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오늘 먹은 아침 반찬을 기억하나요? 낮에는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 보았나요? 혹시 이런 일들이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여러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엄마가 좋아하시는 색깔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내일을 위해, 목표를 위해, 성공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일이라는 이유로, 목표라는 이유로 그리고 성공이라는 이유로 오늘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사소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하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일분일초도 사소한 것은 없습니다. 순간순간의 생각마저도 말이지요. 왜냐하면 순간순간의 생각이 모여 자신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앞에서 말한 건강하고 비옥한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장자가 말한 이상적인 인간, 즉 참인간인 진인眞人은 이러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 pp.84~85 『마음_지금 너의 마음은?』중에서
이제 여러분에게 마지막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나요?” 또 싱거운 질문을 했나요?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나눈 이야기를 되새기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과연 자신이 지금 살아 있는지 말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살아 있나요?”라는 질문을 “지금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며 살고 있나요?”라고 바꿀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자유로운가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나요? 무언가 이루려고 애쓰고 있나요? 사랑하고 있나요? 행복한가요?”
앞에서 보았던 자화자의 말을 떠올려 보세요. 그는 생명의 욕망이 억눌린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패트릭 헨리의 말을 되돌아보세요. 그는 자유가 없는 삶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중략)
생명은 단순히 숨을 쉬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실현하려 애써야 합니다. 그렇게 이유를 찾고 좋아하는 것을 하려는 사람의 마음은 살아 있는 마음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불꽃은 뭔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 pp.117~119 『생명_살아 있다는 것』중에서
여기에 나오는 애태타라는 남자는 요즘으로 말하면 아무런 ‘스펙’도 없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는 것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자기주장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남의 말을 잘 들어 주고 남들과 잘 어울릴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몹시 좋아합니다. 왜일까요?
《장자》에 ‘허심虛心’과 ‘응물應物’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허심’은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고, ‘응물’은 ‘외물에 응한다’는 뜻입니다. ‘외물’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좁게는 마주하고 있는 상대방에서 넓게는 세상 전체까지를 가리킵니다. 허심은 응물을 하는 마음가짐에 해당합니다. 애태타는 허심의 상태로 사람들을 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허심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세상을 대할 때는 누구나 자기의 생각과 입장을 갖고 대합니다. 가령 부모들은 자식을 대할 때 대개 ‘우리 애가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일정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지나치고 지속되면 ‘성심成心’, 즉 ‘굳어진 마음’이 됩니다. 이 굳어진 마음으로 자식을 바라보면 자식이 ‘사람’이 아닌 ‘공부’나 ‘점수’로만 보이게 됩니다. 자식의 진정한 장점이나 재능은 안 보이게 되지요. 그래서 자식이 성적이 오르면 기뻐하고, 성적이 떨어지면 슬퍼하게 됩니다. 성적이 자신의 행복이자 자식의 미래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중략)
반면에 ‘허심’은 세상을 대할 때 아무런 기준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고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유방의 예를 들면, 아랫사람의 신분이나 지위 또는 외모는 따지지 않고 오로지 ‘능력’ 하나만 보는 태도와 유사합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내적인 진실함보다는 외적인 지위나 학력 또는 재산 등을 따집니다. 특히 요즘처럼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특히 더 심하지요. 그런데 애태타와 같은 태도에는 비록 사람들을 일시에 빨아들이는 흡인력은 없을지 몰라도,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는 무한한 포용력이 있습니다.
--- pp.186~187 『리더_여러분은 어떤 리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