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범죄는 테러와 같다. 두려움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고 피해자를 만들며, 주위 사람들은 ‘관객’이 되어 두려움에 떤다. 그렇게 탄생한 공포의 폭심지에서 범죄는 파괴력을 더하고 사회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파괴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진화하는 범죄에 대한 무지’다. 범죄를 모르면 피해를 입고도 자기가 피해자인 줄 모른다. 범죄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한편으로는 범죄의 가면을 벗겨서 피해를 사전에 차단할 계기를 만들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서문 ‘두려움의 폭심지’」중에서
우리나라의 살인 피해자 10명 가운데 6명은 자신과 잘 아는 사람에게 피살된 경우다. 모르는 사람에게 당한 경우는 5명 가운데 1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아는 사람 중에는 가족을 포함한 친족이 가장 많다. 살인 피해자 4명 가운데 1명은 친족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경우 다. 2014년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2.5%가 최근 1년간 가족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조사대상의 3분의 1 정도가 가족갈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무려 57%가 친족에 의한 살인이고, 단 12%만이 전혀 모른 사람에 의한 살인이다.
---「살인자는 왜 친근한 얼굴일까?」중에서
군대 성폭력 문제는 얼마나 심각할까? ‘눈덩이 표집’이 라는 방식을 통해 성폭력의 눈덩이를 굴려보면 실로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여군은 10%만 신고하겠다고 대답한 반면에 남성은 97%
이상이 신고하거나 대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허상이다. 실제로 대응한 사람은 20%에도 못 미쳤고 대응해도 처벌받은 이는 없었다. 이 사례에서 도움을 청한 사병은 실제로 구제를 받지 못했다.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고, 보복을 당하거나 전출을 당했다. 신고를 할 수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두려움이 있었다. 성폭력에 대응했던 이들이 어떻게 보복을 당하는지 직접 목격했던 경험이다.
언론에 드러난 사건들 외에 보편적으로 군에서 신고된 성범죄 사건 중에는 가해자가 처벌받은 사건도, 피해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은 사건도 없다. 이런 사건은 대부분 종결되거나 가해자에 대한 징계 수준으로 마무리된다.
---「빙산의 일각, 군대 성폭력」중에서
부모의 폭력에 넌더리를 치면서도 은연중에 폭력과 지배의 메커니즘을 철저히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왕따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바로 원초적인 지배의식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더 힘세다는 사실, 자신이 누군가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마음속에 쌓여 있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비겁한 행위인 것이다. 2016년 1월 17일 ‘초등학생 시신 훼손 사건’으로 구속된 최모 씨도 자신이 과거 아버지로부터 심한 폭력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만 보더라도 부모의 폭력은 학습효과를 초래해 결국 대물림되는 악순환을 낳는 것이다.
---「학교폭력의 비겁한 가해자들」중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사법원을 거쳐 엄격한 처벌을 받은 소년범들의 재범률은 오히려 높았음을 보고했다. 한마디로 엄벌을 이용한 재범 억제 제도는 실패했다. 플로리다대학 연구팀은 이송된
소년 범죄자들이 이전에 범한 범죄 유형에 따라 재범률이 다르다고 보고했다. 마약·강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들은 형사이송된 경우 재범률도 높고 차후 재범까지 걸리는 시간도 매우 짧게 단축되었다.
---「미디어가 낳은 청소년 범죄의 진실」중에서
실상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첨단장비들은 기업의 간접광고(PPL)다. 기업은 [CSI]를 통해 전 세계의 경찰청에 자사의 첨단 수사 장비를 사라고 광고하는 것이다. 물론 첨단장비를 갖추면 없는 것보다 좋겠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경찰에서 과학수사대의 예산 배정은 하위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CSI: 라스베가스]의 주인공 길 그리섬을 연기한 배우 윌리엄 피터슨은 미 상원법사위에서 미국 과학수사대가 드라마와 달리 적은 예산과 부실한 장비로 고생하고 있다는 내용의 연설을 한 바 있다.
---「[CSI], 법정에 과학수사의 환상을 심다」중에서
아동 음란물 유통과 소비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미국, 영국, 우리나라 가릴 것 없이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동 음란물은 범람하고 좀체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우선 아동 음란물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경우다. 일종의 중독인 셈이다. 단속과 처벌이 강화됐음에도 끊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심한 경우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치료를 받기 전까지 고치기 어렵다. 사실 동영상이 존재하지 않던 수백 년 전에도 아동 대상 성범죄가 심각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동 음란물이 아동 대상 성범죄의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아동에 대한 성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동을 인격적 주체로 인식하지 않고 성적 대상이나 노리개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동 음란물은 왜 못 막을까?」중에서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죽인 아내에게는 “왜 이혼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하고, 아내를 때리다가 결국 살해까지 한 남편과 그의 손에 죽은 아내에게는 “신고나 이혼을 하지 않고 가정폭력을 인내해온 여성의 처신은 곧 헌신”이라 표현하고 있다. 피해 도망치지 않았느냐”고 묻지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떠나면 그가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 정도다. 실제로 아내가 살해당할 확률은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함께 살 때보다 헤어져 있을 때 가 훨씬 높다.
---「가정폭력과 밤의 비극」중에서
데이트폭력은 가정폭력과 매우 유사하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피해자는 자기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한 쪽은 나니까’같이 전형적인 가정폭력 피해자의 왜곡된 사고를 하기도 한다. 그들이 경험하는 데이트폭력은 유사했다. 조사에 응한 남학생의 30%가 여자친구에게 언어적·심리적 학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멀쩡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아니라 악마, 데이트폭력」중에서
2011년 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는 국내에서 낙태 시술은 가출청소년이나 미혼모가 아닌 정상적인 부부들에 의해 가장 많이 이루어진다고 밝혔다.22 의료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이들의 아이는 영아살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부부는 아이를 포기해야 할 때 영아살해가 아니라 의료제도를 활용하고 있었다. 즉, 의료제도를 활용할 수 없는 이들이나 가족제도나 복지제도에 기댈 수 없는 이들이 영아살해범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자. 영아살해, 누가 아이를 죽였고 누가 방조했는가?
---「영아살해,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중에서
범죄학 수업을 진행하면서 종종 학생들에게 교도소를 디자인 해보는 과제를 내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교도소가 아니라 ‘감옥’을 그려 온다. 교도소는 차갑고 엄격해야 하기에 감시하고 가두는 기능을 주요 콘셉트로 잡는다. 교도소를 너무 살기 좋게 만들면 범죄자들이 또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하지만 필자는 교도소가 더욱 차갑고 혹독한 곳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사회가 더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교도소가 아무리 좋아져도 우리의 사회의 일상 수준을 감히 넘어서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들이 빨리 사회에 나오고 싶고, 감옥이 아닌 사회에서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날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에필로그 ‘어느 아침, 범죄자와의 조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