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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환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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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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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43.11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5.5만자, 약 5만 단어, A4 약 98쪽?
ISBN13 978893497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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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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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안에는 벽화 외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누가 묻혔는지, 언제 벽화가 그려졌는지, 무엇이 무덤 속에 넣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무덤은 아마 대단히 오래전에 도굴된 듯하다. 사람이 드나들었던 흔적조차 희미하다. 무덤 안에 흘러들었던 흙더미를 치우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다른 벽화고분들과 달리 이곳 돌방 벽에는 동심원문만 그려졌다. 그나마 널방 벽 모서리에 표현된 나무기둥, 벽과 천장 사이를 구분하는 도리와 보 그림이 동심원문들이 가져다주는 묘한 혼란스러움, 단조로움 속의 어지러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조선인 일꾼 하나가 무덤 안을 정리하다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림 속에 그림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안으로 들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몄다. 안에만 들어서면 묘한 한기가 옷가지 사이로 파고드는 것 같다. 정말 동심원문 사이로 그림이 보였다. 얼굴이 둥근 사람의 옆모습이다. --- p.78

이제 나는 범어 경전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리 같은 자들의 흉폭한 손에 걸려들어 졸지에 노예가 되면서 경전과는 인연이 끊겼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인연으로 머리에 담긴 것이 적지 않다. 여래가 직접 말씀하시는 것들도 여전히 가슴에 새겨져 있다. 이 승원에서 수행하는 틈틈이 이를 기억해내어 정리하고 묶어낸다면 내 뒤를 이어 이 땅에 닿을 새 호자들의 전법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내가 이 땅에 발을 디딘 몇 번째 호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래께서는 내 뒤를 이어 또 다른 호자들이 잇따라 이곳에 걸음하게 하실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곳 고구려 맥자들이 내 뒤를 잇는다 해도 내가 겪은 일, 내가 본 세상은 저들에게도 덕이 되리라. 여래여, 이 세상 육신을 버리기 전에 마음에 둔 이 일들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하소서. 동방 명궁 나라에서의 내 인연이 육도에서의 선업을 쌓는 마지막 걸음이 되게 하소서. --- p.159

무덤칸의 천장에는 우리 가문의 전통대로 해와 달을 넣고, 북두칠성과 남두육성, 갖가지 별과 구름을 넣은 고구려의 우주, 주몽님의 하늘로 꾸며야지! 별의 화신들도 넣고 상서로운 기운도 표현하고, 아버님 때부터 천장 아래쪽에 넣기 시작한 사신도 그려야겠다. 한보 어른도 중요시하는 데다 세상 사람들도 사신의 영력에 대해 전보다 더 깊은 믿음을 보이니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좀 더 크게 나타내는 것이 좋겠다. 한낱 화사의 신분인 내 무덤을 이런 우주 수호신들로 장식할 수는 없을 테니, 혼신을 다해 한보 어르신 무덤에 이 신성한 장식들을 그리면 내가 죽더라도 내 영혼만은 평안함을 누리리라. 그것이면 충분하다. --- p.187~188

아버님 무덤을 다시 어떻게 장식할지는 발고에게 모두 맡기겠다고 했다. 사실 화사 대수가 이미 장식을 마쳤는데, 그에게 다시 장식해달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대수도 그것을 알면 크게 언짢아할 게 틀림없다. 조금씩 고치는 것도 아니고, 아버님의 뜻을 헤아려 온전히 새롭게 해달라고 말했으니 발고의 고민이 깊은 게 당연하다. 모본도 없고, 그렇다고 절간처럼 장식할 수도 없을 테니 나도 말 꺼내기가 여간 민망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수나 대발고나 여래를 믿는 것도 아니니 막막할 것이다. 차라리 대수의 제자들 가운데 호자스님에게 그림을 배웠다는 맏이 해우로에게 맡길까? 게다가 그는 그림방의 맏이니까 그럴 자격도 충분하다. 소불리나 삼모루는 어떨까? 아니다. 화사 집안이 멀쩡히 존속해 있고 발고가 대수를 이을 것이 뻔한데 그 밑의 사람들이 큰 붓을 잡게 해서는 안 된다. 발고는 어릴 때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그림쟁이라고 소문난 아이가 아닌가. --- p.223~224

오랜 세월이 흐른 데다 무덤이 파헤쳐진 뒤 겨울에는 눈에 덮이고 여름에는 비바람에 드러나 있던 까닭에 남은 관재도 형체만 겨우 있는 상태였다. 썩은 관재 부스러기 사이로 큰 어른의 시신을 감쌌던 수의 자락이 얼룩지고 검어진 상태로 한 조각 드러나 보였다.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큰 어른의 시신은 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벌써 무덤을 지은 지 수백 년이 흘렀으니 수의 자락 한쪽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워낙 크고 무거운 돌로 널방을 만들었기 때문에 큰 무덤 위아래 어느 곳도 나와 장정 한둘의 힘으로 손볼 수 있는 데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수의 자락과 관재를 자갈돌로 덮은 뒤 무덤을 파헤칠 때 주변에 흩어진 자갈들을 주워모아 돌무지 위로 다시 올렸다. 이런 식으로 무덤 외관을 다듬는 데만 한나절이 걸렸다. 해질녘이 가까워져서야 무덤 앞에서 제사를 올려 혼령을 위로할 수 있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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