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로비에 노트북 5대가 놓여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그 앞에 서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노을도 비어 있는 노트북 앞에 섰다. 모니터에는 네모 칸 3개가 떠 있고, 그 안에 숫자가 깜박거리며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1, 2, 3, 4가 차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아래에 이름과 학번을 입력하는 칸이 있고 ‘엔터 키를 누르면 기숙사 방 호수 세 자리가 정해집니다’라고 적혀 있었다.노을이 정보를 입력하고 엔터 키를 누르자 돌아가던 숫자가 멈췄다. 그 순간, 새로운 메시지 창이 튀어 올랐다.
─ 121호로 결정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숫자가 층수를 의미하는 거겠지. 1층은 전망이 별로니까 다시!’
‘아니오’ 버튼을 누르자, 새 창이 나타났다.
─ 다음 문제를 풀면 방을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기숙사는 총 4층이고 한 방에 2명씩 배정됩니다. 아직 배정이 완료된 방이 없다면 당신이 3층 방에 배정받을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요?
노을은 피식 웃었다.
‘수학중학교다 이건가.’
각 칸에 1부터 4까지의 숫자들이 들어갈 수 있으니 가능한 경우의 수는 4×4×4=64로 총 64가지다. 3층은 맨 앞자리가 3으로 정해졌으니 4×4=16, 16개의 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100=25, 25% 확률로 3층에 배정받게 된다. 빈칸에 25를 치자, 다시 숫자판이 돌아갔다.
노을은 다시 엔터 키를 눌렀다. 그러자 ‘201호, 진노을’이라는 문구가 화면에 나타났다. 4층이 나올 때까지 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전망 때문에 매일 4층까지 오르내리는 건 체력 낭비니까.
노을은 201호를 선택하고는 2층으로 향했다.
--- p.14~15
“조별로 나와서 뒤에 있는 바구니를 하나씩 가져가도록. 바구니 안에는 가로 30㎜, 세로 15㎜, 높이 20㎜인 직육면체 모양의 블록이 들어 있다. 블록을 초록색 판에 빈틈없이 쌓아 가장 작은 정육면체를 만들어 제출한다. 선착순 한 조만 4포인트를 준다.”
앉아 있느라 좀이 쑤시던 노을이 벌떡 일어나 블록을 가지러 갔다. 블록을 들고 온 노을이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그냥 대충 쌓아서 정육면체 만들면 되지 않나?”
“대충은 무슨! 무려 4만 원이 걸려 있는데.”
그랬다. 4포인트, 즉 4만 원의 장학금이 과제 하나에 지급되는 것이다. 바구니를 내려놓자마자 란희가 블록을 이리저리 쌓기 시작했다. 아름은 말없이 무언가 끄적거리며 계산을 하는 듯했고, 노을과 파랑은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쳐다봤다.
“블록을 쌓으면 가로는 30, 60, 90… 30의 배수로, 세로는 15, 30, 45… 15의 배수로, 높이는 20, 40, 60… 20의 배수로 길이가 늘어나잖아. 그런데 정육면체는 모든 변의 길이가 같아야 하니까 30, 15, 20의 공배수를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가장 작은 정육면체니까 최소공배수다!”
란희가 말하자, 노을이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오구오구 잘한다. 다 풀었어?”
“아, 씨! 머리 엉키잖아!”
란희가 노을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사이에 아름이 계산을 마쳤다.
“최소공배수는 60 같은데? 혹시 계산이 틀리진 않았겠지? 두 가지 방법으로 해 보긴 했거든.”
아름과 함께 고민하던 란희는 노을을 노려보았다.
“가만있지 좀 말고 거들어 봐! 수학은 네가 나보다 낫잖아.”
“나 안 풀었는데.”
좌절모드로 빠져들던 란희는 자신의 조에 수석 입학생 파랑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란희와 아름의 시선이 파랑에게로 돌아갔다. 무심하던 파랑이 블록을 쌓아 가며 말했다.
“아름이가 푼 게 맞아. 정육면체 한 변의 길이가 60㎜가 되도록 가로는=2개씩, 세로는 =4개씩, 높이는 =3개씩 총 2×4×3=24개를 쌓으면 돼.”
파랑의 설명에 란희와 아름의 입이 벌어졌다.
“넌 계산도 안 하고 있었잖아.”
“암산했어. 계산은 끝났는데 너희들이 계속 풀고 있길래 말 안 했던 것뿐이야.”
--- p.85~87
잠시 후 동아리 담당인 정태팔이 교실로 들어왔다.
“동아리 개설에 대해 설명하겠다. 지금 개설을 앞둔 동아리는 총 21개다.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동아리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테스트 항목은 동아리 특성과 수학을 접목해서 출제했고 조원들이 함께 문제를 풀 수 있다.”
교실이 술렁였다. 또 테스트였다.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확인하면 동아리별 테스트 날짜와 장소, 준비물이 공지되어 있을 것이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동아리는 자동 해체다. 이상이다.”
정태팔이 나가자 노을은 멍해졌다. 동아리 하나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다른 아이들도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교실로 돌아간 노을은 침통한 표정으로 파랑을 응시했다.
“왜?”
노을은 파랑에게 테스트에 관해 설명했다.
“동아리 개설 허가가 나려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대. 아마 수학 문제일 것 같아.”
“통과하면 되겠네.”
파랑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노을은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 되었다. 정태팔은 분명 ‘함께’ 풀면 된다고 했고, 파란노을에는 파랑이 있었다.
--- p.186~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