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것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성장담이다.
한 여자아이가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얼마나 엄마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그리고 다른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감탄하게 되는지, 그런 아름다움의 가능성이 나에게도 있는지 거울을 비춰보게 되고, 다른 여자 아이를 아기처럼 돌보는 일에 얼마나 만족감을 느끼는지, 그렇게 돌봄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그 아이를 돌보기 위해 얼마나 강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사납게 싸울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쓰고 싶었다.
---「작가의 말_정서경」중에서
그래도 따지고 보면 나란 놈은 정말이지 운도 좋지 뭔가, 팬들이 그 모든 어려움을 뚫고 〈아가씨〉에게 와주었잖아. 그래....그랬기 때문에 〈아가씨〉가 새롭게 태어나게 된 건 맞다. 모름지기 영화란 관객 하나하나와의 사적인 만남을 통해 무수히 새로 태어나는 법이 아니던가. 나는 참 행복하다, 감독이란 뭐니 뭐니 해도 손님들이 영화에서 좋은 냄새 난다고 그럴 때가 제일로 기쁜 법이니까. 나는 뿌듯하다, 〈아가씨〉는 내 아기씨니까. 그리고 또 나는 든든하다, 이렇게 〈아가씨〉를 사랑하는 이들이 〈아가씨〉를 지켜줄 힘까지 가졌으니까.
---「작가의 말_박찬욱」중에서
숙희
왜 그러세요?
히데코
입안이 자꾸 베여....이 하나가 뾰족한가봐.
숙희, 양손으로 히데코의 얼굴을 감싸쥐고 들여다본다. 간유리를 통해 희미한 햇빛이 들어올 뿐이지만 히데코의 벌어진 입안에 분홍빛 혀와 흰 이들은 잘 보인다. 손가락을 넣어 하나씩 만져보더니 재빨리 욕실 밖으로 뛰어나간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히데코. 또 뛰어서 돌아오는 숙희, 은제 골무를 보여주며 자기 입을 벌려 보인다. 따라하는 히데코, 골무 낀 손가락을 집어넣어 이를 갈기 시작하는 숙희. 사각사각. 처음에는 눈을 감고 있더니 어느새 숙희를 보는 히데코, 뺨이 붉게 물든다. 덩달아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숙희, 정신을 딴 데 팔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 향을 음미한다. 오히려 취할 듯 감미롭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숙희.
숙희
이 냄새였구나....
---「22. 히데코 욕실 (낮)’ 중에서
- 낮. 백작이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서재로 걸어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히데코. 하녀 둘이 지나가다가 백작과 마주치자 꾸벅 인사한다. 엇갈려 지나간 다음 백작 뒷모습을 돌아보며 수군대고 입을 가리고 웃는 하녀들.
숙희
가짜 백작이 가짜 책을 만들러 간다.
(창가에 서서 내려다보는 히데코를 관찰하는 숙희)
아가씨는 창밖을 보고, 난 아가씨를 보고....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가엾고도 가엾고나....가짜한테 맘을 뺏기다니....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는 히데코의 하얀 이마에 빨간 동그라미, 유리에 눌린 자국이다.
---「36. 히데코 방 + 후원 (아침 - 낮)」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