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피니어스 게이지의 성격을 바꾸었을까? 성격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 구분이나 사주·골상에 따른 성격 해석은 타고난 기질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반면 과거의 경험,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성인기의 성격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은 양육과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태도로, 발달이론이나 정신분석이론에서 지지한다. 기질과 양육 논쟁은 지금도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게이지의 사례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바로 전두엽의 역할이다. 전두엽의 손상이 한 사람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즉 뇌의 변화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적 기반이라는 것이다.
---「1장 정신의학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중에서
왜 식이장애가 현대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일까? 1940년대 이후 서구사회의 ‘날씬함에 대한 추구’가 폭식증과 거식증이 정신질환으로 자리 잡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날씬함은 독립성, 자율성, 절제의 상징처럼 인식되었고, 미디어에서 보이는 모델이나 스타는 비정상적인 날씬함을 유지하면서 청소년과 젊은 여성은 그들을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 완벽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지난하게 투쟁하며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왜곡하고, 살찌는 것에 대한 병적인 공포심이 생긴다. 그래서 항상 먹는 것을 생각하는 과민한 상태에서 지나치게 굶고 억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억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폭식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그 폭식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먹은 음식을 게워내고 그에 대한 죄의식이 악순환을 이루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2장 새로운 질환인가, 문화의 산물인가」중에서
데이비드 라이머의 비극적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 ‘성 역할이나 성 정체성은 환경과 교육, 양육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론은 힘을 잃었다. 여성학이나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지지되었던 ‘남녀의 행동과 세상에 대한 인식, 심리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기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훨씬 크다’고 보는 이론을 반증하는 사건이었다. (중략) 성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3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가 성 주체성으로 성염색체와 성기의 생김새로 결정하는 생물학적 성을 말한다. 두 번째는 성 정체성으로, 2세 반에서 3세 사이의 발달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성인지 인식하는 심리적인 성이다. 세 번째는 성 지향성인데, 매력을 느끼는 대상은 이성이나 동성 혹은 둘 다일 수도 있다. 트렌스젠더, 동성애를 정의하는 데 이 3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라이머의 경우 성 주체성은 남성이지만 사고로 성기가 손상되자 성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만들려 했다.
---「3장 인간이 심리와 행동을 조작할 수 있는가」중에서
신중하면서도 객관적·과학적으로 접근했으므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은 1, 2판과 질적으로 달랐다. 이로써 정신의학의 진단은 전통적 의학 모델에 기반했다고 할 정도가 되었고, 다시 의학의 주류 진단 체계로 편입될 근거를 갖게 되었다. 경험 있는 의사들 사이에서 진단적 일치도가 상당히 높으며, 객관적인 증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정량적인 증상의 개수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었다.
누구나 간편하게 펼쳐볼 수 있으면서 공신력을 가진 가이드라인이 제공된 덕분에 이 진단 기준은 정신과 병원에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보건기관, 사회복지기관, 민간보험회사, 법정, 감옥, 연구를 위한 대학 등으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국제질병분류보다 일차적인 진단 기준으로 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을 넘어서 세계로, 의학계를 넘어 전 사회적으로 일종의 기준점이 되고 매 사안마다 인용하는 책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정신의학계의 바이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4장 저주받은 것인가, 고장 난 것인가」중에서
프로이트와 아들러 모두 정신질환에는 유전과 환경이 공동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관점은 유사했다. 그러나 아들러는 ‘기관 열등성’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생물학적 기반이 열등한 경우 신경증이 더 잘 생긴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가 어릴 때의 외상 경험이나 정신성 발달을 중요시했다면, 아들러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바탕으로 사회나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입장이었다. 어린 시절의 정신성발달이 인격 형성의 핵심이라는 프로이트의 견해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아들러는 열등성을 더욱 파고들었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적 불완전성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서 이 과정에 실패하면 신경증 증상이 생긴다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었다.
---「5장 정신분석은 여전히 유효한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