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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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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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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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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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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20.0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4.5만자, 약 8만 단어, A4 약 154쪽?
ISBN13 9788937838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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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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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싹할 정도로 똑같았다. 무늬 벽지와 삐걱거리는 바닥으로 이루어진 방이 마치 바깥세상으로부터 차단된 무덤 같았다. 우리는 함께 거기 있었고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가 내 떨리는 손에 코냑 담긴 양치 컵을 들려주었고 자기는 병째 마셨다. 그러고는 내 목소리처럼 불안정한 소리로 “내가 당신 옷을 입고 당신이 내 옷을 입어야 할까요?”라고 말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바닥에 쓰러질 때 둘 중 한 사람은 큰 소리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 p.34

나는 충동적으로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후 내려서 정적 속에 잠시 서 있었다. 뒤쪽으로 해가 지면서 하늘이 검붉게 물들었고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땅을 최초로 탐험하는 누구라 해도 그 텅 빈 길에 선 나보다 더 고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적이 땅에서 올라왔다. 오랜 세월이, 백만 년의 시간이, 그 위에서 벌어진 역사가, 그 땅에서 먹고살다 죽은 사람들이 쌓여 만들어진 정적이었다. 그 어떤 생각이나 말, 행동으로도 땅의 정적을 깰 수 없었다. 그곳, 내 발밑과 내 주변에 본질이 있었다. 그 한순간 나는 내 고통과 의혹, 좌절에 대한 답에 접근했다. 내면의 충동을 따라 트라피스트 대수도원을 향해 북쪽으로 차를 몰아가는 것보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펼쳐진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 해답에 훨씬 더 가까웠다. --- p.46~47

“약인데. 엘릭시르래.” 아이는 큰 소리로 설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인체 기관의 기능을 높임. 발기부전을 해결하는 호르몬 약제. 발기부전이 뭐야, 아빠?”
더 이상 읽지 못하도록 폴이 약병을 낚아챘다. “자, 이리 주고 조용히 하렴.” 폴은 약병을 윗옷 주머니에 넣고 격분한 얼굴을 내게 돌렸다. “이게 장난이라면 나한테는 전혀 재미가 없는걸.”
그는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간담 서늘한 침묵이 식당에 가득 찼다. --- p.131~132

내가 밤 인사를 하러 갔을 때 프랑수아즈는 책을 읽다가 창백하고 무심한 뺨을 내 쪽으로 돌렸다. 나는 다시금 안도감보다는 죄의식을 느꼈다. 장 드게의 죄가 희생양 덕분에 열 배나 늘어나버렸다는 죄책감이었다. --- p.188

“무엇을 했냐고요? 아무것도 안 했답니다. 동료 병사들과 몇 달 동안 주둔했던 게 다예요. 하루는 문제가 생겼지요.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군복에 얼룩이 있었거든요. 저한테 찾아와 손짓 발짓으로 얼룩을 지워줄 수 있는지 묻더군요. 안 그러면 처벌을 받게 된다고요. 므시외 장, 전 제 두 아들을 생각했답니다. 앙드레는 포로였고 알베르는 전사한 상태였지요. 딱 그 또래 아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엄마뻘 되는 저한테 옷 얼룩을 지워달라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해줬지요. 나중에 다시 찾아와 고맙다면서 이 사진을 줬어요. 그 아이가 독일인이든 일본인이든 달나라에서 왔든 저한테는 아무 차이가 없었어요. 그 아이는 나중에 결국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요. 그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처럼 그렇게 죽으려고 태어났던 것이죠. 하지만 제가 그 아이 군복을 빨아주었다는 이유로 생질 시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2년 동안이나 저한테 한 마디도 하지 않더군요. 아시겠습니까, 전쟁이 내가 사는 마을로, 내 집 앞으로 오게 되면 그건 더 이상 객관적인 비극이 아니에요. 사적인 원한을 풀어낼 구실일 뿐이지요. 전 그래서 열렬한 애국자가 아닙니다. 점령기 때 생질 일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 p.269~270

내 시간은 꿈속의 꿈과도 같았다. 나는 벨러의 세계에도, 나를 기다리는 세계에도 속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벨러가 간밤에 안았던 연인은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였고 가스통이 모시는 주인은 그의 환상 속에만 살아가는 유령이었다. --- p.343

“그게 시작이 아니면 좋겠어.” 아이가 말했다.
“무엇의 시작 말이니?” 내가 물었다.
“내 불길한 꿈의 시작.” 담요를 옆으로 밀어놓고 아이가 일어서더니 코트의 먼지를 떨고 자기 손을 내 손안에 넣었다. “성모님이 우리 모두를 걱정하고 계셔. 성모님 말씀이 할머니는 엄마가 죽기를 바란대. 꿈속에서 나 역시 그랬어. 아빠도 그랬고. 우리 다 죄인이었다고. 아주 악한 일이었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 p.367~368

나는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할 수는 없었다. 희생양으로서 나는 그저 잘못을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 p.451

아이는 여전히 완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좋으신 하느님은 모든 것을 가장 좋게 만들어주시지. 하지만 때로는 사탄이 자신을 숨기고 우리를 유혹하곤 해. 『마태오의 복음서』에도 자기 앞에 절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는 사탄이 나오잖아.”
전화벨 소리가 그쳤다. 가스통이 전화를 받은 것이다. 잠시 후 그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러니까,” 마리노엘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걸 누가 주었는지 제대로 구별하는 게 중요해. 하느님 아니면 사탄인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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