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K. 체스터튼
1874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삽화가가 되려는 꿈을 품고 슬레이드 예술학교에 들어갔으나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다. [스피커], [북맨], [데일리뉴스] 같은 당대의 간행물에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와 문학비평, 사회비평을 발표해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시, 희곡, 전기,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글을 왕성하게 썼다. 힐레어 벨록과 함께 대안적 정치 주간지 [아이 위트니스]를 발간했으며 가톨릭 사회 교설을 바탕으로, 사유재산제를 인정하되 자본의 집중과 무절제한 축적을 규제하자는 분배주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32년부터 BBC 라디오 방송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1936년 울혈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방송을 계속했다. 근래에는 브라운 신부를 주인공으로 한 탐정소설 ‘브라운 신부 연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도로시 세이어즈
1893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고 출판사와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이후 피터 윔지 경이 등장하는 탐정소설 연작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시, 비평, 희곡,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저술을 남겼다. 말년에는 단테의 『신곡』을 생동감 넘치는 구어체 영어로 옮기는 일에 몰두했으며 ‘지옥’과 ‘연옥’ 편을 마쳤으나 ‘천국’ 편을 마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피터 윔지 탐정소설 연작을 비롯해 산문집 『창조자의 마음』, 『여자는 사람인가』, 『왜 일하는가』 등이 있다. [용서]는 세이어즈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신문에 기고하기 위해 쓴 글이었으나 (‘멈출 수 없는 증오를 기독교 신학으로 정당화해주기를 원했던’ 편집자의 의도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고 훗날 세이어즈의 에세이를 모은 『인기 없는 생각들』에 수록되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박사와 하이드』, 『보물섬』, 『유괴』로 널리 알려진 19세기 스코틀랜드 작가이다. 1850년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등대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에든버러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하다가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지만 변호사 개업은 하지 않고 어릴 적 꿈꾸던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습작 시절에 찰스 램과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를 따라 쓰며 글 쓰는 법을 배웠다. 『내륙여행』, 『당나귀와 함께 한 세벤느 여행』, 『남쪽 바다에서』 등 소설 못지않게 많은 여행기와 에세이를 남겼다.
로버트 바이런
영국의 여행 작가로 아토스산, 인도, 소련, 티베트 등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며 『역』(1928), 『처음은 러시아, 그다음은 티베트』(1933) 등의 여행기를 썼다. 특히 베이루트와 예루살렘을 거쳐 옥시아나에 이른 여행담을 담은 『옥시아나 가는 길』(1937)은 유적지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지역 사람들과의 만남을 생생하게 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국의 문학사가 폴 푸셀은 “양차 대전 사이에 『율리시즈』가 소설에서 이룬 것과 [황무지]가 시에서 이룬 것을 『옥시아나 가는 길』은 여행기에서 이루었다”고 평했다. 바이런은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신문사 통신원으로 활동하던 중 타고 있던 배가 독일 잠수함 유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아 북대서양에서 침몰하여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리처드 라이트
1908년 미시시피에서 노예의 손자이자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정식 교육은 9학년까지밖에 받지 못했고 접시닦이, 배달원, 안경 공장 급사 등으로 일했다. 책을 무척 좋아했지만 당시 미시시피에서는 흑인의 도서관 이용이 금지돼 있어서 백인 동료의 심부름을 가장해 책을 빌려 탐독했다. 1938년 첫 단편소설집 『엉클 톰의 아이들』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1940년 미국 흑인 하층민의 삶과 내면을 그린 『미국의 아들』을 썼다. 『미국의 아들』은 미국 흑인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이후 자서전 『깜둥이 소년』과 소설 『국외자』를 비롯해 많은 시와 에세이를 썼다. 국외거주자로 체류하던 파리에서 1960년 세상을 떠났다.
마저리 키넌 롤링스
미국의 작가로 플로리다의 시골 지방에 살면서 시골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다. 『아기 사슴 플랙』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작가의 사후에 발견된 작품인 『비밀의 강』으로 뉴베리 아너상을 받았다. 삼십대에 플로리다의 아주 작은 마을 크로스크릭으로 이주해 작은 오렌지 농장을 일구며 마을의 자연과 사람들을 그린 에세이집 『크로스크릭』을 발표했다.
마크 트웨인
1835년 미주리 플로리다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잃고 열세 살부터 인쇄소 견습공으로 일했으며 열다섯 살부터 형의 신문사에서 인쇄공과 편집보조로 일하며 글쓰기에 흥미를 느꼈다. 1857년부터 미시시피강에서 도선사로 일했으나 남북전쟁으로 증기선 무역이 중단되자 남부군에 잠시 있다가 일확천금을 꿈꾸며 네바다의 금광으로 떠났지만 실패했다. 1865년에 단편소설 [짐 스마일리와 뜀뛰기 개구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명성을 얻었다. 이후 『허클베리 핀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을 비롯해 많은 소설을 썼고 여행기, 문학 비평, 사회 평론, 정치 평론 등 다양한 에세이를 왕성하게 썼다. 헤밍웨이는 모든 미국 문학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나왔다고 평했다.
맥스 비어봄
영국의 풍자 화가이자 언론인, 작가이다.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 런던의 여러 출판물에 풍자화와 글을 기고하여 호평을 받았다. 훗날 조지 버나드 쇼의 뒤를 이어 [더 새터데이 리뷰]지에 연극 비평을 쓰며 14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고 1935년부터 B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소설 『줄라이카 돕슨』과 단편소설집 『일곱 명의 남자』를 발표하기도 했으나 주로 에세이에 집중했다. 친근한 목소리로 친구처럼 이야기하는듯한 에세이로 당대에 열성적인 독자를 거느리며 ‘비할 데 없는 맥스’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니스트 리스의 에세이 선집 『현대 영국 에세이: 1870~1920』에 대한 서평인 [현대 에세이]에서 그의 에세이를 언급하며 비어봄을 에세이의 ‘왕자’라 표현했다.
메리 헌터 오스틴
1868년 일리노이, 칼린빌에서 태어났다. 책을 좋아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나 열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얼마 뒤 가장 가까웠던 언니까지 잃고 나서 글을 쓰며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다. 스무 살 때 농장을 일구기 위해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이주했다. 모하비 사막을 사랑하여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등을 돌아다니며 아메리카 원주민의 시와 민담을 채집하며 지역의 사람과 자연을 묘사한 글과 여자들의 삶을 다룬 글을 주로 썼다. 1903년 모하비 사막과 아메리칸 원주민의 삶을 그린 『비가 드문 땅』을 시작으로 32권의 책과 150편의 글을 남겼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비가 드문 땅』, 『사라진 경계』, 『바구니 여인』 등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
1882년 런던에서 작가이자 비평가 레슬리 스티븐의 딸로 태어났다. 정식 교육은 받지 않았고 아버지 서재의 책을 두루 읽으며 독서와 글쓰기를 익혔다. 1905년 [더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글을 쓰기 시작해 500편이 넘는 방대하고 다양한 에세이와 비평을 남겼다. 문예 비평지뿐 아니라 [보그]와 [애틀랜틱 먼슬리] 같은 대중적인 잡지, [타임앤타이드] 같은 페미니스트 잡지에도 글을 썼다. 정치평론가인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여 호거스 출판사를 함께 운영했으며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알도 레오폴드
1887년 아이오와, 버링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밖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연을 관찰하며 기록하는 일을 즐겼다. 예일대에서 삼림학을 공부했고 미국 삼림청에서 일하며 야생 보존 지역 지정을 위해 힘썼으며 나중에 위스콘신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가르쳤다. 자연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 공동체로 여겨야 하며 우리는 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지 윤리’ 개념으로 현대 환경윤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후에 출판된 『모래 군의 열두 달』(1949)과 『둥근 강』(1953)은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깊이 있는 생태의식, 시적 이미지가 어우러진 산문집으로 레오폴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앨리스 메이넬
영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1875년 첫 시집 『서곡』을 냈고 이후 잡지 편집자로 활동하며 [스코츠 옵저버], [스펙테이터] 등 여러 잡지에 왕성하게 글을 기고했다. 정밀한 표현과 우아한 문체로 주목받았고 특히 1893년부터 1898년까지 [폴몰 가제트]지에 실은 주간 칼럼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말년에는 ‘여성 참정권을 위한 여성 작가 동맹’을 이끌며 글을 쓰고 연설을 하고 행진을 하며 여성 참정권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오스카 와일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시인. 작품으로는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희극 『원더미어 부인의 부채』, 『살로메』, 평론집 『의향』 등이 있다. 극작가로 명성과 경제적 여유를 얻기 전까지 [폴 몰 가제트], [드라마틱 리뷰], [스피커], [우먼스 월드] 같은 간행물에 많은 서평과 에세이를 기고했다. 극작가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1895년 동성연애 혐의로 기소되어 레딩 감옥에 2년간 수감되었고 출옥 후 프랑스에 머물던 중 사망했다. 레딩 감옥에서 쓴 편지를 묶은 『심연으로부터』가 사후에 출간되었다.
윌리엄 포크너
1897년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났다. 잠깐 여행을 떠나거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할리우드에 머물던 때 말고는 대개 고향에서 글을 썼으며 고향을 모델로 한 가상의 소읍 요크나파토파(Yoknapatawpha)를 배경으로 여러 작품을 썼다. 1949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이후 퓰리처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소리와 분노』, 『압살롬, 압살롬』,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8월의 빛』 등이 있고 1962년 마지막 소설 『도둑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임스 서버
미국의 삽화가이자 유머 작가로, 살아 있을 때 마크 트웨인 이후 미국 최고의 유머 작가라는 평을 들었다. 어릴 적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혼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상상력을 키웠다.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공부했으나 당시 필수과목이던 ROTC 과정을 시력 때문에 통과하지 못해 졸업은 하지 못했다. 지역신문인 [오하이오 디스패치]에서 책과 영화, 연극 기사를 쓰다가 뉴욕으로 옮겨 가[뉴욕 이브닝 포스트]의 기자로 활동했고 나중에는 [뉴요커]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저서로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과 『공중그네를 탄 중년남자』 등이 있다.
제임스 에이지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영화평론가이다. 1909년에 테네시, 녹스빌에서 출생했고 여섯 살에 교통사고로 우체국 직원이던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기숙학교를 거쳐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에이지는 1930년대와 40년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영화평론가 중 한 사람으로 [타임]과 [더 네이션]에 영화평을 썼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1936년에 사진가 워커 에반스와 함께 미국 남부 지역의 소작농 가족과 함께 머물며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제 유명인들을 찬양하자』(1941), 영화평을 모은 『에이지의 영화론』, 사후에 출간되어 퓰리처상을 수상한 자전적 소설 『가족의 죽음』(1957)이 있다. 1955년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녹스빌: 1915년 여름]은 아버지를 잃기 직전 어느 여름날 저녁을 회상한 글로 1933년 [파르티잔 리뷰]에 실렸다. 나중에 사후에 출간된 소설 『가족의 죽음』의 프롤로그로 쓰였으며 미국의 작곡가 새뮤얼 바버가 이 글의 일부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조지 오웰
1903년 인도 벵골에서 태어나 이듬해 영국으로 이주했다. 이튼 학교를 졸업했으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영국의 식민지이던 버마에서 제국 경찰로 5년을 복무했다.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낀 뒤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과 파리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글을 썼다. 1933년 첫 저서인 『런던과 파리의 노숙자들』을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고 이후 버마 경험으로 토대로 한 소설 『버마 시절』,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을 담은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으며 여러 잡지에 자신의 생생한 경험과 정치적 통찰이 담긴 글을 기고하며 잡지 편집인으로도 활동했다. 대표작인 『동물농장』과 『1984년』을 각각 1945년과 1949년에 발표했고 1950년 세상을 떠났다.
존 버로스
1837년 뉴욕주 캣스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일곱 살에 고향을 떠나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며 공부를 했다. 에머슨과 소로우의 글을 사랑했으며 1860년부터 [애틀랜틱 먼슬리]에 글을 쓰기 시작하여 새와 꽃, 숲을 소재로 100편이 넘는 자연 에세이를 남겼다. 1863년부터 십 년간 미국 재무부 통화부서에서 일한 뒤 고향 캣스킬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글을 쓰며 살았다.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자연 속의 삶을 감수성 있게 그린 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찰스 디킨스
1812년 영국 포츠머스에 태어났다. 채텀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열두 살 무렵 런던으로 이주했으나 아버지의 빚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약 만드는 공장에서 하루에 열 시간씩 일을 해야 했다. 이후 약간의 교육을 더 받은 뒤 열다섯 살에는 법률 사무소의 사환으로 일자리를 얻었고 속기술을 공부해 신문사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1834년 보즈라는 필명으로 [모닝 크로니클]지에 쓴 글로 인정을 받기 시작해 『올리버 트위스트』, 『데이비드 코퍼필드』,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소설가뿐 아니라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수백 편의 에세이를 썼고 편집자로 활동하며 다른 이가 쓴 수백 편의 에세이를 편집했으며 [매스터 험프리스 클락]과 [하우스홀드 워즈] 같은 주간지를 창간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특히 1859년부터 죽기 직전까지 편집했던 [올 더 이어 라운드]지에 실었던 에세이들은 런던의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친근한 어조로 그려내어 주목받았고 나중에 『비상업적 여행자』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케네스 그레이엄
1859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아이들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고 낮에는 잉글랜드 은행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글을 쓰며 잡지에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몸이 아픈 아들 알레스테어에게 들려주기 위해 지었던 두꺼비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20년 아들이 죽은 뒤 거의 글을 쓰지 않았고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토머스 드 퀸시
찰스 램, 윌리엄 해즐릿과 더불어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세이 작가로 꼽힌다. [런던 매거진]에 네 편으로 나뉘어 실렸던 자전적 기록인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몇 편의 단편소설과 소설, 데이비드 리카도의 경제이론에 대한 논문도 썼으나 무엇보다 문헌학부터 천문학, 고대사, 문학평론, 정치경제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의 에세이를 많이 남겼다. 독일 관념론 철학을 좋아하여 칸트의 글을 비롯해 독일의 낭만주의 소설을 번역하기도 했으며 스스로 ‘격정적 산문’이라 부른 정교하고 시적인 산문을 썼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낙원의 이편』, 『밤은 부드러워』 같은 소설을 남겼고 여러 잡지에 160편이 넘는 단편과 중편 소설을 썼다.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의 모습을 묘사한 『위대한 개츠비』로 명성을 얻었으나 이후 개인적 불행과 작품의 연이은 실패로 알코올에 빠져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40년 『마지막 거물』을 집필하다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에 그의 친구이자 문학평론가인 에드먼드 윌슨이 미완성 소설 『마지막 거물』을 편집해 출간했고 피츠제럴드의 에세이와 미공개 편지글, 메모 등을 모은 유작 에세이집 『균열』(1948)을 펴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1817년 매사추세츠 콩코드에서 연필 제조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뒤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었고 이후 일정한 직업 없이 아버지의 연필 제조를 돕거나 토지 측량, 목수 일을 하거나 강연 등을 하며 책을 읽고 산책을 하며 자연을 관찰하고 글을 쓰며 지냈다.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던 2년을 기록한 『월든』(1854)으로 널리 알려졌다. 1846년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했다가 투옥되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의 불복종](1849)을 썼다. [시민의 불복종]은 20세기에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저항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1862년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로우가 직접 만든 나무 상자 안에 담겨 있던 소로우의 일기를 비롯한 글들이 사후에 출판되었다.
홀브룩 잭슨
영국의 저널리스트, 작가, 출판인으로 당대의 유명한 애서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경영난을 겪고 있던 문예지 [더 뉴에이지]를 조지 버나드 쇼의 재정 지원을 받아 인수하여 편집과 경영을 맡았다. 시인 랄프 호지슨과 함께 작은 출판사 ‘플라잉페임 프레스’를 세워 운영했으며 소출판과 활판술, 책 수집을 소재로 많은 글을 썼다. 저서로는 『서적광의 해부』, 『애서가의 즐거움』, 『1890년대: 19세기 말의 예술과 사상』, 『에드워드 리어의 완벽한 난센스』 등이 있다. [애서가는 어떻게 시간을 정복하는가]는 홀브룩 잭슨이 17세기 고전 『우울증의 해부』에 영감을 받아서 쓴 『서적광의 해부』의 일부이다.
힐레어 벨록
프랑스 태생의 영국 시인이자 역사학자, 수필가, 언론인, 정치인으로, 다양한 이력만큼이나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글을 썼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를 연구한 역사서와 여행기, 소설, 시, 에세이 등을 왕성하게 발표했으며 무엇보다 명료하고 힘 있는 에세이로 인정받았다. [모닝 포스트]지에 서평을 썼고 [선데이타임즈], [위클리 리뷰] 등에 칼럼을 썼으며 친구인 작가 G. K. 체스터튼과 함께 정치주간지 [아이 위트니스]를 창간하고 운영했다. 1906년부터 1910년까지는 영국 자유당 하원의원을 역임했다. 『모든 것에 대하여』, 『이것저것 그 외의 것』, 『처음이자 마지막』 등 여러 권의 수필집을 남겼다.
엮고 옮긴이 강경이는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번역 공동체 펍헙번역그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그리스의 끝 마니』,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린이 문학의 역사』, 『오래된 빛』 등이 있다.
출판기획자로, 엮은 책으로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