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인의 입장에서 어떤 사람을 가리켜 ‘원주민’이라고 부르면, 우리는 은연중에 문화적인 색채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우리는 그들을 우연히 야생 동물이나 그 고장 특유의 일부 동식물로 보게 되지, 우리와 같은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는 보게 되지 않는다. 그들을 ‘원주민’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들이 절멸될 것이라는 선입견이 든다. 아니 오늘날로 봐서 더 가능성이 있는 쪽은, 그들을 길들여 진심으로(전적으로 잘못 판단했다고만 할 수도 없다) 인간의 기량을 개량해 주려는 생각이라고 할지는 모르나 조금도 그들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 p.59
자기중심적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것으로, 서유럽인들만 이 미망에 사로잡힌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은 그들이 어떤 하나의 ‘선민’이 아니라 ‘유일한’ 선민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가 ‘원주민’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들은 ‘이교도’라고 불렀고 그리스인은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 p.60
소수 지배자의 억압하려는 의지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독립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두 의지의 충돌은 쇠퇴기 문명이 몰락을 향해 걸어가는 내내 계속되지만, 마침내 그 문명이 숨을 거두는 순간 결국 프롤레타리아트는 지난날 그 정신의 근거지였던 그러나 이제는 감옥으로 변한, 그리고 마지막에는 ‘멸망의 도시’가 된 사회로부터 탈출한다.
--- p.108
바다를 건너는 위험 속에서 ‘같은 배를 탄’ 인간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바다 위에서 서로 협력한 그들은 가까스로 손에 넣은 해안의 땅을 내륙 지역의 적의 위협에서 지켜야만 했을 것이고, 땅에서도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땅에서도 바다와 마찬가지로 동료애가 혈연보다 중요하며 동료 가운데서 뽑힌 믿을 만한 지도자의 명령이 관습상의 운영보다 우선시되었을 것이다. 사실상 바다 건너 새로운 거주지를 개척하기 위해 힘을 합쳐 여러 척의 배에 올라탄 사람들은 어느 겨를에 자연스럽게 지역별 ‘집단’이 되었으며, 그들에 의해 선출된 행정관이 다스리는 도시 국가로 변했을 것이다.
--- p.142
초원에서는 유목민과 가축 무리가 섞여 있어 그러한 자연환경에 가장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유목민은 엄밀하게는 ‘인간이 아닌 협력자’에게 붙어사는 기생충은 아니다. 둘은 서로 적절히 도우며 살아간다. 가축은 유목민에게 우유와 고기의 공급원이며 유목민은 가축이 자랄 환경을 마련해 준다. 초원 지대에서는 유목민과 가축이 공생하며 살아간다. 이와 반대로 농지나 도시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과 토착민인 ‘인간 가축’이 섞여 있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인간 목자’는 정치적으로 꼭 그렇다 할 순 없지만 경제적으로는 늘 남아도는 존재로 피지배층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그들은 이미 양 떼를 지키는 목자가 아니라 일벌을 착취하는 수벌이 되었던 것이다. 생산적인 노동자는 이런 비생산적인 지배 계급이 없다면 경제적으로 더 윤택해질 것이다.
--- p.216
성장이란, 성장하는 인격 또는 문명이 점차 스스로가 환경이 되고, 스스로가 도전자가 되며, 스스로의 행동 영역이 되어가는 일을 뜻한다. 다시 말해 성장의 기준은 자기결정을 하는 방향으로의 진보이다. 그리고 자기결정을 하는 방향으로의 진보란, 내면적 생명이 내면적 왕국에 들어가는 기적을 묘사하는 평범한 표현인 것이다.
--- p.257
지도자의 임무는 그의 동료로 하여금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 전체를, 인류를 초월해 저편에 있는 목표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원시적이며 보편적인 모방의 능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모방은 하나의 사회적 훈련이다. 이 세상의 소리와는 다른 오묘한 오르페우스의 하프 선율이 들리지 않는 둔한 귀에도 훈련 부사관의 호령은 잘 들린다.
--- p.330
어느 사회에서 기존의 제도적 구조가 새로운 사회 세력의 도전을 받았을 경우에, 기존 구조의 힘에 조화롭게 조정이 되거나, 혁명(즉 지연된 부조화의 조정)이 일어나거나, 범죄적인 사회악이라는 세 가지 결과 가운데 한 가지가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 (···) 조정이 조화를 이루어 진행되면 그 사회는 성장을 계속한다. 혁명이 지배적이면 그 사회의 성장은 차츰 위험해진다. 범죄적 사회악이 두드러지면 쇠퇴기로 진단해도 무방하다.
--- p.335~336
인간 우상들이 이집트 사회에 부과한 참담한 악령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것이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를 짓게 한 건설자를 주술적으로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 백성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집트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연환경을 지배하고 확대하는 일에 모든 힘을 사용해야 함에도 거대한 세계 국가의 엄청난 기량과 자본과 노동력이 우상화의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 p.381
인간의 능력이 무엇이든 그리고 그 능력이 미치는 범위가 어디까지이든 어떤 능력이 본래의 분야에서 어떤 일정 임무를 달성했다고 해서 다른 상황에서도 비상한 효과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적?도덕적 미망에 지나지 않으며, 틀림없이 재앙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 p.413