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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식인 지도

세계 지식인 지도

: 21C 지식인은 어디에 서 있는가

김상환 등기획 / 정재왈 진행 / 정운영 등저 | 산처럼 | 2002년 03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7 리뷰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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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지도
[도서] 현대사상 지도
기다 겐 편저/김신재 등역 산처럼
10% 20,700
현대사상 지도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48쪽 | 153*224*30mm
ISBN13 9788990062000
ISBN10 899006200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우리 시대의 화두를 풀어가는 지식인들의 지형도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기획위원(가나다 순)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
김성기 문화비평가·사회학
이동철 용인대 교수·동양철학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과학사
임지현 한양대 교수·서양사
정과리 연세대 교수·불문학

기획·진행
정재왈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최근 '복잡계(complex system)'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진화, 면역, 뇌, 생물 집단, 생태계 등 생물학 분야뿐 아니라 인구 문제, 지구 온난화, 산림 감소 등 지구 환경계와 주식 시장, 환율 등 시장 경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현대 주류 과학의 외곽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온 복잡계의 패러다임을 이제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복잡계는 여러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각 요소가 다른 요소와 끊임없이 상호 작용을 하는 체계다. 한 예로 뇌는 1천억 개의 신경소자들이 연결된 회로망으로 대표적인 생체 복잡계다. 이 경우 각 소자는 생성된 신호를 서로 주고받으며 함께 규칙적 리듬을 만들어내거나 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뇌는 각 신경소자의 단순한 신호 생성 움직임을 넘어서 인간 인지 활동의 기반이 되는 다양하고 복잡한 패턴을 회로망 위에서 새롭게 생성해 낸다. 이런 점에서 복잡계는 "부분의 단순한 합이 전체가 아니다"는 격언으로 대변되기도 한다.
초기에 복잡성의 연구는 고전 역학의 '결정론적 세계관(현재 상태가 주어지면 미래가 유일하게 결정됨)'과 20세기 초에 크게 발전한 양자 역학 및 통계 역학에 기초한 '확률론적 세계관(주사위 던지기처럼 미래가 확률적으로 주어짐)'의 내재적 갈등 구조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연구로 폭발적인 성장을 한 비평형계 과학(안정된 평형 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체계를 연구하는 과학)과 카오스 이론을 들 수 있으며, 복잡계를 연구하는 과학은 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카오스는 외관상 매우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어떤 규칙성이 숨어 있는 운동을 일컫는다. 카오스는 20세기 초 쥘 앙리 푸앵카레(1854∼1912. 프랑스 수학자)가 태양, 달,지구와 같은 세 개 물체의 운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처음 인지되기는 했지만 이 연구는 한동안 자연과학의 주변적 분야에 머물렀다.

1963년 에드워드 로렌츠(1917∼ . 미국 MIT 명예교수)라는 한 기상학자가 기상 현상의 모형에서 카오스 이면의 규칙성 구조(많은 경우 운동이 여기로 끌려간다는 점에서 '끌개'라고 불림)를 발견한 것은 카오스 연구의 돌파구를 마련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1970년대 말 천재적 물리학자인 미첼 파이겐바움(1945∼. 미국 록펠러 대학 석좌교수)은 생태계의 한 모형에서 발견된 수학적 카오스가 많은 자연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남을 보여주는 엄밀한 이론적 연구를 통해 카오스 연구가 과학의 주류에 편입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1980년 이후 다양화한 카오스 연구의 초기 흐름에 한국의 국형태(경원대), 이경진(고려대), 박혁규(부산대), 김승환(포항공대) 교수 등이 동참하였다.
--- pp. 213 ~ 214
중남미 현대 소설은 흔히 '붐(Boom)'이라 불린다.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중남미 현대 소설이 폭발하듯이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사회, 문화의 후진국인 중남미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문학이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기존의 문학 모델을 파괴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현대 문학을 이야기할 때면 '아버지 죽이기'란 개념을 만난다. '아버지 죽이기'란 중남미 문인들이 아버지로 여기고 있던 서구의 문화를 해체하고 자신들의 주체적인 문학을 만들려는 노력을 상징한다. 중남미 작가들은 미국·유럽 중심의 정전(正典)을 파괴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숙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이런 점에서 그들의 반항은 미래 지향적인 계획이었다.

중남미 현대 소설의 창시자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라고 일컬어지는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과거를 배척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면서 리얼리즘의 모델을 파괴한다. 한편 중남미 소설의 세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환 룰포(1917∼86, 멕시코), 훌리오 코르타사르(1914∼84, 아르헨티나) 등은 그들의 아버지 격인 보르헤스를 죽이는 대신 그의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발전시킨다.

중남미 현대 소설의 특징은 현실 언어의 한계를 의식하고 현실을 모방하려는 모든 리얼리즘 표현 양식을 거부하면서 가변적이고 복잡한 상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문학 의식은 미국과 유럽의 모더니즘 문학과 흡사하다. 하지만 그들은 중심이 존재하는 서구의 모더니즘과는 달리 다양성을 통해 중심을 해체시킨다. 이것은 중남미가 '주변부'라는 의식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데, 이런 의식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탄생시키게 된다.

이 때문에 중남미 문학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효시이며 동시에 백미(白眉)라고 여겨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신(新)보수주의적 성향을 비판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 이론의 출발점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남미 문학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탈중심주의적' 글쓰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럽과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성도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

1970년대에 들어 붐 소설은 절정에 이르고 세계 문학의 정전으로 자리잡지만, 날이 갈수록 실험적 언어 및 문학적 공간과 시간의 신화화(神話化)만을 추구한다. 그러자 새로운 작가들은 붐 소설의 모델을 파괴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포스트붐' 즉 붐 이후의 세대라고 불리는 작가들은 보르헤스 식의 '환상 문학'이나 가르시아 마르케스 식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반기를 든다. 그들의 작품에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콘도(소설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상상의 도시)'처럼 수년 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리지도 않으며, 룰포의 '코말라(소설 《페드로 파라모》에 나오는 상상의 도시)'처럼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과 공존하지도 않는다.

마누엘 푸익, 이사벨 아옌데, 멤포 지아르디넬리, 알베르토 푸겟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붐은 붐 소설이 과도한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으며, 세계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중남미 현실을 도외시하고 과도한 실험에만 집착한다고 질타한다. 이런 비판을 통해 그들은 대중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을 통해 중남미의 현실을 작품 속에 투영하려고 노력하고 실험 문학이 아닌 리얼리즘으로의 회귀를 통해 붐 소설과의 차별성을 시도한다.
--- pp. 66 ~ 69
아마도 프랑스인들만큼 세계화에 비판적인 국민들도 드물 것이다. 프랑스인의 비판적 태도는 서로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고 있는 우파의 대통령과 사회당의 총리가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 담당자들로부터 평범한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고루 퍼져 있는 일반화된 태도다. 이러한 범국민적 태도는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늙은 유럽의 히스테리라고 볼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인들은 철저한 상업적 이윤 추구와 무자비한 생존 경쟁의 논리로 추동되고 있는 세계화의 밀물에 맞서 자유, 평등, 박애에 입각한 도덕의 방파제를 쌓고 있는 것이다. 이 도덕적 대의가 어떻게 나날의 삶 속에서 쉼 없이 솟아오르는가? 그것은 바로 생활의 문제를 긴박한 학문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온 프랑스 지식인들의 오랜 역사적 전통으로부터 비롯한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행복을 위한 약속' 이래 프랑스 지식인들은 상아탑의 학자로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저자와 거리의 한복판에서 공공선의 확립과 유지에 기여하는 것을 자신들의 책무로 삼았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한 메를로-퐁티에게 사르트르가 "'지식인의 소명을' 배반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포기하였다"고 비난한 것은 극단적이면서도 집약적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요컨대 "본질적인 것"은 "입장을 취하는 것"이며 "행동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신문《르 몽드》의 자매 월간지인《르 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바로 이 세계화에 맞서 행동하는 지식인들의 최전선의 교두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시민성 그리고 연대'를 사시로 삼고 있는《르 몽드 디플로마티크》는 1970년대 후반부터 세계화의 추세를 비판적으로 주시하기 시작해서 1997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와 격렬한 지상 논쟁을 치렀고, 1999년에는 그동안 발표된 글들을 추려 세계화에 대한 종합 보고서인 《세계화를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CD-ROM을 출시하였다. 그 이후에도 1999년 5월 이후 2001년 1월까지 세계화를 다룬 40편의 논설을 게재하였으니, 이 주제로 한 달에 두 편 이상의 글이 실린 셈이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총지휘하고 있는 사령탑에는 사장 겸 주필인 이냐시오 라모네(1943∼ )가 있다. 파리 7대학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는 라모네는 한국어로 번역된 《커뮤니케이션의 횡포》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언론인의 책임과 윤리를 깊게 강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 지식인의 전통을 직접 잇고 있는 사람이다. 세계화에 대한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비판의 시각들은 라모네의 손에서 솟아올라 퍼져나간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라모네의 필봉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라는 반세계화 저항군의 신호탄이다.

물론 사령관이 혼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이 기나긴 전쟁의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적어도 3개의 집단이 협력한다. 우선 장교와 병사들이 있다. 편집국장인 베르나르 카상, 편집국 기자였거나 현재 기자인 자크 드코르누아, 세르주 알리미, 크리스티앙 드 브리 등이 라모네의 '어 퓨 굿 맨'이다.

이들 편집기자단이 긴밀히 짜여 정치, 경제, 문화를 두루 아우르는 반세계화 항전을 전개한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자유 거래가 감추고 있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세계무역기구(WTO), 국제금융기금(IMF), 세계은행 등 세계 기구들이 시장 단일화를 부추기면서 약소국의 시장을 먹이로 하는 포식자들의 축제를 주도하는 과정을, 그리고 그 와중에서 문화적 획일화, 사유의 정체, 사회 분열이 야기되는 끔찍한 현상을 적발하고 고발한다. 그 고발과 비판 위에서 세계화에 희생된 약소 국민들과 약소국의 중소기업들 사이의 실천적 연대를 모색하고 촉구한다.

다음,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사상적으로 동행 혹은 후원하는 지식인 그룹이 필진으로 대거 참여한다. 모든 권력에 대한 저항을 내세움으로써 스스로 반권력의 권력으로 떠오른 '분리파'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 세계 자본주의의 개념을 세운 이매뉴얼 월러스틴(1930∼ ), 남아메리카 혁명에 참여하여 오랫동안 옥살이를 했으며 이른바 '매개학'의 창시자인 레지스 드브레(1941∼ ), 역사학자이자 파리 7대학 명예교수인 장 셰노(1922∼ ), 사르트르가 창간한 《레 탕 모데른》의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가장 탁월한 사회주의 이론가의 하나로서 평가를 받은, 노동 문제와 정치 생태학 전문가인 앙드레 고르즈, 루뱅 가톨릭 대학 경제학 교수인 리카르도 페트렐라 등등 쟁쟁한 학자들이 사상적 동반자들이다.

이 사상적 동반자 중의 하나인 리카르도 페트렐라가 1995년 만든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친구들'은 정당과 이념과 관계없이《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 노선을 옹호하는 시민들의 모임으로서, 약 14,000명의 열성 회원과 55개의 지역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주적 운영을 지속시키기 위해, 재정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떠맡으면서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이념을 전파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마지막으로,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실천의 차원에서 연대하는 사회 조직들이 있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전 주필인 클로드 쥘리앵이 1986년 파리에서 총재직을 맡으면서 출범하였고, 그 이후 50여 개의 도시로 확산되어 나간 '콩도르세 서클'은 '대학 교수, 경제 전문가, 노동운동가, 연대투쟁 인사들'이 "함께 모여 세상에 대해 걱정하고, 기술 혁신, 세계화, 개인주의 그리고 급변 사회의 출현에 맞서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것인가에 대해" "매달 토론"하는 범 지식인 단체다.

실천적 연대의 한 극에는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적극적으로 조명하고 지원하는 조세 보베와 그가 이끄는 '농민 연합(Conf d ration paysanne)'이 있다. 맥도널드 체인점 파괴 사건 이후 일약 현대의 아스테릭스(로마의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싸우는 골족의 투쟁을 다룬 코믹 영화 〈아스테릭스〉의 주인공)로 떠오른 조세 보베는 농민 연합을 이끌면서 반세계화의 선봉에서 나날의 투쟁을 개진하고 있다. 그러나 조세 보베만이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전우인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 포럼이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린 2001년 1월 25일에서 30일 사이의 똑같은 기간에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조합 지도자들, 다양한 형태의 NGO 책임자들, 시민 대표들이 '세계사회포럼'을 열고 '금융가의 시각에서가 아닌 시민의 시각에서' 세계의 문제를 토론하였는데, 여기에 모인 2천∼3천의 지식인들과 그들이 대표하는 전세계의 세계화 비판자들이 모두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우방이자 동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와서 이 행동하는 동지들이 꿈꾸는 것은 단순히 반세계화가 아니다. 포르투 알레그레의 포럼은 "항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정신 속에서 새로운 유형의 세계화 기획을 가능케 할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틀을 짜기 위한" 모임이었다고, 따라서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다"고 라모네는 확언한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베스트셀러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세계화에 대한 프랑스의 저항은 그 나라를 투자하기에 매력적이지 못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적은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 라모네는 '세계 사회 포럼'을 기대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범박하게 말해 이러한 시도들은 또 다른 세계가 진정 가능한가를 밝혀 보여줄 것이다."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세계의 투자 가치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pp. 103 ~ 107
도나 해러웨이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의식학과(History of Consciousness) 교수다. 기념비적인 저서 《영장류의 전망》(1989)과 고전의 반열에 오른 에세이 《사이보그 선언문》(1991)을 통해 지식의 형성과 과학·문화 비평에 대한 독특한 사유 방법을 제시했던 그녀는 페미니즘 과학학 학자 및 사이보그 인류학자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과학 지식의 형성에 반영되는 메타포와 그런 메타포가 지식을 만들어내는 힘의 네트워크에 미묘하게 작용하는 인식론에 관하여 해러웨이는 '위치지어진 지식(situated knowledge)'이란 모델을 제안하였다.

자연 현상이나 세계를 잘 설명하기 위해 전망(vision)이란 메타포를 이용하자면, 지식이란 어떤 장소에서 바라본 특정한 시각에 불과하므로 어떠한 견해와 주장도 결국은 특정 장소에서 바라본 부분적인 전망일 뿐, 보편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식 주체인 행위자와 인식 대상인 비행위자 간의 대화 및 협상이 필요한 것이며, 그러한 요건이 충족되는 한에서만 좋은 과학이 가능하다고 해러웨이는 본다. 그녀의 '위치지어진 지식' 모델은 객관성, 실재론, 사회구성주의 과학관의 절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식 모델에서 해러웨이는 자연의 실재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며,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은 구별할 수 있고,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자연 현상의 물질적 분석과 이를 둘러싼 문화적 분석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해러웨이의 '위치지어진 지식' 모델은 그녀의 저술 전반에 흐르는 이론적 패러다임이다.

《사이보그 선언문》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결합하여 풍자적인 정치신화를 고안한 해러웨이의 역작이다. 그녀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재편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정체성을 주장하였고, 그 정체성의 중심에는 사이보그가 있다고 말한다.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인 사이보그야말로 생명과 기계,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없어져 버린 미래 우리들의 모습과 존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과 기계인 컴퓨터의 관계를 보자. 오퍼레이터는 기계에 명령을 내리고 기계는 오퍼레이터의 일부처럼 그 명령을 수행하는 관계인데, 여기에서 만드는 자와 피조물의 경계는 모호하다. 또한 우리는 독립적으로 동작하는 기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네트워크에 접속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 네트워크 안에서는 무엇이 정신이며 무엇이 육체인지 그 경계 역시 분명하지 않다. 바꾸어 말하면 기계와 유기체, 기술적인 것과 유기체적인 것 양자 사이에 근본적이고 존재론적인 분리는 없다.
--- pp. 399 ~ 400
1980년대 중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서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막연하게 신뢰하던 현대 사회의 안전 체계가 계산 불가능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문명의 이름으로 도처에 깔려 있는 생명의 위협에 대해 사람들은 전율하였다.

울리히 벡의 《위험 사회》는 바로 그 시점에서 '현대 문명이 도달한 지점이 과연 어디인지'를 예리하게 파헤쳐 "제도 과학에 유성의 충돌과 같은 충격을 안겨준" 명저로 각광을 받았다. 이 책에서 벡은 "앞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삶에 대한 위협"인 '위험'이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근대성' 안에 내재한 자동적 결과임을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과 산업 문명은 자연과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 '제조된 불확실성과 위협'을 점점 증가시켜 왔다. 교통 사고나 비행기 사고의 위험부터 테러와 핵무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은 24시간 위험을 옆에 끼고 산다. 문제는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해 우리의 지식이 지극히 불완전하고, 위험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위험은 전 지구적으로 도처에 깔려 있는데 위험의 내용과 범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벡이 '위험의 덫'이라고 부른 위험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회적 행동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묶어 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험을 전면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 시스템들을 비록 불완전하고 다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치적 사회적 결정들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후자의 과정, 즉 근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위험한 결과들에 대한 새로운 대응 체계를 사려 깊게 만들어가는 '이미 진행된 미래'를 벡은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로 명명하였다.

1980년대 벡의 작업이 위험 사회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자기 이해에 초점을 두었다면, 1990년대의 벡은 전환기의 세계를 체계적·거시적 수준과 개인적·미시적 삶과 행위의 수준에서 함께 이해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의 생산성은 놀라울 정도여서 거의 일년에 한 권의 책을 낼 정도로 왕성한 집필욕을 보이고 있는데, 그의 저서들은 난해한 이론서라기보다는 시대를 사는 지혜를 알려주는 잠언록과 같은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폭넓게 사랑을 받고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벡의 지칠 줄 모르는 지적 탐험은 영국의 대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와 스콧 래쉬의 작업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1990년대에 와서 이들은 서로의 이론이 매우 근접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성찰적 근대화》라는 공저는 이렇게 해서 출간되었다. 우선 이들은 비록 쓰임새는 약간 다르지만 성찰성이란 개념을 시대의 비밀을 풀어갈 새로운 화두로 삼고 있다는 데서 공통의 문제 설정(problematic)을 보여주고 있다.
--- pp. 177 ~ 178
이동철 (사회) '세계 지식인 지도'는 종래에 자주 있었던 석학이나 거장 또는 첨단의 소개가 아니라, 일정한 흐름과 지형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중요한 특성이 아닌가 합니다. 세계화, 근대성, 생태, 정보, 페미니즘 등의 키워드를 통해 21세기의 고민과 과제를 검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임경순 이번 연재는 특히 주류 사상뿐만 아니라 여성,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 주변부의 시각이 함께 어우러져 좋았습니다. 지식인의 대열에서 빠지기 쉬운 과학기술 분야의 지식인들, 예를 들어 리처드 스몰리와 나노테크놀로지, 테크노사이언스의 여전사 도나 해러웨이 등이 포함되어 지식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과리 세계의 방방곡곡에 분산되어 있는 지식인들을 정밀한 분류 원칙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돈하여 지식 공간에 대한 최신판의 지도를 작성하였습니다. 또한 현대 지식인들의 역사적 계보를 캐들어감으로써 물질 문명의 발달에 끊임없이 반성적 성찰을 제공한 사유의 시간 줄기를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김상환 전세계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 지식의 새로운 전선(前線)과 지식인의 활약상을 골고루 정리해 보았다는 의의 외에도 이 연재의 특성과 성과로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세계적 지식인 지도의 세부에 대응하는 필자들을 발굴하고 모았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지식인 지도를 그리면서 국내의 지식인 지도도 자연스럽게 그려진 셈이지요.

임지현 기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이념적 지형에서, 즉 한국 사회의 문제 의식에서 세계 지식계의 동향을 일별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또 뒤집어서 말한다면, 이 기획에서 해체론을 비롯한 각종 '포스트 담론'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문제 의식이 주변부 혹은 제3세계적 시각에서 벗어나 중심부 사회의 문제 의식으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절차적 민주화 혹은 형식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는 1990년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지요.

김성기 먼저 기획위원으로서 자축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지식의 세계 지도'가 필요했는가, 그리고 그게 제대로 그려졌는가 하는 점이겠죠. 애초부터 지도 작성이란 무모한 시도가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21세기 우리 지식인은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절박한 고민을 반영했다고 봅니다. 물론 결과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도 가능할 터이며, 다만 향후 온전한 지도 작성을 위한 밑그림 구실은 충분히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동철 이번 기획이 한국의 지식인 사회나 학계에 지니는 의의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우리의 지식인 사회나 학계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균형 감각과 현실 감각입니다. 아울러 그에 바탕을 둔 어젠다 설정 능력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 균형감과 현실감은 지도를 그리는 데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여러 면에서 미흡한 점도 있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세계 지식인의 흐름과 동향에 대해 지도를 그리고자 했고, 그려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우리 내부의 지적 역량이나 축적, 나아가 한계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던 점도 의미가 있겠지요.

김성기 우리 지식계의 '칸막이' 현상을 절로 돌아보게 했다는 점이죠.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문화와 지식의 창'이란 게 너무 편협하고 특히 지적 촉수가 미국과 유럽권에 쏠려 있다는 문제가 드러났지요. 또 하나, 이런 기획이 언론사에서 추진되기 전에 학계 내부에서 먼저 공동의 지적 의제로 제출되지 못했다는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든 두고두고 반성할 대목이지요.

김상환 제 동료인 김기현 교수가 대니얼 데닛과 인공지능에 대해서 썼는데, 기사가 나간 후 여러 군데에서 문의 전화가 왔다고 그래요. 이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다는 것을 넘어 같은 관심을 갖는 전문가들끼리 서로 연락하고 연대하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연재에서 신생 학문이나 영역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이런 분야일수록 그런 효과가 컸으리라 봅니다.

정과리 무엇보다도 지식인들의 다양성과 넓은 폭은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 개안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바깥의 학문을 섭취하는 작업에서 너무 편식해 오지 않았는가 하는 자성이 저절로 듭니다. 게다가 언뜻 보기에 엇비슷한 지식 동향들 속에 있는 미세한 차이가 세계관의 근본적 차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삶의 현장과 구체성의 문제로 귀착합니다.

한국 지식인들에게 세계 지식인들이 중요하다면 바로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고뇌하면서 자신만의 이론 체계를 세워나간 치열한 과정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지식은 우리에게 주입적으로 전수될 것이 아니라, 유비(類比)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인 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 pp. 430 ~ 432
이동철 (사회) '세계 지식인 지도'는 종래에 자주 있었던 석학이나 거장 또는 첨단의 소개가 아니라, 일정한 흐름과 지형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중요한 특성이 아닌가 합니다. 세계화, 근대성, 생태, 정보, 페미니즘 등의 키워드를 통해 21세기의 고민과 과제를 검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임경순 이번 연재는 특히 주류 사상뿐만 아니라 여성,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 주변부의 시각이 함께 어우러져 좋았습니다. 지식인의 대열에서 빠지기 쉬운 과학기술 분야의 지식인들, 예를 들어 리처드 스몰리와 나노테크놀로지, 테크노사이언스의 여전사 도나 해러웨이 등이 포함되어 지식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과리 세계의 방방곡곡에 분산되어 있는 지식인들을 정밀한 분류 원칙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돈하여 지식 공간에 대한 최신판의 지도를 작성하였습니다. 또한 현대 지식인들의 역사적 계보를 캐들어감으로써 물질 문명의 발달에 끊임없이 반성적 성찰을 제공한 사유의 시간 줄기를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김상환 전세계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 지식의 새로운 전선(前線)과 지식인의 활약상을 골고루 정리해 보았다는 의의 외에도 이 연재의 특성과 성과로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세계적 지식인 지도의 세부에 대응하는 필자들을 발굴하고 모았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지식인 지도를 그리면서 국내의 지식인 지도도 자연스럽게 그려진 셈이지요.

임지현 기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이념적 지형에서, 즉 한국 사회의 문제 의식에서 세계 지식계의 동향을 일별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또 뒤집어서 말한다면, 이 기획에서 해체론을 비롯한 각종 '포스트 담론'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문제 의식이 주변부 혹은 제3세계적 시각에서 벗어나 중심부 사회의 문제 의식으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절차적 민주화 혹은 형식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는 1990년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지요.

김성기 먼저 기획위원으로서 자축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지식의 세계 지도'가 필요했는가, 그리고 그게 제대로 그려졌는가 하는 점이겠죠. 애초부터 지도 작성이란 무모한 시도가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21세기 우리 지식인은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절박한 고민을 반영했다고 봅니다. 물론 결과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도 가능할 터이며, 다만 향후 온전한 지도 작성을 위한 밑그림 구실은 충분히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동철 이번 기획이 한국의 지식인 사회나 학계에 지니는 의의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우리의 지식인 사회나 학계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균형 감각과 현실 감각입니다. 아울러 그에 바탕을 둔 어젠다 설정 능력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 균형감과 현실감은 지도를 그리는 데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여러 면에서 미흡한 점도 있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세계 지식인의 흐름과 동향에 대해 지도를 그리고자 했고, 그려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우리 내부의 지적 역량이나 축적, 나아가 한계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던 점도 의미가 있겠지요.

김성기 우리 지식계의 '칸막이' 현상을 절로 돌아보게 했다는 점이죠.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문화와 지식의 창'이란 게 너무 편협하고 특히 지적 촉수가 미국과 유럽권에 쏠려 있다는 문제가 드러났지요. 또 하나, 이런 기획이 언론사에서 추진되기 전에 학계 내부에서 먼저 공동의 지적 의제로 제출되지 못했다는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든 두고두고 반성할 대목이지요.

김상환 제 동료인 김기현 교수가 대니얼 데닛과 인공지능에 대해서 썼는데, 기사가 나간 후 여러 군데에서 문의 전화가 왔다고 그래요. 이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다는 것을 넘어 같은 관심을 갖는 전문가들끼리 서로 연락하고 연대하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연재에서 신생 학문이나 영역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이런 분야일수록 그런 효과가 컸으리라 봅니다.

정과리 무엇보다도 지식인들의 다양성과 넓은 폭은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 개안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바깥의 학문을 섭취하는 작업에서 너무 편식해 오지 않았는가 하는 자성이 저절로 듭니다. 게다가 언뜻 보기에 엇비슷한 지식 동향들 속에 있는 미세한 차이가 세계관의 근본적 차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삶의 현장과 구체성의 문제로 귀착합니다.

한국 지식인들에게 세계 지식인들이 중요하다면 바로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고뇌하면서 자신만의 이론 체계를 세워나간 치열한 과정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지식은 우리에게 주입적으로 전수될 것이 아니라, 유비(類比)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인 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 pp. 430 ~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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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20세기에 대한 거역
서구의 야만 사회를 비판하는 언어학자이자 행동하는 양심인 촘스키를 필두로 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미완이라고 보는 캘리니코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억압하고 지배하기 위해 서양이 가공한 것임을 폭로한 반오리엔탈리즘의 사이드, 과학의 객관성은 오래된 허구라고 보는 사회구성주의자들을 비롯한 전통적 과학관의 반역자들, 아버지라 여긴 서구 문화를 해체하고 주체적인 문학을 이루고자 했던 중남미 작가들, 진정한 성(性) 평등은 차이에 대한 인정이라고 보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이리가레 등이 소개되었다. 제1부 <20세기에 대한 거역>은 서구적 근대에 내장된 타자화의 메커니즘, 배제와 차별의 논리를 드러내서 비판,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그려본 것이다. 결국 21세기의 저항과 운동도 이런 흐름의 연장에서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제2부 세계화의 도전과 응전
제2부에서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기본틀로 세계체제를 창안해 낸 월러스틴, 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 역사는 끝났다고 보는 후쿠야마, 반세계화의 사령탑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자유 무역이 '규모의 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국제 무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위대한 폭로자' 폴 크루그먼, 네트워크 시대 금융자본주의의 제왕 소로스, 다국적 투기 자본을 제지하고 있으며 세계화 추세에 변수(變數)로 작용하고 있는 NGO, 다국적 연구집단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거대 과학의 기수들, 사이버 시대에 넷(net)으로 서구와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는 혁명가 마르코스 등을 소개하였다. 1970년대 이후 전 지구적 사회 변동을 판독하는 키워드가 된 '세계화' 깃발을 의기양양 쳐들고 있는 자들과 반세계화의 역풍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식인들인 것이다.

제3부 기로에 선 모더니티
민중의 일상을 역사학의 대상으로 끌어들여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을 연《고양이 대학살》의 저자 로버트 단턴, 데리다 사단의 제2세대 해체론자들인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성찰적 근대화》의 공동 저자로서 '성찰적 근대화론'의 기수들인 벡, 기든스, 래쉬, 라캉의 정신분석학으로 대중문화를 새로 읽은 지젝, 서구가 소외시킨 타자(他者) 즉 여성, 하층민 등에게 귀기울이고 말을 걸며 서구 배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스피박, 기능성 중심에서 인간 위주의 건축을 꾀하고 있는 벤투리, 젱크스 등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기수들, 결정론적 세계관에 마침표를 찍고 혼돈에 숨어 있는 규칙성을 발견한 카오스와 복잡계 과학의 선구자들이 제3부에 소개된 지식인들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서구 중심으로 완성된 '근대적인 가치관'인 모더니티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불신이 거세지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고, 이를 극복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였다. 제3부는 세계의 지식인들이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학문 세계를 구축하고 세계화 시대를 해석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제4부 새로운 환경을 위하여
사회생물학, 지식통합론 등 도발적 이론으로 논쟁을 촉발하며, 자연친화사상 즉 바이오필리아 가설을 내세운《개미》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 '생태적 효율 혁명'으로 지구의 환경 위기에 대안을 제시한 독일의 환경정치가 바이츠제커, 해마다 지구의 건강을 진단하여《지구 환경 보고서》를 내놓고 있는 월드워치 연구소의 사령관 레스터 브라운, 남성중심적인 과학이 어머니인 대지를 죽였다고 폭로하고 고발하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생태여성주의자 반다나 시바 등이 제4부에 소개되었다. 여기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연에 대한 변형력이 증대함에 따라 야기된 생태계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오늘날 지식인들의 핵심 화두로 자리잡은 환경사상의 다양한 기원과 여러 갈래의 분파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제5부 21세기의 억압과 해방
흑인 문화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탐색한 흑인 문학의 대모 토니 모리슨, 공동체를 떠나서 개인의 자유는 없다고 본 '공동체주의'의 두 축 테일러와 매킨타이어, 다중(多衆)의 자율적 힘이 세계를 바꾼다는 자율주의 정치철학자이자《제국》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 차별 없는 사회를 향한 길고도 먼 도정에 서 있는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 아메리카의 정복에서 시작된 유럽의 근대성을 폭로하고 타자를 포용하는 트랜스모더니티를 주장하는 엔리케 두셀, 경제가 진화할수록 인간은 퇴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현대 산업문명을 비판하며 경제적 수축을 강조하는 이반 일리치 등이 제5부에 소개되었다. 여기에서 21세기에 억압은 무엇이며 해방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6부 문화와 예술의 새 천지
네트워크의 정보 시대를 탐구 영역으로 삼아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열고 있는 성찰적 정보사회론자 마누엘 카스텔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예술가의 영감과 공학자의 기술이 만나 첨단 예술을 실험하고 탄생시키고 있는 미래 예술의 산실 MIT 미디어 랩, 단순 음계를 반복하여 클래식 문법을 비웃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기수 스티브 라이히, 문화는 삶의 해석을 둘러싼 투쟁의 장(場)이라는 '문화 연구'의 대부 스튜어트 홀 등이 제6부에 소개되었다.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조작 가능한 매체를 일상으로 접하는 시대에 문화·예술·지식계에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경향과 시도, 지식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제7부 새로운 정신과 물질 공간의 전개
인류의 미래를 바꿀 '10억 분의 1m 세계'인 나노테크놀로지의 개척자 리처드 스몰리, 현실 저 너머의 진리와 환상을 그린 환상 문학의 최고봉 어슐라 르 귄, 마음의 작동 원리가 컴퓨터와 같다는 인지과학의 선구자이자 급진적 심리철학자인 대니얼 데닛, 외골수 벤처 정신으로 인간의 지놈 지도를 작성한 크레이그 벤터, 라캉의 제자이자 주체적 욕망으로 정신분석학의 새 지평을 연 자크 알랭 밀레, 인종이나 젠더의 경계를 무너뜨릴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 사이보그가 미래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 테크노사이언스의 여전사 도나 해러웨이 등이 제7부에 소개되었다. 물리학이 대세인 상태에서 시작된 20세기 과학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상징하듯이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에서 물질 공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았다. 또한 20세기 후반의 정보화 물결은 디지털에 의한 가상 공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공간들의 착종하는 다면체를 탐색하는 일들은 21세기 지식의 방향을 예측하는 데 불가결하다. 제7부에서 그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제8부 새로운 21세기를 향하여
제8부에서 첫 번째로는 가까운 미래의 지적 풍토에 대한 한 자유주의자의 전망으로 소설가 복거일의 글을 실었다. 그는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자유주의가 대세일 것이라고 '가까운 미래의 지적 풍토'를 전망하였다. 두 번째에는 서구 편향을 벗어나 아시아를 보고자 하는 '주변부의 시선'들 즉 아시아문화연구라는 지식인 네트워크를 주목하여 소개하였다. 다른 부에 비해 짧게도 두 편의 글이 실렸으나 21세기의 미래를 전망하며 '지금, 여기'의 우리가 할 일과 갈 길을 모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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