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설화에서 이루어진 고사성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쓰면서도 우리 설화에서 우리말로 이루어진 익은말은 문헌에 거의 기록되지 않은 채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사이에 거의 소멸되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설화가 흥미 있고 내용이 비유어가 된 것은 많이 전하고 있으므로, 그런 것들을 모아 엮은 것이 이 책이 되었다.”
--- 머리말 중에서
고기 주물러 국 끓일 사람
아주 인색하고 치사하며 약삭빠른 사람을 꼬집는 말이지만, 때로는 고깃국에 고기가 적을 때 ‘고기 주물러 끓인 것 같다’고 꼬집기도 한다.
⇒ 관련 설화 : 어떤 약삭빠른 젊은 며느리가 있었다. 쇠고기장수가 오면 고기를 살 듯, 이게 등심살이냐 힘살이냐 하고 이것저것 물으며 연신 주물럭거렸다. 그리고는 “어이구, 이제 생각하니 돈을 다 쓰고 한푼도 없네.” 하며 고기를 살 수 없겠다고 했다. 쇠고기장수가 맥이 풀려 가 버린 뒤 며느리는 기름이 많이 묻은 손을 씻고 그 물로 시래깃국을 끓였다.
식사 때 시어머니가 쇠고기 기름이 어디서 났는지 묻자 며느리가 경위를 이야기하였다. 시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지금 그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며느리가 있는 대로 다 끓이고 남은 것이 없다고 하자, 시어머니는 역정을 내며 말했다. “이것아, 그 손을 물독에다 씻었으면 며칠을 두고 먹을 것을 한 끼에 다 먹어, 그렇게 헤퍼서 무슨 살림을 하겠느냐!”
--- p.50
쥐뿔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든가 무엇을 분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 관련 설화 : 어떤 부부가 손발톱을 깎으면 늘 문 밖에 버렸다. 쥐가 그것을 오랫동안 주워 먹고는 그 집 남편으로 둔갑하여 진짜 남편을 쫒아내고 부인과 함께 살았다. 억울하게 쫓겨난 진짜 남편은 이리저리 얻어먹으며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사를 만나 원통한 사정을 하소연했다. 그러자 도사가 부적을 써주며 그 부적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진짜 남편이 도사의 말대로 했더니, 가짜 남편이 벌벌 떨며 쥐로 변했다. 그 쥐가 도망가는 것을 고양이가 달려가 물어 죽였다. 진짜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쥐 좆도 모르고 그 놈과 관계하며 살았느냐.” 그래서 ‘쥐 좆도 모른다’는 말이 생겼는데, 이 말을 좀 점잖게 하기 위해 ‘좆’이 ‘뿔’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쥐 밑도 모르고 은서피 값 친다.”는 말도 본래는 “쥐 씹도 모르고”라고 했는데, 점잖게 말하기 위해 ‘씹’이 ‘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 풍속에 손톱이나 발톱을 깎으면 반드시 아궁이에 넣어 태워버리거나 오줌통에 넣어야 했는데, 그것은 쥐가 손톱이나 발톱을 오래 먹으면 인간으로 둔갑하여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368
버선 신기고 무릎 꿇려 소학을 가르치리라
‘글 배우기’는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어서 육체노동보다는 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뜻의 비유다.
전에는 이 고사성어가 널리 쓰여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 관련 설화 : 예전에 한문을 배울 때는 의관을 갖추고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아서 배웠다. 어떤 소년이 소학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 여러 번 매를 맞고, 또 버선을 신고 무릎을 꿇고 앉아 배우기가 하도 고되어 서당에 가지 않으려고 자꾸만 울었다.
아버지는 자식이 학문에 진전과 가망이 없는 것을 알고 학업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소년이 쟁기질을 배워 소로 밭을 가는데 소가 말을 잘 듣지 않자 이렇게 말했다.
“이놈의 소, 버선 신기고 무릎 꿇려 소학을 가르치리라.”
『성수패설』에는 이 이야기가 조금 달리 표현되어 있다.
어느 생원집 종이 게을러 생원이 나무라자 종이 “생원은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고 있으니 내 괴로움을 알지 못한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이 말을 생원이 듣고 종에게 말했다. “그러면 네가 책을 읽어라. 내가 네 대신 일을 하겠다.” 그리고는 종에게 망건을 씌우고, 버선을 신기고, 행전을 치고, 무릎을 꿇려 앉힌 다음 맹자를 가르치니 종이 머리가 아프고, 다리가 쑤시고, 구역질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과연 책 읽기가 일하기보다 괴로운 줄을 알고는 불평 없이 일을 했다. 그 후 종이 소로 밭을 가는데 소가 힘을 쓰지 앉자 “이놈의 소 버선 신기고 무릎 꿇려 맹자를 가르치리라.”라고 했다.
--- p.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