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어린이책을 쓰고 있습니다. 어디가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봐주고 인정해 주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 덕분에 데구르르르 더디지만 꾸준히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나랑 밥 먹을 사람][밤을 지키는 사람들][세 발 두꺼비와 황금 동전][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어 봐][화내기 싫어][거짓말이 찰싹 달라붙었어] 등을 썼습니다.
그림 : 허구
1957년 경기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습니다. 광고와 홍보에 관련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선과 밝은 색감으로,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습니다. [아기 민들레의 꿈][아빠하고 나하고][처음 받은 상장][용구 삼촌][기억 속의 들꽃][말하는 까만 돌][수요일의 눈물]을 비롯한 많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옆으로 조금만. 그래, 조금, 조금, 조금만 더! 지금이야!” 그 순간 그 애가 나한테 달라붙었어, 찰싹!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 애는 소리쳤지. “출발!” 멍하니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움직이기 시작했어. 어쩐지 몸이 가뿐해진 느낌이 들었어. 힘을 내서 굴러 보았어. 아까처럼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어떻게 된 거야?” “말했잖아. 난 한번 달라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그 애가 씩 웃었어. 내 몸에 난 구멍에 딱 달라붙은 채 말이야. --- p.51
“검정 비닐봉지야, 고마워! 검정 비닐봉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어. 우리는 데구르르르 다가갔어. 검정 비닐봉지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지. 우리는 검정 비닐봉지가 쑥스러워서 그러는 줄 알았어. 그래서 있는 힘껏 굴러가서 검정 비닐봉지를 꽉 끌어안아 주었지. “으악!” 갑자기 검정 비닐봉지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어. 그제야 검정 비닐봉지가 쑥스러워한 게 아니란 걸 알았지. 하지만 이미 늦었어. 정신을 차렸을 땐 껌딱지가 검정 비닐봉지에 달라붙은 뒤였거든. 그러니까 우리 셋은 서로 딱 달라붙어 버린 거야. --- p.65
“와, 껌딱지가 난다!” 조그만 껌딱지의 몸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가 터져 나왔어. 나도 질세라 목청껏 소리쳤어. “봐라, 바람 빠진 공 날아간다!” 내 목소리가 바람을 가르고 뻗어 나갔어. 바람 빠진 공은 다시는 하늘을 날 수 없을 줄 알았어. 하지만 나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어. --- p.80-81
혼자서는 날 수 없었을 거야. 셋이니까 낭떠러지도 무섭지 않은 거야. 우리는 더 세게 딱 달라붙었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도록!
이삿짐 트럭에서 노란 공 하나가 떨어진다. 떨어질 때의 충격 때문인지 공은 자기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암탉은 공을 보고 알이라 하고, 들쥐는 열매라 하고, 두꺼비는 달이라 하고, 두더지는 두더지 신붓감이라 하고······. 그러다 우연히 하늘로 튀어 오른 공은 마침내 자신이 ‘공’이라는 기억을 떠올린다. 이후 공은 신이 나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우연히 껌딱지를 옆구리에 붙인다. 또 껌딱지 때문에 한쪽 손잡이가 떨어진 검정 비닐봉지마저 딱 붙어 버린다. 한 몸이 된 셋은 어쩔 수 없이 함께 굴러다닌다. 앞으로 이들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