중됐던 관심과 사랑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을 ‘빼앗겼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훔치는’ 시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 p.45~46
적절한 경계선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쉽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쉽게 경계선을 없앤다는 것을 뜻한다. 적절한 경계를 두고 상대를 충분히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쉽게 그리고 한꺼번에 물리·심리적 경계를 허물어버린다는 의미다. 경계가 쉽게 허물어지면 나만의 고유한 개성과 영역이 침범당할 수 있다. 또 심리적 토대가 취약해져 타인에게 쉽게 휘둘릴 수 있다. 그 결과 친밀하고 동등한 관계가 아닌 타인에게 종속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크다. 건강한 경계선의 경험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경계를 경험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적 충동에 휘말리거나 즉흥적 행동을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 p.130~131
경계선이란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나누는 기준을 말한다. 경계선이 무너지면 자신만의 삶과 행복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마치 연대 보증을 서는 것과 같다. 자신이 빚을 지지 않았는데도 갚아야 하거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빚을 갚아야 할지 모르는 황당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연대 보증을 서더라도 한계 설정을 해놓았다면 그나마 피해를 덜 입겠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갚아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괴로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특히 지나치게 요구하는 형제나 부모가 있을 때 경계선이 무너지고 그들의 삶에 종속되기 십상이다. --- p.235
용서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을 용서할 수 있을까? 상처 입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그 사실을 잊으려 서둘러 용서하는 사람들이 있다. 용서하는 게 옳다는 당위성 때문에 용서를 서두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절대로 서둘러 용서하지 말 것을 권한다. 용서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용서야말로 진정한 용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