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갓난이는 속말까지 다 듣고 안다. 예쁜 것은 원래 예쁜 짓만 하고 미운 놈은 미운 짓거리만 한다. 그리고 은재는 원래 예쁘다. 집이 좁아야 사이좋게 잘살다가 나중에 마음도 넓어지고 사는 집도 또 넓어진다. 힘들게 세상에 나온 것이 원래 더 큰 복덩이인 법이다. 복덩이가 우리한테 왔다.---「외할머니가 된 어머니」
염색체라는 건 참 신비하지. 어쩌다 하나가 더 많은 것일까. 그것으로 인하여 은재의 눈꼬리는 곱게 올라가고 은재의 코는 귀엽게 가라앉고 은재의 성격은 순하고 맑아졌으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동시에, 따로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당신과 나는 어쩌다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어쩌다 우연히 인문대 1호관 복도에서 마주치게 되었을까. 어쩌다 순하고 맑은 당신을 내가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런 온전한 행운이 가능이나 한 이야기일까.
시인 아빠 효인이가 다운 소녀 은재를 얻고 기록한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짠했다.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내며 아, 삶은 이렇게 기이하고도 슬프다가 결국은 아름다워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독일에 살고 있는데,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나라에 장애우가 이렇게 많다는 것이 참 의아했었다. 거리에서 인도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는 맹인들, 휠체어를 탄 채 씩씩하게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하반신 마비인 청년, 빵가게에서 빵을 사고 있는 다운 소녀들…… 독일인들은 장애우를 사회의 한구석으로 쫓아내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장애우를 껴안고 함께 살아간다. 물론 그 배경에는 장애우를 분류해서 살인했던 나치 시절의 끔찍한 경험에 대한 반성이 앞서 놓여 있을 것이다. 그후로 나는 장애우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이 나라 이 사회 이 거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이 사회에 살 권리가 보장되겠다는 안심과 함께. 엘리자는 내 독일인 친구다. 이제 스물한 살이 된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때가 열한 살이었으니 10년 지기인 셈이다. 그녀도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얼마 전 내 생일에 그녀가 전화를 했다. “건강하고 행복해. 그리고 마음 단단하게 먹고 잘 들어. 나, 오늘 너를 보러 못 가. 슬프겠지만 꿋꿋하게 생일 보내. 나, 오늘 춤 연습 하러 가야 해.” 거의 1년을 엘리자는 그녀와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 위해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엘리자의 말대로 그녀가 오지 못해 슬펐지만 나는 꿋꿋하게 생일을 보냈다. 기이하고도 슬프다가 결국은 아름다워질 수도 인생이여. 허수경(시인)
이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효인의 딸인 은재가 참으로 부럽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어떤 여인이 아직 글자도 읽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이토록 근사한 편지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다음으로 효인의 아내가 부러웠다. 이 글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녀의 남편보다 좋은 사내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좋은 글을 써낼 수 있는 필력을 지닌 효인이 부러웠다. 우리는 고등학교 친구로 처음 만났고 세월이 흘러 글을 쓰는 동료로 다시 만났다. 열여덟의 효인은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로 운동장에 서 있었는데 서른의 효인은 포수 글러브를 끼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골키퍼와 포수. 그것이 주는 이미지가 딱 서효인이다. 누군가 내게 효인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골대를 지켜내며 날아오는 공을 척척 받아내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 글을 읽기 전엔 효인이 이렇게 괜찮은 친구인지 잘 몰랐다. 은재의 아버지가 됨으로써 더 근사한 남자가 된 것이다. 초보 부모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아이가 생긴다고 해서 모두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아이를 어떻게든 키우겠다고 다짐하며 매일을 살기로 작정하는 이들만이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와 고민으로 아들과 딸에게 “잘 왔어!”라고 말해주지 못한 이들에게 이 책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삶의 지침서가 될 것이다. 효인은 이 글을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딸은 이 반성문을 세상에 없는 러브레터로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 반성문을 세상에 없는 최고의 시집으로 기억할 것이다. 정용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